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평양 남북 마라톤 대회가 말해 주는것

6 . 남북, 일으켜 손을 잡고 달리다

반환점을 돌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반환점을 돌아 맞은 편 쪽에서 달려오는 북한 여자 선수 하나가 나를 보더니 팔을 쭉 펴 손바닥을 펴 보인다. 하이파이브를 하자는 뜻이겠다. 기꺼이 나도 손바닥을 내어 주었다. 짝 소리와 함께 손바닥에 긴 여운이 남는다. 반환점에 서 있던 북측 안내요원들이 힘내라며 박수를 쳐 준다. 반환점을 돌자 나 자신이 진짜 마라톤 선수가 된 것 같이 뿌듯했다. 살면서 마라톤 완주는 한번 해보고 싶어서 달리기 운동을 시작했지만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무리를 하는 바람에 무릎을 다쳐 달리기를 그만 두었었다. 평양에 오기 전 며칠 동네 달리기를 한 요량으로 하프 마라톤 완주가 가당키나 할 것인가.

다시 몇 분을 달렸을까.. 앞에 어떤 사람이 앉아서 발목을 잡고 있기에 지나치며 보니 아까 먼저 보냈던 버스 노동자였다. 뒤돌아 가며 다쳤느냐고 묻자 아침에 준비운동을 제대로 안했는지 다리에 쥐가 났다며 먼저 가라고 손짓을 했다. 아까 먼저 보낸 것을 후회했던 판이라 옆에 쭈그려 앉으며 왜 구급차에 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만 더 주무르면 되는데 구급차를 왜 타느냐며 일어선다. 내가 먼저 벌떡 일어나 손을 잡아 주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누구의 힘인지는 몰라도 그냥 손을 잡은 채로 몇 걸음을 걸었고 그가 뛰자고 했을 때 역시 그 손을 잡은 채 뛰기 시작했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는 언제 다리에 쥐가 났느냐는 듯이 뛰었고 나 역시 다시 경쾌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힘이 어디서 솟는지는 모르겠지만 완주에 대한 기대가 한층 더 높아지고 있었다.

▲ 차가 너무 적게 다녀서 교통경찰이 할 일이 없어서인지 그냥 아무 일도 안하고 서 있었습니다.

 

 

7.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와 성과

참여정부의 대북 정책은 일관성과 상호신뢰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모든 역량은 예측 가능한 남한 정권과 역시 예측 가능한 북한 정권 사이의 대화를 통해 평화정착을 하려고 애를 썼다. 참가국들의 신뢰를 통한 6자 회담에 정부 역량을 쏟아 부었다. 중국과 북한, 러시아와 북한은 한국과 미국처럼 상호방위협정을 맺은 사이가 아니니 한반도 유사시 북한이 믿을 곳이라고는 아무데도 없었다. 그들은 미국의 비위를 맞추지 못한 후세인이 죽임을 당하는 꼴을 보았고, 중남미에서 미국의, 손바닥 뒤집듯 하는, 배신의 현장을 목격했다. 미국의 압박이 심해지면 질수록 북한은 핵에 더욱더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노무현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유일한 방법은 전 방위적인 교류와 경제협력을 통한 북한의 점진적 개방이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또한 유일한 방법은 예측 가능한 정책과 남 북 간, 북 미 간 신뢰회복이었다. 참여정부는 대북 신뢰회복과 경협교류를 위하여 괄목할 만한 대북 성과를 이루었으나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ㄱ. 군사시설에서 생산시설로 바뀐 개성공단

개성공단 사업은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토지와 노동력을 결합하여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하는 상생의 협력 사업으로 노무현 정부 들어 본격 추진되었다. 2007년 1월 말 현재 21개 공장이 가동 중이며 북한 근로자는 2005년 3월 2,000명에서 2007년 1월 11,342명으로 늘어났고 제품 생산액은 51만 달러에서 1억 달러로 늘어났다. 1단계 사업이 완전 가동될 경우 연간 20억 달러의 생산이 예상되며, 7만에서 10만 명의 북한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ㄴ. 바다로, 땅으로, 하늘로 오간 사람이 10만명

남북을 오가는 인원이 급증함에 따라 2006년 한해에만 1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김대중 정부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개성공단 개발이 본격화 된 2005년부터 급격히 증가했다. 2004년 개통된 남북 연결 도로는 개성공단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데 물적 토대가 되고 있다.

ㄷ. 남북으로 오가는 배

남북해운합의서 발효(2005년 8월 1일) 등 제도적 여건 마련과 교역 확대로 2005년부터 선박 왕래가 급증하여 김대중 정부 선박 왕래 횟수의 2.2배에 달한다. 2005년부터 북한산 모래 반입 증가 등으로 선박 왕래 및 해운 물동량이 크게 증가했다. 2006년 모래 반입량은 1437만 톤으로, 수도권 모래 수요량의 25%를 차지한다. 남북해운합의서 발효로 2005년 8월 15일부터 북한 민간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가 가능해졌다. 남북해운합의서 발효 이후 2006년 말까지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은 173회이며, 제주해협 통과는 164회이다.

ㄹ. 잦아진 남북회담

남북 간의 현안 협의 해결을 위한 남북회담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남북회담이 주요 현안을 실질적으로 협의, 해결하는 장으로 자리 매김 했다. 특히 회담 개최가 정례화 되고 정치, 경제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등 분야가 다양해졌다. 회담 개최 대비 합의서 도출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 21%였던 합의서 도출 비율이 김대중 정부 시절 60%,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67%로 올라갔다.

*위 ㄱ.ㄴ.ㄷ.ㄹ. 발췌 -노무현과 함께 만든 대한민국 (지식공작소) 188,189,190,191 쪽-

“평화를 위한 전력의 핵심은 공존의 지혜입니다. 화해와 협력, 공존을 위한 지혜의 요체는 신뢰와 포옹입니다. 끊임없이 상대를 적대하고, 의심하고, 상대의 허물을 들추어 상대의 자존심과 불안을 자극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고 자존심을 세우려고 해서는 신뢰를 쌓을 수도 없고, 화해와 협력의 대화를 이어갈 수도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대범한 자세로 상대를 포용해야 합니다. 대결주의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속지 않기 위해 온갖 나쁜 상황을 가정하여 불신과 적대감을 자극하는 일보다 혹시라도 오해가 생기고 싸움이 벌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하는 것이 신뢰를 쌓는 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2007년 신년 연설-

▲ 면세점-지금 생각하면 아무거나 살걸 하고 후회도 했지만 당시에는 상품이 너무 조악하여 손길이 가지 않았습니다.

 

8. 손잡고 이룬 마라손(톤) 완주

처음에 손을 잡고 달릴 때는 몰랐는데 수 킬로미터를 계속 손을 잡고 달리다 보니, 그냥 손을 잡지 않고 혼자 달리는 것보다 더 힘이 들었다. 그것은 비단 나뿐이 아니라 그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었다. 맞잡은 손바닥 사이로 땀이 흥건하게 흘러 내려 미끄러워서 꽉 힘을 주어 잡아야 했다. 그는 내 손을 놓칠세라 몇 번이나 고쳐 잡았다. 처음에는 손에서 강인함이 느껴져 좋더니 나중에는 손이 아팠다. 그러나 우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 힘이 들어서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20km 표지판을 앞에 두고 나는 더 이상 달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동무 혼자 가세요. 나는 더 이상 못 뛰겠습니다.” 나는 속도를 늦추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네다. 저기 저 경기장 모퉁이만 돌면 됩니다.” 그가 같이 속도를 늦추면서 빼려는 내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주저 앉고 싶었다. 다리는 천근 만근 움직이지 않았다.

“그케 해서 어떻게 통일을 합네까? 통일을 하려면 얼마나 힘드는데...” 그가 완강히 내 팔을 끌고 있었다. 그의 간곡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젖 먹던 힘을 낸다는 것까지 생각해냈다.

그때부터 결승점을 통과할 때까지 어떻게 달렸는지 거의 기억이 없다. 마른 아스팔트에 운동화가 부딪히던, ‘탁탁탁’ 하던 소리와 ‘힘내시라요, 다 왔습네다’를 끊임없이 반복 하던 그의 목소리만 들렸다. 거의 실신할 지경이 되어서야 결승점을 통과했고 그때서야 십 키로 가까이 잡고 달리던 손을 놓고 그와 포옹을 했다.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와 목이 메었다. 그래, 통일이 별거랴. 이렇게, 이렇게라도 해서 천천히 하면 되지. 나는 바닥에 누웠고 내 옆에 잠시 앉아 있던 그는 북측 본부석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따 만나겠지...

세상에! 생전 처음 뛴 하프 마라톤에서 1시간 45분의 기록을 낸 것이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엄청난 기록은 커녕 완주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한동안 쓰러져 누워 있다가 정신을 차려 그를 찾았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마라톤 후에 있을 거라던 남북 선수들의 뒤풀이도 없었다. 그 날 밤 잠자리에서 계속 그의 목소리가 환청이 되어 들렸다. ‘힘 내시라요’ 하는 소리는 맞는데 ‘통일이 바로 저기인데 여기서 멈추면 어캅니까’ 는 아마도 기억의 왜곡이리라. 그는 그저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뛰어야 한다고, 통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인데.......

편집 : 안지애 부에디터

유원진 주주통신원  4thme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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