[대만이야기 34] : 한고조 유방

예측 가능한 대통령 문재인! 김동호 주주통신원l승인2017.05.17l수정2017.07.06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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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로마제국이 있다면 중국에는 이와 견줄 한(漢) 왕조가 있습니다.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무찌르고 유일한 권력자가 된 옥타비아누스가 황제가 되어 로마제국을 이루었다면, 중국에서는 이보다 200여년 앞서 한고조 유방이 초패왕 항우와의 패권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진정한 황제로 등극한 후 400여 년을 이어가는 왕조를 성립합니다.

▲ 한 고조 유방 wikipedia

한나라의 한(漢)은 중국을 대표합니다. 영어 차이나(CHINA)의 어원이 앞선 왕조, 짧지만 많은 유적을 남긴 친(秦,진나라)에서 유래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왕조는 한나라입니다. 한족(漢族), 한문(漢文), 한자(漢字)가 모두 중국을 나타내지요.

한나라, 한왕조(漢王朝)를 건설한 유방은 농부의 아들인 평민출신이었습니다. 나서기 좋아하고, 건달기가 다분하며 허풍도 센 한량이었지요. 작은 마을의 정장(亭長), 지금의 파출소장 정도의 직책을 갖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진시황의 황릉 공사에 파견되는 부역자들의 인솔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만리장성이나 황릉의 공사에 잡혀가면 살아오기 어려웠던지라, 매일 밤 자고나면 도망자가 생겨서 부역자들이 점점 줄어들더니 함양에 도달할 때쯤에는 몇 명이 안 남았지요. 그대로 인계를 하자니 인솔자인 자신도 문책이 될 것 같았습니다. 평소 협객인 양 하던 유방은 그들을 풀어주고 본인도 숨어 지냅니다.

진시황 사후에 진승과 오광이 난을 일으키고, 전국에서 백성들이 호응을 하자 유방도 봉기를 합니다. 유방이 태어난 곳은 현재의 강소성 패현이란 곳입니다. 그곳에서 유방을 도왔던 소하는 한나라 개국 3대공신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별 볼일 없는 인물이었고, 장군이 된 번쾌는 개를 잡던 도살업자이자 유방의 아랫동서였습니다. 한마디로 오합지졸들이었지요.

그런 유방이 ‘역발산기개세(力拔氣蓋世)의 항우를 꺾고 5년에 걸친 초한 대전의 승자가 되어 중국역사의 한 획을 긋습니다. 권력을 잡으면 후세에 신격화되기도 하지만, 백성들을 승복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다르다는 면을 부각시켜야 하지요. 유방의 어머니가 붉은 이무기 혹은 붉은 용을 품었다는 태몽을 활용합니다. 그리고 유방은 붉은색을 상징으로 내세웁니다. 붉은 용의 아들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황제나 우리나라 왕의 얼굴은 용안(龍顔)이고, 정장은 용포(龍袍), 업무용 평상은 용상(龍床)이지요.

예전에는 장터나 마을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대개 장기를 두었고, 주위에는 훈수를 두는 사람들도 모여 여럿이 즐겼는데, 붉은색 왕에는 漢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푸른색 왕에는 楚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초한대전의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를 나타냅니다. 지금도 중국을 상징하는 색은 붉은색이지요. 중국의 오성홍기부터 국가의 공식행사나 집안 경사나 온통 붉은 색으로 도배를 합니다. 바로 2,000년을 넘게 사랑받고 있는 한고조 유방으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유방이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평민, 즉 최초의 흙수저 출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민에다가 능력도 모자라는, 오히려 흰소리나 치고 건달기가 있는 유방이 막강한 항우를 이길 수 있었던 점은 그의 참모들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지요.

행정가 소하는 국가의 살림을 잘 꾸려서 외부에서 전쟁을 치르는 유방에게 끊임없이 물자를 공급하였고, 대장군 한신은 주력군을 이끌고 항우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인물, 지략가이자 참모인 자방 장량을 만났기에 400년 왕조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행정력도 없고, 군을 지휘하거나 통솔할 능력도 모자라고, 지략도 부족하며 출신 성분도 별 볼일 없는 농부의 아들! 그렇지만 그에게는 결정적인 안목과, 사람을 끌어들이는 인덕이 있었습니다. 자기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전폭적으로 수용을 했습니다.

함양을 먼저 정복하는 사람이 관중의 왕이 되기로 선포된 상황에서 먼저 궁에 입성한 유방은 그 휘황찬란하고 호사스런 모습과 즐비한 미녀들에 그만 넋이 빠집니다. 하지만 장량을 위시한 부하들의 충언을 받아들여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물러납니다. 바로 백성들의 신망을 얻게 되지요.

이번 대선을 치르고 대만 친구들로부터 저도 축하의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 국민의 힘, 민주주의의 발전을 여러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뿌듯했지요.

저는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이 성공하고 발전하리라고 확신을 합니다. 개인 문재인은 이제부터 새로운 어려움 앞에 직면하겠지요. 그리고 힘든 나날과 많은 비평, 또 비난의 대상도 되겠지요.

그럼에도 성공을 확신하는 여러 이유 중에서 으뜸은 예측 가능한 지도자라는 사실입니다.

당선이 확정될 무렵인가 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어머니인 구순의 강한옥 여사 인터뷰 기사였지요. “아들은 예측 가능한 얩니더!”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과 어머니

‘고슴도치도 지 새끼 예쁘다면 함함 한다!’고 하는데, 어느 어머니나 자기 아들은 착하고, 예쁘고, 성실하고, 똑똑하고, 세상에 둘도 없지요.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 어머니는 아들의 예측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만큼 투명한 사람이라는 이야기이지요. 도덕적 우월함과 자신감을 갖췄다는 의미입니다.

유방을 따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이유는 유방이 자기들 말을 들어주고, 승리를 함께 나누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방은 예측 가능한 지도자였던 거지요. 지도자가 어디로 튈지 모르고 깜깜한 사람이라면 아랫사람은 이익을 구하여 잠시 머리를 숙이고 있지만 언제든지 돌아설 준비를 하지요.

항우에게도 장량에 뒤지지 않는 범증이라는 책사가 있었지만 자신에 대한 과신 혹은 어리석음으로 전혀 활용을 못하고 승자에 대한 조연으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뒤돌아 지난 몇 달을 생각해보니 단군 이래 이렇게 성공한 시민 혁명이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많은 희생을 내고도 이름만 바뀌었지 진정한 민중의 혁명, 성공한 혁명은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의 꿈이었던 프롤레타리아 혁명도 이리를 피했더니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간 형국이었지요.

스스로를 태워 세상을 밝힌 촛불 혁명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의 가치를 실현시켰습니다. 어쩌면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록될 촛불로 남을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역사의 장은 열렸습니다. 촛불혁명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더 힘든 길을 가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은 눈에 보이는 적들과 싸웠다면 이제는 보이지 않는 적과 맞닥뜨리게 되었지요. 그리고 더 큰 적은 내부에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다수의 힘이 빈번하게 어리석은 군중의 폭력으로 변해 감을 역사에서는 자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상적인 지도자의 덕목으로 수신(修身) 제가(齊家)를 중요하게 살폈고, 이상적인 정치는 100사람을 즐겁게 하기보다 한 사람을 억울하게 하지 않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수신제가가 전혀 안된 지도자를 뽑아놓고(다수의 선택), 100사람을 억울하게 만들고 한 사람을 즐겁게 정치한 결과를 우리 후대들은 반복하지 말아야겠지요.

이제 진정한 역사의 성공을 위해서 내부의 자리다툼과 이권 챙기기에 대한 질책을 멈추지 말아야겠고, 소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더불어 약자를 배려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을 다수가 닦아주고 그들과 공감하는 나라가, 그런 국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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