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동안 자연의 진리(이법)와 마음의 진리(심법)를 공부해 오고 있지요. 이러한 우주 진리 공부(易) 차원에서 보면 지식으로 아는 것은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지식은 쌓는 것이고 진리는 덜어내는 것이라지요(노자 48장). 그렇다고 지식과 진리가 다른 것은 아니지요. 지식을 올바로 쌓으면 진리 지혜로 바뀌는 것이겠지요. 결국은 지식과 진리는 같이 통하는 것이니까요.

언어문자를 빌려 진리 공부를 하려다 보니 언어의 유희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이 지점을 이미 노자 도덕경 1장(연재물 1회)과 불교철학 이심전심(以心傳心), 개구즉착(연재물 33회)에서 말한 바가 있지요.

爲學日益(위학일익) 爲道日損(위도일손) 損之又損 以至於無爲(손지우손 이지어무위) 無爲而無不爲(무위이무불위) 取天下者 常以無事(취천하자 상이무사)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

학문을 한다는 것은 날로 더해 가는 것이며, 도를 닦는다는 것은 날로 덜어 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서 하는 것이 없음에 도달해야 한다. 하는 것이 없어야 하지 못하는 것도 없다. 천하를 취하는 자는 늘 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하는 것이 있으면 천하를 취하기에는 부족하다(노자 48장)

▲ 팔만대장경(사진출처 : 한겨레신문)

우리가 진리를 공부하는데 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그 중에 으뜸이 아상(我相) 아만(我慢) 아집(我執)이라 하지요. 그래서 팔만대장경 전편에 흐르는 주제들을 살펴보면

1) 차별 분별하지 마라(無分別智).

2)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3법인으로 바르게 보라(正見).

3) 고통은 탐진치 3독의 무명과 집착에서 생기므로 집착하지 마라.

4) 비우고 내려놓으라(放下着) - 번뇌 망상. 선입견. 고정관념. 색안경. 편견. 착각 오류에서 벗어나라.

5) 그리고 하심(下心) 하라는 말씀이지요.

이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상(我相)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지요. ‘나’라는 자존심의 ‘아상’을 내려놓으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이 아닌가요?라고 반문을 할 수 있겠네요. 현실의 진흙 구덩이에서 진리의 연꽃을 피우려는 공부가 있어야겠네요. 그 연꽃을 피워 본 사람만이 이전투구의 진흙 구덩이가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으니까요. 다시 말하면 평생 공부하다가 죽으라는 말씀이기도 하네요.

人我山崩處(인아산붕처) 너와 나라는 상이 무너진 곳에

無爲道自成(무위도자성) 함이 없는 도가 스스로 이루어지고

凡有下心者(범유하심자) 모든 것에 두루 하심을 하는 자는

萬福自歸依(만복자귀의) 만복이 스스로 돌아오느니라(下心卽佛)

최절인아산(摧折人我山) '나다' '너다' 하는 아만심을 꺾어 없애고

장양공덕림(長養功德林) 공덕의 숲을 키워나가야 하느니라.

<금강경>에서는 무상(無相), 무주(無住), 무념(無念)의 무심(無心)을 제시하고 4상(四相)을 내려놓으라 하지요. 이 4상 때문에 수행 공부가 안 된다는 것이지요.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말하지요. 이 말들은 금강경 32分 5,144자 중에 스무 번이나 반복 강조되고 있지요. 이 중에 첫째도 마지막도 아상이라는 것이지요.

1) 아상(我相) - 내가 누구인데? 재산, 족보 가문, 학벌, 지위 등등. 아집. 아만. 교만. 자존심. 나라는 집착. 내가 잘났다는 생각. 三昧가 되어야 내가 사라져서 無我를 체득할 수 있다. 내가 없어지면 나 아닌 것이 없다(無我 無不 我). 아상을 내려놓고 나를 사랑하라는 의미이다.

2) 인상(人相) - 나와 남을 구별.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함. 남과 비교 차별 경멸함.  차별심. 분별심. “저런 사람은 인간도 아니다” 내가 있으면 증애(憎愛)가 생긴다. 상대를 얕잡아 보는 생각. 남을 사랑하라는 의미이다.

3) 중생상(衆生相) - 탐진치(貪嗔痴). 사람 아닌 동식물을 멸시하는 생각. 중생의 본능적 고집. 마음에 들고 재미있고 즐겁고 편한 것만 취한다. 싫은 것은 남에게 미룬다. 동식물을 함부로 죽인다. 생명의 본질, 존재의 실상은 본래 평등하다. 유정, 무정을 모두 사랑하라는 의미이다(열등의식).

4) 수자상(壽者相) - 영원함에 대한 집착. 생명, 목숨에 대한 집착 - 영원한 수명, 본무생사. 생사해탈하면 해결. 불생불멸. 생명을 사랑하라는 의미이다(한계의식).

이상을 보면 4상이라는 것은 단지 ‘생각의 그림자’이고 ‘허상(虛想)’이네요. 이 허상의 노예가 되면 고통이 따르는 불쌍한 인생으로 추락하겠지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여기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이것이 나와 사람을 규정하는 가장 긴요한 일이 되겠네요.

진리의 세계에서 볼 때는 아는 것이 없다지요. 안다는 것은 인간들의 교만인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 ‘그저 공부하다가’ 인생을 마무리 하는 것이겠지요. ‘우주 삼라만상, 세상만사가 공부 아닌 것이 없구나! 제대로 아는 것도 없이 아는 척을 많이 했구나!’ 이런 작은 깨달음이 찾아오면 공부가 잘 되어 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편집자 주] 공자는 <주역>을 읽은 지 3년 만에 '지천명', 즉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원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주역은 동양학의 뿌리라고도 합니다. 동양의 가장 오래된 경전이란 뜻이죠. 주역은 유학에서 말하는 '삼경' 중 하나입니다. 원래 이름은 <역경>인데 '주(周)나라시대의 역(易)’이란 뜻에서 <주역>이라고 부릅니다. 한겨레 주주인 김상학 선생님은 현재 대학 교육원에서 주역 노자 장자 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요즘 동양철학 특히 주역에 대해 관심 갖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막상 호기심에 책을 들추면 너무 어려워 곧 덮어버리곤 할텐 데요. 이번 기회에 주역을 쉽게 접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상학 주주의 '쉬운 역학(易學)'을 2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상학 주주통신원  saram54@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