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면 不亦樂乎(불역락호)아

벗이 먼 곳에서 찾아와 준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이 구절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 이어지는 구절입니다. 벗은 나와 뜻을 함께 하여 같은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하여 각양각색의 벗이 있습니다. 함께 진리를 추구하는 도반(道伴)으로서의 벗도 있지만 모여서 도둑질을 일삼는 잘못된 벗들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벗은 진리를 추구하며 함께하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도반의 벗을 가리킵니다.

중국 춘추(春秋) 시대 때 거문고를 잘 타는 백아(伯牙)라는 명인(名人)이 있었습니다. 그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오직 종자기(鍾子期)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지기(知己)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줄 이가 없다 하여 거문고를 부숴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하여 소리를 알아준다는 ‘지음(知音)’은 서로 깊이 이해해 주는 사이를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모름지기 벗이란 이러한 관계일 것입니다.

나를 깊이 이해해 주는 벗이 멀리 살아, 자주 만나지 못하다가 천리 길을 멀다않고 찾아온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벗이 먼 곳에서 찾아준 것도 기쁘고 즐거운 일이지만 벗과 뜻 맞는 얘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는 즐거움이 포함된 글자가 ’락(樂)‘입니다. 행복은 자신 내면에 깊이 몰입해서 얻기도 합니다, <논어>1.배우고 때때로 익히면’에서 언급했던 “열(悅)”을 느낄 때입니다. 또한 행복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벗과 함께 소통하며 얻기도 합니다.

▲ 백아와 종자기 (출처 : 다음백과)

 

人不知而不慍(인부지이불온)이면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세상사 인간관계는 대부분 이해관계와 얽혀 이루어지기 때문에 백아와 종자기 같은 아름다운 관계를 가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의 선의를 곡해하여 비난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선의를 악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보통 사람(소인)은 참지 못하고 화를 냅니다. 그러나 참다운 군자는 그러한 일을 당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온(慍)’ 자는 ‘화를 마음속에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겉으로 화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속으로 서운하게 여기는 마음조차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마음을 지닐 수 있을까요?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자는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할 수 밖에 없는 상대를 이해하고 오히려 측은하게 여기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아무 잘못한 일 없이 남에게서 비난을 받더라도 잔잔한 호수의 물처럼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이 바로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군자(君子)의 모습입니다.

 

[편집자 주] 한국고전번역원 이규옥 수석연구위원은 한겨레 창간주주다. 정의로운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창간 주주가 되었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문으로 된 기록물을 한글로 옮기는 일을 한다. 중학교 시절 한학자이신 할아버지의 제자 선생님께 <명심보감>을 배웠다. 한문이 재밌고 잘 맞는 공부란 걸 알게 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커 사학을 전공한 후 한문과 역사, 둘을 아우르는 곳,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규옥 창간주주는 '이규옥의 '고전산책'을 통해 새겨볼 만한 <논어> 문구를 풀이해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이규옥 주주통신원  galji4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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