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진 칼럼] 베트남은 왜 뿔이 났나

문재인 대통령 현충일 기념사 베트남 현지 신문에 보도 유원진 주주통신원l승인2017.06.18l수정2017.06.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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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일로 자주 sns를 주고 받는 베트남 공무원으로부터 '당분간 추진하던 건을 미루자' 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혹스러웠다. 현충일이 일주일이나 더 지났지만 현충일 당시 하노이에 있었으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베트남과 관련하여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을 앞두고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저녁 먹다 말고 급히 베트남으로 날아가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예정된 공식 만찬사에 '세계평화를 위해 월남에서 싸우다 전사한 한국군.... ' 운운이 들어가 있었는데, '한국군이 세계평화를 위해 싸웠으면 한국군을 상대로 싸운 베트남 군은 뭐가 되느냐?' 하는 것이 베트남 정부의 강력한 항의였고 '한국의 대통령이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베트남 인민들은 환영할 수가 없으니 방문을 거절하겠다' 고 청와대에 공식 통보를 한 것이었다. 언론에 이미 국빈 방문 보도가 나갔으니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허겁지겁 베트남으로 날아가 사과를 하고 그 부분을 삭제하고서야 비로소 이명박의 베트남 방문은 성사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국익을 위해 헌신한 월남 파병 군인들을 언급하면서 애국이고 헌신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굳이 월남 파병을 특정지어서 했어야 했느냐에는 논란의 여지는 있다. 만약 한국군이 단순히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하여 싸우는 시늉만 하다가 끝낸 전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당시 한국군을 칭했던 따이한은 베트남 말로, 지옥사자보다 더 무서운, 아주 악질적이고 악랄한 단어로 묘사되어 있고 공식적으로 밝혀진 민간인 학살만도 9천여명을 넘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베트남 중부 마을들에 가면 '증오비'로 이름 붙여진 위령탑이 마을마다 세워져 있고 그 뒤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동판으로 당시의 학살 현장 사진과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한국인이라면 그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지경이다.

▲ (위쪽부터) 1968년 2월12일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에서 한국군 청룡부대에 의해 가슴이 도려진 채 쓰러져 이튿날 숨진 응우옌티탄(당시 19살). 베트남 최대 일간지 <뚜오이째>는 9월10일 고경태 기자의 기록전 ‘한마을 이야기-퐁니·퐁넛’을 소개했다. 같은 제목의 기록집 표지 사진. 한겨레 고경태 기자 제공(출처 : 한겨레 21)

우리는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그 내용은 여기서 언급할 필요도 없거니와 일본의 식민지배와 그에 따른 수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적이고도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의 땅에 가서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면 사과는 물론 합당한 배상도 해야 일본에 대한 요구도 정당하다 할 것이 아닌가. 사과를 해도 모자랄 마당에 당연한 일이었고 위대한 헌신이었으며 애국이었다고 대통령이 직접 베트남 전을 언급했으니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 베트남 중남부 빈딘성 떠이선현 떠이빈사에 세워진 ‘빈안 학살사건’(1966년) 추모비의 모자이크 그림.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학살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구수정씨 제공(출처 : 한겨레 신문)

당장의 경제발전이 급한 베트남은 주적이었던 미국과의 정리도 안 된 마당에 용병격이었던 한국에 대해 배상이니 사과니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그런 연유로 참여정부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과할 용의도 정중히 거절을 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공식 만찬 석상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의 마음을 전하면서 건배 제의를 해서 베트남 인민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드디어는 전국에 세워져 있던 증오비의 이름을 일부나마 위령비로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그 마음에 합당하게 참여정부는 베트남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말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월남파병군인들이 조국을 위해 먼나라까지 가서 싸우다 죽었고 그들을 위로하고 추념해야 하는 것은 국민된 입장으로 당연한 일이랄 수도 있다. 그렇다면 2차대전 때 조국이었던 일본을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일본군들을 위한 사당에 일본 수상이 참배하는 것에 대해서는 왜 반대하는가? 그들이 일반 군인이 아니라 전범들이라 그렇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당시 박정희와 함께 베트남 파병을 결정하고 가서 싸웠던 장군들은 현충일에 추념 제외 대상인가?

▲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사과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상징물인 ‘베트남 피에타’(왼쪽).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이 조각상은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부르는 엄마의 형상인데,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 ‘평화의 소녀상’(오른쪽)을 제작한 김서경(51)·김운성(52) 부부 작가의 작품이다. 올해 안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지역과 국내에 설치될 예정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출처 : 한겨레 신문)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어쩌고는 이미 식상한 어구가 되었지만, 그 의미만큼은 여전히 많은 곳에서 언급이 되어야 한다. 지지율 80%를 넘기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지만, 또한 추념사 유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지하고는 있지만, 이번 현충일 추념사는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 보고 우리가 베트남에 가한 상처를 다시 후벼파는 실수를 막았어야 했다.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부디 대사관을 통해서라도 진심을 정확히 전달하는 성의를 보이길 바란다. 진정한 품격은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보다 나보다 약한 상대에 대한 태도에서 더 잘 우러나오는 법이다. 베트남 인민들은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일본을 절대 잊지 않듯이.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유원진 주주통신원  4thme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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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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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진 2017-06-25 18:54:47

    글 아프게 잘 읽었습니다. 이게 바로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괴리...무심히 잊었던 우리의 광기에 대해 가슴 조아립니다. 누구도 그 어떤 변명도 않기를...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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