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민주주의, 주변의 민주주의 실행에 힘써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25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비서실장이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해서도 이견이 나왔을 때 얘기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대통령 지시에 대해서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해야 할 의무”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참모가 아니고 국민의 참모다. 그런 생각으로 자유롭게 말씀해 달라”라고 요구하였다는 보도를 보았다. 감동이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말로만’ 민주주의였다. 정부기관의 운영도 그랬고, 기업체 운영도 그랬다. 대통령이 “그 사람 지금도 있어요?” 한 마디에 어떤 공직자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일해오던 직장에서 쫓겨나야했던 것이 우리나라였다. 비서관들과 장관들은 오직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며 수첩에 기록만 했던 것이 우리나라였다. 어디 청와대에서만 그랬으랴. 지방정부에서도 시장의 입만 바라보고, 기업체에서도 회장의 입만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심지어는 청소년들이 민주주의를 배워야 할 학교에서마저도 교장의 입만 바라보는 것이 대부분의 일상이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민주주의를 교과서적으로 이해했을 뿐, 실제에서는 무조건 상급자 우선주의, 선배 우선주의, 연장자 우선주의 아니었던가? 심지어 지식인 계층이나, 진보 운동가를 자칭하는 집단에서마저도 일상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민주주의를 실행할 만한 용기가 부족했던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민초들은 민주주의가 왜 필요한 것인지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행하는 것인지 구경조차 할 수가 없었다. 민초들은 주권자이면서도 어떻게 주권자노릇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냥 투표나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모든 것인 양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민주주의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일 뿐, 자신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일상의 민주주의를 말하고, 몸소 보여주었다. “대통령 지시에 대해서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해야 할 의무”라고 한 것은 우리 조직 사회에 획기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한 마디가 될 수 있다. 위의 대화 중에서 ‘대통령’이라는 말 대신에 ‘시장’을 넣고, ‘회장’을 넣고, ‘교장’을 넣어보라! 그게 일상의 민주주의의 출발이다.

아무리 교과서에서 ‘민주공화국’이라고 떠들어봤자 내 주변의 일상이 민주적이지 못하면 민주국가라고 할 수 없다. 국민들의 일상이 민주적이어야 민주국가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면 국가가 소란스럽고 비효율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생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소수의 엘리트가 사회를 발전시킨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다 늙은 85세 되던 해 생각을 바꾸게 된 사건이 있다. 살찐 소 한 마리의 무게를 알아맞히는 대회를 우연히 보고 나서다. 참가 희망자들은 한 장에 6펜스씩 하는 티켓을 사서 자신이 생각하는 소의 무게를 적어 내고, 그중에서 정확한 무게를 맞춘 사람이 상금을 타게 되어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800여명이었다.

골턴은 평소 소신대로 소에 대한 전문가가 당연히 그 상금을 타 가겠거니 생각하고, 일반 대중의 어리석음을 입증해보이기 위해 참가자들이 써낸 무게의 평균을 뽑아보았다. 골턴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람들이 써낸 소 무게의 평균값은 1,197파운드로, 실제로 측정한 소 무게 1,198파운드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차는 불과 0.8%에 불과했다. 골턴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과학 잡지 <네이처>에 ‘여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무지한 다수의 군중이 완벽한 판단을 했음을 인정했다. 그렇다. 한 명의 천재는 만 명의 집단지성을 이길 수 없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엘리트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시끄럽게 떠들어대야 한다.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것들을 향해. 민주주의를 해치려는 사람들을 향해.

이제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완성해가야 한다. 4•19와 5•18과 6월 항쟁의 아픔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힘써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일상의 민주주의이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관공서에서 모두가 입을 열어야 한다. 권력자의 입만 바라보고 있지 말고 우리들의 입을 열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시장이니까’, ‘내가 교장이니까’, ‘내가 사장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가짜 민주주의자들이 독선을 행하고 있는 현장이 있다면 불행한 일이다. 그들을 향해서 입을 열어야 한다.

국민들은 이제 과거 '수첩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니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동굴 밖의 세상을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알아버렸다. 국민의 수준이 높아져버렸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이현종 주주통신원  hhjj55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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