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런 건 아니지만 계절에 따라 여행하는 목적이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가을이나 겨울에는 거리를 배회하는 것도 가끔 해볼 만하다. 아무 목적지나 행선지가 없어도 거리를 거닐고 있노라면, 무언가 아련한 계절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여름은 아니다. 여름은 거리를 거닐기에 너무 덥고 번거롭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낯선 나라나 도시로 여행할 경우는 예외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던 한 여름의 어느 날, 나는 낯선 도시를 여행하고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숙소를 잡아놓고 거리를 배회했다. 낯선 도시에서 초저녁부터 숙소에 처박혀 있기에는 좀이 쑤셔서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둠이 깔리고 있었고 중심지에서 벗어나 작은 도로를 거닐고 있었다. 맞은편에 건물이 보이는 도로였다. 그 건물이 어떤 건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언뜻 보니 어두운 도로 맞은편에 무슨 일인가 벌어진 듯 했다.

건물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시체가 있는 듯 보였고 주위에 몇몇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것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조금 있더니 검시소의 시체 처리반에서 나온 듯한 사람들이 들것으로 시체를 운반해갔다. 길가에 있는 앰뷸런스에 실으려는 것 같았다. 그들은 건물에서 벗어나 앰뷸런스를 향해 가는 듯 보였지만, 잠시 어둠 속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도중에 시체를 분실한 것 같았다.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어둠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더 이상 들것도, 시체도 들고 있지 않았다. 앰뷸런스에 싣기도 전에 시체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사태평이었다.

나는 그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이에 시체를 빼돌리기라도 한 걸까? 빼돌렸다면 어디로 빼돌린 것일까? 일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목격자는 나 하나 밖에 없었다. 여행 중에 벌어진 일치고는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만히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뭔가 께름칙하여 그들을 만나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낯선 도시지만 그 정도의 의무와 권리는 내게 있을 터였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어찌 이런 일을 모른 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2인1조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분위기나 생김새가 너무 대조적이었다. 한 명은 밝고 환한 의상을 입은 멋진 청년이었고, 다른 한 명은 어둡고 칙칙한 의상을 입은 심각한 표정의 중년 사내였다.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였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그 중에 밝은 의상을 입은 잘 생긴 청년이 상냥하게 대답한다.

"저는 환상이라고 합니다."

칙칙한 의상을 입은 중년의 사내도 시큰둥하게 말한다.

"나는 환멸이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의 답변이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환상과 환멸이라는 단어가 그리 낯설지 않기도 했다.  <계속>

* 대표사진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59640.html

*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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