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미사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 열린 미사는 2008년 6월 26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쇠고기반대 미사였다. 쇠고기 반대 미사는 1회 미사로 끝났다.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11일 후 1월 31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첫 추모미사를 열었다. 이어 2009년 4월 12일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에서는 이강서 신부를 용산참사 현장으로 파견했다. 매일 미사가 이어졌다.

2009년 11월 2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희생자를 위한 위령 미사를 잊을 수 없다. 그날은 갑자기 강추위가 몰려왔다. 경찰은 신자들이 미사현장에 들어가게 하지도 못하게 미사현장을 빙 둘러쌌다. 간신히 경찰을 뚫고 들어갔지만 8시가 넘어도 미사는 시작되지 못했다. 앰프를 들여보내주지 않아서였다. 김인국신부는 추워서 벌벌 떠는 신자들을 향해 맨 소리로 강론했다.

“요새 정부는 3일 걸러 한번 씩 급발진 사고를 냅니다. 이 정부는 급발진 사고 정부입니다. 급발진 사고는 웬만해서 막기 힘듭니다. 어떻게 해야 급발진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까? 바로 키를 뺏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정부에 기대하는 것이 없습니다. 헌재도, 법원도, 경찰도, 검찰도 다 키를 뺏어야 합니다. 앞으로 3년 남았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권력을 누가 주었습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입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가 주인으로서 바른 종을 뽑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3년 동안 착실히 대비해야 합니다.”

2009년 12월 30일 용산참사 문제가 반쪽 타결되었다. 2010년 1월 6일 용산참사 희생자를 위한 마지막 추모미사가 진행되었다. 260회가 넘었던 길거리 미사였다.

▲ 용산참사 현장 마지막 길거리 미사(사진 출처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카페)

그 후 2010년 이명박이 4대강 사업을 한다고 했다. 2010년 2월 팔당 두물머리에서 4대강 반대 미사가 처음 열렸다. 3월 8일 천주교 사제 1100여명은 이명박 정부에 ‘4대강 사업 중단촉구 사제선언문'을 발표했다. 3월 12일에는 천주교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주교회의에서 4대강 사업 반대 입장을 공식 천명했다. 이후 낙동강에서 영산강에서 금강에서 한강에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서울시청광장에서, 국회의사당 앞에서 4대강 사업 중단을 위한 길거리 미사가 계속 됐다.

▲ 2010년 3월 22일 낙동강 함안보 미사(사진 출처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카페)

강정에서도 길거리 미사가 열렸다. 2011년부터 시작한 해군기지반대 강정미사는 현재까지 매일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열리고 있다.

▲ 2011년 8월 11일에 열린 구럼비 바위에서 열린 해군기지 반대 미사(사진 출처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카페)

쌍차해고자를 위하여 대한문 앞에서 225일간 열린 매일 미사도 잊을 수 없다. 2009년 77일간의 옥쇄 파업 후 줄줄이 죽어나가는 쌍차해고자를 위하여 늦었지만 2012년 5월 미사가 시작되었다. 2013년 4월 8일부터 11월 18일까지는 225일 동안 매일 저녁 7시면 대한문 앞에서 미사가 열렸다. 이후 2015년 10월까지 평택 쌍차 공장앞에서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쌍차해고자를 위한 미사는 계속되었다.

▲ 2013년 11월 18일 마지막 미사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천주교에서는 2014년 7월 31일 단식하는 유민아빠 김영오씨와 함께 하기 위해 광화문 천막에서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과 함께 미사도 진행했다.

▲ 세월호 단식 1일차(사진 출처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카페)
▲ 2015년 8월 3일 팽목항 십자가 봉헌 미사(사진 출처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카페)

2014년 12월 10일부터는 천주교남자수도회 장상협의회가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기억하는 미사를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시작했다. 이 미사는 지난 6월 12일 마지막 미사를 봉헌했다. 2년 6개월 동안 120주 미사가 봉헌되었다.

그 가운데 백남기님을 위한 미사도 열렸다.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씨가 물대포를 직격으로 맞고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그 다음날부터 서울대병원 앞 천막에서는 매일 미사가 봉헌되었다. 쓰러진 후 2016년 11월 5일 장례 전날까지 357일 동안 미사가 열렸다.

▲ 2016년 11월 4일 백남기님 영안실에서 열린 마지막 미사에서

지난 6월 12일 300명 이상이 모인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길거리 마지막 미사 강론은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가 맡았다. 나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에 선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이 거리의 미사가 어떤 역사적 과정 중에 있을까 하는 불확실성 속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이 미사를 접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수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는 비정한 세상, 무정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웃이 곤경을 당해도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오직 진실과 공정과 자애만 가득한 세상을 위해서 이 미사를 드렸습니다. 이 미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연결되고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비정하고 무정한 세상이 다정과 다감으로 채워지는 소중한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정과 무정의 세상은 포기할 줄 모르고 자신들이 누리던 달콤함을 쉽사리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미사의 종료가 더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 우리가 요구했던 세상을 위해 더 크고 무거운 책임 맡은 이들에게 돌려주고자 합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3년 전 위로의 말씀을 주신 프란치스코 교종이 떠오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단 하나의 이유는 아프고 슬픈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사람으로 연대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연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6.10민중항쟁도 연대로 이루어진 항쟁입니다. 의롭고 성실한 이들이 지키고 이루려고 한 나라는 하느님 나라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을 행복하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이 자리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정하고 무정한 세상에서 이 행복한 사람들을 바보라 손가락질 합니다. 오지랖 넓다고 합니다. 제 3자 개입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외면합니다. 이것이 비정하고 무정한 세상을 바꾸어야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런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같이 걸어온 길, 고난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지만 함께 해주신 길이기에 행복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인 김인국 신부는 미사 마무리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일,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가 고요한 데서 기도하는 것은 시끄러운 데서 쓰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이고, 기도하는 이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공익근무’가 이렇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기도할 이유가 생기는 날 반드시 다시 만날 것입니다.”

미사가 끝났지만 많은 신자들은 아쉬움에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서로 손을 잡고 꼭 보자고 약속했다. 두 신부님 말씀처럼 ‘진실과 공정과 자애가 필요한 곳’에 '공익근무'를 위해 다시 모일 것이다. 그들의 오지랖은 나, 내 가족의 오지랖이 아닌 '공익 오지랖'이기에...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차원의 세월호 월요미사는 접지만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이 진행하는 화요일, 수요일 미사는 매주 오후 7시 30분에 계속된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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