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야만의 시대’에 지식인의 행동은 극명하게 갈린다.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책 <지식인을 위한 변명>(1972)에서 지식인은 지배자들을 위해 복무하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진리 탐구자라고 말한다. 다섯 번 감옥에 갇혔어도 오직 이성과 양심으로 실천한 지식인 리영희 선생을 우리가 존경하는 이유다. 

최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환빠’논쟁이 뜨겁다. 주류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도 후보자의 2015년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활동 당시 동북아역사문화재단이 추진한 동북아역사지도 사업과 하버드 고대한국 프로젝트를 중단시켰고, 이것은 도 후보자가 유사역사학 추종자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동북아역사문제에서 특히 쟁점이 되는 것은 고대사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침탈 시도라는 현실적 과제와도 뗄 수 없어 결코 가볍지 않은 영역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가. 이번 논란에 두 근대사학자가 뛰어들었다. 이들은 도 의원에 대한 환빠 공격이 순수 역사학적 논쟁 차원에서 이뤄진 게 아니라 검정교과서 개악이나 국정교과서 추진 사학계 안팎 보수 주류세력이 거기에 반대한 도종환 의원을 비판하고 배제하려는, 명백한 정치공세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도종환 반대세력이 노리는 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교과서 국정화 세력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그와 연관된 한국사 정통성과 대한민국 정통성을 통합해 식민지근대화론을 신봉하는 뉴라이트적 역사관을 지닌 그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박용규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한겨레> 창간 독자)와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한겨레 주주)이다. 30년 만에 시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다시 선 지난 10일 낮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이들을 만났다.

▲ 신운용 박사(왼쪽)과 박용규 박사




문: 근대사학자로 이번 논쟁에 뛰어든 이유는?

박용규: 교육부 산하에 동북아역사재단이 있다.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의 근본 목적은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큰 양대 역사 침탈, 즉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침탈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7년에 걸쳐서 국민 세금으로 47억이 들어간 사업에 대해 여야 의원이 검증했는데 두 개의 중대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하나는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 일제시기 식민사학자인 이병도의 학설을 그대로 받아 가지고 네 개의 한사군 중에서 낙랑군은 지금의 평양에 그려 넣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고유 영토로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독도’ 표기를 누락한 것이다. 도 후보자가 얼마 전 한 언론을 통해 밝혔듯이 동북아역사지도사업을 중단한 이유는 역사관 때문이 아니라 사업 자체의 부실함에 기인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한 재심사 결과에서도 44점(100점 기준)을 받고 10억 원 이상의 연구비가 회수됐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문제가 도 후보자의 후보 자질 문제로 오도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학자로서 이 부분을 드러내고자 한다.   

신운용: 한마디로 고대사를 연구하는 분들이 집단적으로 학문을 정치화하고 있다. 역사학은 다양한 해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대사 연구자들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학문적으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국가주의는 국가권력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희생이 전제 된다는 관점이라면, 민족주의는 개인과 공동체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나타내는 주체적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근대사의 동력은 민족주의였던 것이다. 민족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식민지근대화론이다. 안중근도 식민지근대화론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고대사의 주류인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역사관련 기관을 장악했고 이런 주류 학계의 주장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관을 그대로 따르며 어처구니없게도 정설로 둔갑해 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등에서 활동하는 고대사 연구자들은 이에 제동거는 도종환 후보자가 당연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도종환 후보자를 유사역사학에 경도된 정치인이란 식의 덧씌우기 하는 것은 역사학자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문: 고대사학계 자체가 문제란 말인가

신운용: 고대사에서 특히 견해가 갈리는 부분 중 대표적인 것이 한사군의 낙랑의 위치에 관한 것이다. 낙랑의 위치가 지금의 평양이라는 주류 학계는 다른 설을 전혀 존재할 수 없게 한다. 역사학의 본질은 해석의 다양성을 보장하는데 있다. 다양한 해석은 역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러한 역사학의 특징을 부정하는 것은 일종의 학문 독재다. 그동안 학계는 국내설만을 고집할 수 없는 증거가 있는데도 집단적으로 조선시대 이익, 근대의 신채호, 현대의 윤내현 등의 한사군 요동설을 유사역사학이라고 매도하였고, 특히 윤내현을 종북세력으로, 북한 이지린의 학설도 색깔론이라는 잣대로 학문적 ‘타살’을 시도하였다. 물론 나는 한사군 국내설을 하나의 학설로 인정하고 있다. 학문생태계의 건전한 보존을 위해 한사군 요동설이 하나의 학설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한사군연구는 끝난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서로의 학설을 존중하면서 격조 있게 연구를 하는 것이 학자의 자세라고 본다. 고대사의 일부연구자들이 한사군연구는 국내설로 귀착되었다는 주장은 역사학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역사학 자체를 부정하는 반역사적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박용규: 중국의 담기양이 만든 지도에 평양 이북이 전부 한나라 땅으로 되어있는데 동북아역사지도는 그것을 반영했다. 그런데 고구려 미천왕이 축출한 낙랑군의 위치가 어딘가. 평양에 있었다는 주장은 이미 100년 전에 일본 제국에 복무하는 충실한 일본 역사학자들의 입장이었다. 이런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이 이병도다. 이병도가 누구인가. 그는 1919년 일본 와세다 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교사로 근무 중 1925년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인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했다. 8·15광복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문교부장관,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 성균관대학교 교수 겸 대동문화연구원장을 거쳐 1980년 국정자문위원을 지냈다. 우리나라 고대사학 계보의 머리에는 이병도가 있고 그 제자들이 주류의 자리를 독점하고 있다.


문: 낙랑군의 위치와 독도 표기 누락이 문제인가

박용규: 민족주의 역사학자의 대표적인 인물이 단재 신채호 선생이다.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상고사>에 분명하고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위만조선의 왕검성이 오늘날 요동지방에 해당된다. 그리고 위만조선은 그곳에서 망했다. 한사군은 국내(한반도안)에 있을 수 없는 이유다. 한사군은 위만조선이 망한 그 자리에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사군은 국내에 설치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학설을 이어받은 분이 민족주의 사학자 담원 정인보 선생이다. 정인보 선생은 요동지역에서 한사군이 설치되었다가 고구려에 의해 망했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신채호와 정인보의 학설을 그대로 이어받은 대표학자가 있는데 1963년 북한 학자 리지린(이지린)이다. 그는 <고조선연구>라는 400쪽이 넘는 방대한 책을 저술했다. 이지린 선생은 한사군이 국내에 설치가 되지 않았다고 명명백백하게 밝혔다. 
국내에서도 <고조선연구>라는 방대한 책을 낸 윤내현 교수가 있다. 그도 한사군은 한반도에 설치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박용규 : 동북아역사지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결정적인 잘못 또 하나는 독도 표기 누락이다. 일본은 사회교과서에서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이다’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한국이 지금 불법 강점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북아 역사 지도를 만들 때 당연히 울릉도 옆에 독도를 표기해야 한다. 그런데 표기를 안 한 거다. 당시 도 의원 등 교문위는 이를 지적했다. 이를 수정하라 했다. 그럼 실수했으면 표기를 해 와라 하니 다시 5, 6개월 뒤에 지도를 다시 만들어왔는데 또 독도를 빠뜨렸다. 이게 말이 되나. 한국고대사 학자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 실수를 한 것은 대단히 잘못한 일이다.


문: ‘환빠’, ‘식빠’ 논쟁으로 비화되는 형국인데

박용규: 환단고기는 역사학자가 아닌 일반대중들이 보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환단고기는 신채호, 이지린, 윤내현의 학설보다도 우리영토를 더 크게 보고 있다. 이 책은 많은 검증이 필요하다고 본다. 환단고기에 심취한 이들은 주류 학자들에 대해 소위 ‘식빠’, 즉 식민주의 역사관을 가진 자, 식민주의 역사상을 신봉하는 ‘빠’들이라 공격한 것이다. 이렇게 공격받은 사학자들은 이에 대해 우리 영토를 크게 잡은 사람들을 싸잡아 너희는 <환단고기>를 믿는 추종자들, 소위 ‘환빠’다 라며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문: 한사군 연구에서 핵심 쟁점은

신운용: 한사군 문제는 패수의 위치가 가장 중요하다. 대체로 국내설은 압록강설•청천강설•대동강설로 나눌 수 있고 요동설은 난하설•대릉하설•요하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통일된 이후 한사군 연구사에서는 아마 패수 요동설이 정설이라고 판단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정설은 남한의 한사군연구만을 대상하는 한계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통일한국의 학자들은 한사군연구를 재조명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사군연구의 쟁점이 되는 낙랑군을 평양으로 고착화하려는 연구경향은 <한서>, <지리지> 낙랑군의 속현 중 조선현의 위치는 평양일대보다 현 중국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낙랑군은 국내에는 없었다는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는 몰학문적 태도이다. 특히 진번군의 경우는 조선시대 요동에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었고, 임둔군 현도군의 경우도 문헌학적으로도 고고학적으로도 국내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대는 어떤 분야든 독점할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그만큼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는 어느 누구라도 공부 다 할 수 있고 자기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거다. 이제 학문의 전문화시대를 넘어서 학문의 국민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말이다. 국민이 모두 할 수 있는, 그리고 학자가 국민을 계몽대상으로 본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학문태도다. 아직도 우리는 역사학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 그대로 드러낸 거다.
 

문: 역사지도 사업의 해법은 무엇인가

박용규: 현재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한사군의 위치가 국내에 위치해 있었다는 그런 글귀가 지금 검인정 교과서에 단 한권도 없다. 그 얘기는 그만큼 논쟁이 심하다는 거다. 요동설과 국내설이 첨예하게 학문논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그 얘기가 빠져있는 것이다. 한국고대사학자들이 과도하게 이 부분에 대해서, 예를 들면 평양설이 다수설로 볼 순 있다. 그러나 정설이라고 규정하면 안 된다. 학문이라 하는 것은 학설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거다. 다양하게 나오는 것이 민주국가이고 다양한 학설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 독재국가이고 파쇼국가인 거다. 대표적으로 나치라든지 북한의 학술을 보게 되면 하나의 학설 밖에 없잖나.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설이 아니고 다수설, 소수설이 있는 거다. 애초부터 역사지도 사업에서 이런 부분을 균형적으로 다루었다면 사업 중단 사태를 둘러싼 오해와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신운용: 역사학은 역사의 진실을 통하여 미래를 대비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사와 강역을 담는 역사지도는 반드시 북한과 협력하여 작성해야 한다. 이를 국가주의에 매몰된 경향을 보이는 고대사 일부연구자들에게만 맡기는 일은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점에서 정부는 하루빨리 북한과 ‘역사지도 공동’ 작업을 제안해야 한다. 

아울러 언론 보도도 문제다. 도 후보자와 동북아역사지도 사업 관련 맥락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주류 학자들의 입을 빌어 마치 도 후보가 사이비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거나 역사에 대한 몰이해로 정치로 무리수를 둔다는 식의 보도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이번에 재미있는 건 주류역사학계와 교육단체가 일관되게 한국사 국정화를 반대했다. 도 의원도 당연히 같은 입장이었다. 그런데 동북아역사재단에 관계한 학자들만 유독 도 의원이 유사역사학에 동조 또는 신봉하는 것처럼 집단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언론 ‘폭력’인 것이다. 
 

문: 이번 논쟁의 본질은 ‘밥그릇’이란 말인가

신운용: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역사기관을 다 장악했다. 특히 국정교과서 문제를 주도한 세력은 고대사연구자들인데 전 국사편찬위원장 김정배 씨 그리고 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이기동 씨 이런 분들이다. 이들이 교과서 국정화 주도자로 나섰을 때 한국고대사를 연구하시는 분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을 반대했거나 성명서를 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이게 뭘 의미하느냐면 박근혜정권 하에서 역사기관을 장악한 사람들하고 고대사를 연구하시는 도종환의원을 매도하는 일부의 분들하고 일정하게 이익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역사지도 건으로 큰 경제적 피해는 물론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도 후보자에 대해 호의 보다는 경계심이 더 클 것은 예상되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국정국정교과서를 반대했던 분들이 오히려 지금은 자유한국당 사람들에게 붙어서 도 후보자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다는 소리가 들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기 배반이자 논리적 모순이다. 역사는 문화체육장관이 아니고, 교육부 소관인데 이들이 조직적으로 낙마운동을 하고 비난하며, 시비를 걸어 아주 이상한 상황으로 만든 이유는 뻔하다. 


문: 주류 고대사학계에 제안이 있다면

신운용: 고대사를 연구하시는 일부의 분들이 민족주의에 대한 과민한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다. 민족주의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없어지는 거다. 그러면 독립운동을 우리가 다 부정할 수밖에 없는 거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데 민족주의가 아니면 통일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이고 이런 측면에서 고대사 하시는 분들이 지나치게 민족주의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데 이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과 일정하게 맥을 같이 하는 거다. 그래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과 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고대사 하시는 분들이 주도를 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이것을 국민들이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국정화교과서도 반대한 거고, 많은 국민들이 역사해석을 어떻게 한가지로만 하느냐고 분노했던 것이다.  이미 역사학자들을 뛰어넘어 얘기하는데 아직도 이들이 역사학에 갇혀서 국민들 앞에 마치 자기네들이 왕인 양, 우리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으니까 따르라 하는 박정희 독재시대에 그거와 뭐가 다른가. 그런 면에서 이것은 한국 역사학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거다. 이것은 국민들에게 그런 규탄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자기선택적 한계에 부닥친 것이다.

박용규: 학자들은 국민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면 끊임없이 가장 앞에 나가서 자신들의 학문이 더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것이란 것을 함께 대화하고 설득하는 그런 자세를 전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 시대의 학자들의 자세다. 학술대회, 공청회도 얼마든지 열 수 있고, 토론회와 만민공동회 등 우리 역사에서 이런 것을 학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환빠’로 매도하고, 공개토론회에 소극적으로 나오고, 참여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학자들은 대단히 겸손해야한다. 자신들의 학설에 대해서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더 많이 홍보하고, 충분히 대화하면 이렇게 이분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소통과 대화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대다.

[관련 칼럼] 진정 ‘진보적’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085


인터뷰어 및 편집: 이동구 <한겨레:온> 에디터
정리: 이희정 <한겨레:온> 대학생 기자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