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점심을 너무 일찍 먹어서인지 오후 6시쯤 되니까 배가 고팠다. 가끔 가는 분식집으로 향했는데, 사무실 인근에서는 유일한 집이다. 이 집도 여느 분식집과 마찬가지로 주로 김밥과 국수가 주메뉴다.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천 오백원짜리 김밥치곤 맛있고 정성스레 말은 것 같다.

분식집 주인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내겐 김밥 한 줄 정도의 양이면 한끼 식사로 충분하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소식(少食)을 해야 한다는 소신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일종의 강박에서 비롯한 식습관이다.

그런데 오늘은 별스럽게 배가 고파 국수 한 그릇을 추가했다. 가끔 그렇게도 먹는 날도 있긴 하다. 김밥을 거의 다 먹었을 쯤 국수가 나왔는데 얼핏 보기에도 양이 좀 많은 것 같았다. 국수를 종종 먹었기에 그 집 국수의 양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한 눈에 봐도 보통 때와는 다르게 양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오늘 따라 왜 이렇게 국수의 양이 많은지를 물었다. 아주머니의 말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선생님들을 순직으로 처리하라는 지시를 해 줘서, 그게 너무 고마워 오늘 하루만이라도 모든 손님들에게 평소보다 삼분의 일을 더 얹어서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실은 나도 오늘 문 대통령의 그 같은 지시를 뉴스로 접하고 희생된 선생님들의 넋이 조금이라도 달래졌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유가족들의 요구가 늦게나마 받아들여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무심코 들리던 분식집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되다니, 내 또래 쯤 되어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갑자기 여러 가지 궁금증이 밀려왔다. ‘혹시 자녀 중에 학교에 근무하거나 공무원이 있느냐’, ‘젊었을 때 데모 같은 거 해 본적이 있느냐?’ 등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는데 꾹 참았다. 그런 자녀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떤가. 젊은 시절 데모를 해 봤으면 어떻고 안 해 봤으면 또 어떤가, 국수 한 그릇에 지금 이 분의 마음이 다 담겨 있는 것을.

나는 한 가락의 국수도 남기지 않으려고 가위로 냉면 자르듯 입안에서 국수를 잘게잘게 짤라서 넘겼다. 그냥 통째로 후루룩 먹는 것보다 실제로 그렇게 먹으면 배가 덜 부르기 때문이다.

먹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말로만 듣던 그 ‘비정상화의 정상화’가 새 정부에서는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설마 여기서 멈춰지는 건 아니겠지, 그럴 수는 없다. 어떻게 이룬 정권교체인가, 수백만명의 촛불시민들이 이룬 위대한 시민혁명이 아니던가, 결코 지금보다 퇴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스승의 날인 오늘 보여준 그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국정운영의 모습을 임기말까지 그대로 유지해 주길 진심으로 바라고, 또 그렇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다.

양이 가득한 국수를 깨끗하게 다 비우고 나오는 길에 그래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투표는 당연히 하셨겠지요? 원하는 분이 당선된 건가요? 아주머니의 엄지척이 높이 올라갔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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