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의병 정신을 이어받아 4형제도 의병활동한 충신집안

- 5부자 모두가 창의하여 공을 세운 오충각<五忠閣> -

벌교읍 장암동에 5충각이 있다. 이 오충각에 밀양 박씨 집안의 박천붕 공과 공의 아들 4형제 박원겸, 박인겸, 박예겸, 박의겸 5충신을 모시고 있다.

▲ 오충각 정문<구글이미지>

5충신 5부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각각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순국을 하였다. 이 오부자가 모두 충신 통훈대부(정3품)로 추서(돌아가신 뒤에 충신의 공을 기리기 위해 벼슬을 내림) 되었으니, 뛰어난 공도 기릴 만 하지만 한 가정에서 다섯 충신이 나왔으니 집안의 명예 또한 높이 받들 만하여 가문의 영광이라 하겠다.

규정(樛亭) 박천붕은 고려 시대 찬성(정2품)을 지낸 나산(籮山) 경유 강생(剛生)공의 후예로 인종 임금 때인 을사년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뛰어난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9살 어린 나이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넣어서 어머님을 살려 내는 효행으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문열공(文烈公) 중봉(重峯) 조헌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를 한 뛰어난 선비이었으며, 선조 임금 때(경진년) 무과에 합격하여 방에 이름을 올렸으며, 한성 참군직을 거치던 중에 임진왜란을 맞게 되었다.

스승 조헌 선생이 의병의 깃발을 올리시니 당연히 따르리라 나서서 종사관으로 참전하여서 700의총으로 유명한 금산싸움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 오충각 안내문 <구글이미지>

그런 일을 겪고 난 후, 아들 4형제는 자라서 모두가 문무에 힘썼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모두 무과에 합격하였다. 각기 벼슬아치로 근무하다 인조 임금 때 일어난 병자호란 당시 충청도 병마절도사 이의배 공의 특별한 부름을 받아 모두 그의 종사관이 되었다. 나라의 원수들을 무찔러 하늘나라에 계신 어버이의 한을 풀어 드리자고 피로 맹세하였다. 4형제가 다투어 선봉이 되어 전쟁터로 나아갔다. 이듬해 적군의 진지 속에 뛰어들어서 싸우다가 4형제가 모두 장렬한 최후를 마치었다.

이들 4형제는 피로 충성을 맹세한 대로 전쟁터에서 싸우다 전사하였고 하늘나라에서 아버지와 만났을 것이다. 5부자가 저 세상에서 충혼으로 만나 나라를 위해 서로의 뜻을 다시 모았을 것이다. 

이처럼 국난을 당하여 가족의 편안함을 생각지 않고 5부자가 한꺼번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일은 온 나라 안에서도 그 예를 찾기 힘들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순조 17년에 이들 5부자에게 다시 벼슬을 내렸다. 정려(旌閭 :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해 효자·충신·열녀 등이 살던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하사하여 그 충성을 후세에 전하도록 하였다.

▲ 장암의 통훈대부 추서<구글이미지>

왕이 명하여 담양 화암과 낙안 상사에 이천원(伊川院)을 세워서 제사를 모시도록 하였다.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벌교읍 장암리에 살면서 조상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참고 : 全南道誌, 樂安郡誌에서 취록하여 수록한 1974년판 寶城郡鄕土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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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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