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vs 생활임금

나는 해마다 모 지방자치단체의 생활임금심의위원회의 심의위원으로서 생활임금 심의에 참여하고 있다. 위원으로는 나와 같은 노무사, 변호사, 세무사 등 법률 전문가들과 노동계에서 한국노총(중앙연구원)의 선임연구원, 자치단체 의원 등으로 구성되어 생활임금에 대한 심의를 하고 최종 결정을 한다.

그러면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그 기본 개념은 표현상으로도 대략 이해할 수 있다. 즉 최저임금은 법률(최저임금법 및 법 제4조)에 근거해 매년 최저임금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하여 실시되는 강행 법규(동법 제6조)에 의한 임금이고(위반시 벌칙 적용), 생활임금은 근로자들의 주거비, 교육비, 문화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수준으로 근로자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정책적 제도이지만 그 실시에 있어 법적 구속력은 없다.

법으로 명시된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별도의 생활임금 제도가 운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최저임금제도가 그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겠다는 의미이다. 결국 법으로 규정된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이라는 새로운 체계를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순서는 바뀌었지만 어쨌든 긍정적이다.

지자체(지방자치단체)의 생활임금 심의 내용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우리나라의 생활임금제도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2013년부터 실시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은 해마다 전년도 말에 결정되기 때문에 생활임금 인상률 역시 어느 정도 결정된 상태에서 심의위원들의 의견을 듣게 된다. 이 때 위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나오게 되지만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그대로 최종 승인이 나고 시행되는 구조다.

심의위원회에서 사측을 대변하게 되는 위원들이 해마다 비슷하게 강조하는 부분은 영세 상공인들이 인건비에 대해 겪게 될 부담에 대해서다. 최저임금 수준을 상회하는 생활임금은 사업장의 추가 비용지출을 초래하게 되며, 임금 인상과 함께 증가하는 4대 보험, 부수적인 비용증가까지 더하게 되면 규모가 작은 영세 사업장에서는 존폐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호소한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생활임금은 지방자치단체에 근무하는 일반 근로자(공무원 신분이 아닌)에 적용하는 임금이긴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일반 기업의 임금(최저임금 포함) 수준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결국 영세 상공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주장이다.

사측 주장은 틀림없이 맞는 현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영세 사업장의 형태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구조이고 이 왜곡된 구조에 맞추어 임금, 고용정책을 맞출 수는 없다. 영세 상공인들이 겪는 이러한 어려움은 장기적 안목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상공인들에 대한 정책자금 지원 및 원-하청(도급-하도급) 관계의 불합리한 계약 조건을 정상화해 나가는 각종 지원 정책이 함께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원청과 하청의 관계는 전형적인 갑-을 관계다. 따라서 도급계약의 계약 금액 결정시 필요한 노동인력의 인건비, 근로 환경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등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이 강화되어야 하고 법제화 등으로 개선해가야 한다.

일반 영세 사업장이 사업을 운영하는데 발생하는 고정비용은 크게 임대로, 제반 관리비, 인건비 등이다. 알다시피 임대료의 폭력적 상승으로 인해 사업자들이 겪는 부담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결국 만만한 것은 인건비가 된다. 이 비용구조를 능가해야 사업이 유지될 수 있지만, 시장(매출) 구조는 이미 포화상태이다 보니 오직 인간의 노동력을 쥐어짜야 최소한 사업을 유지라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대자본의 대기업들이 이미 앞서 그 범례를 만들었고 그 구조는 순차적으로 하방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즉 그들은 우리가 흔히 듣고 있는 ‘하도급, 하청’이라는 형태로 인건비를 관리하기 시작했고(하청으로 이전될수록 노동 상황, 임금 수준은 점점 더 열악해지는 것은 당연한 상황), 이런 열악한 구조에서 하도급 기업이나 영세상공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도 원도급(원청) 회사들처럼 비정규직, 시간제 아르바이트 등으로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법 외엔 없는 구조다.

이러한 비정상적 구조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위험하다. 첫째, 대기업의 하청구조를 통한 이익의 독점 구조는 갈수록 심각해져 노동환경 역시 갈수록 피폐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둘째, 영세상공인들이 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사업이 위태로워져가고 있다면 이는 자본주의 원리상 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 사업장이라는 의미이다.

즉 그들은 말이 사업가이지 실은 또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자본의 노동자라는 이야기다. 이들 영세상공인들은 대자본들이 하청, 하도급이라는 형태로 근로자 상당 부분을 밀어 내는 과정에서 그 고용상태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이다. 즉 현실적으로 어딘가에 고용되어 있어야 하는 인력인데 대자본이 밀어내 실업 상태가 된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영세 사업장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임대료는 타협의 여지없이 꿈쩍도 않으니 할 수 있는 것이란 또 다시 저임금 고용, 즉 또 다른 빈곤층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본은 하부 구조를 쥐어짜가며 지속적인 고용불안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3년 세종시 종합청사로 이전하기 이전 강남 논현동 서울세관 건물에 함께 있었다. 해마다 7월이 되면 세관 옆 건설회관 건물에서부터 세관 건물까지 각종 노동단체들과 노동자들의 농성이 있었다. 그 길 건너편에 사무실을 두었던 나는 해마다 7월만 되면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시끄러운 구호와 소음 등으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원들도 나도 일찍 퇴근할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임금 인상이 현실화되어 그들이 그 더운 여름날 더 이상 그런 고생을 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랬었다.

 

► 출처 : 한겨레 2017.7.17

노동 정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은 ‘고용’과 ‘임금’ 정책이다. 이 둘은 전투에서의 선봉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가장 앞에서 상대와 마주하면서 즉각적인 결정을 해야 되고 후방이 다음 전략을 세우는데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임금과 고용정책이 이들 선봉대라면 최저생계를 위한 각종 지원책과 각종 복지정책은 후방업무에 속한다.

이들 선봉대의 정책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활의 최저수준이 곧바로 반영될 수 있는 지점이므로 이 부분이 왜곡되기 시작하면 이후의 모든 복지 정책도 함께 왜곡된다. 모든 복지정책 지원의 기본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둘째, 이 선봉대가 안정적이어야 후방도 안정되고 또한 정책 운용비용도 적게 든다. 선봉대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즉각적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선봉대가 취약하여 많은 부분이 복지정책으로 채워야 한다면 그에 따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된다.

즉 취약계층을 찾아내고 선별하는데 드는 행정 비용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고용, 임금 정책과 복지정책은 양립해야 하는 두 축이지만 전방의 고용, 임금 정책이 보다 튼튼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야 보완의 기능인 복지정책도 순조롭게 따라올 것이다. 고용, 임금 정책이 흔들리게 되면 복지정책 역시 각종 이해관계자들(기업, 정치 등)에 의해 더욱 왜곡되고 흔들릴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내년 적용될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결정되고 시행되는 과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첫째, 공익위원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상황이 아닌 노사간 표결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점. 둘째, 임금 인상으로 인한 영세 사업장에 대한 각종 지원 정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노동환경의 장기적 정상화를 향한 발걸음도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갈 길은 아직 멀다.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시기 G7국가 평균과 한국 민생지표’를 비교 분석한 현대경제연구원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둔 우리 국민들이 과거 비슷한 시기의 선진국(G7ㆍ선진 7개국)보다 임금은 20% 가량 덜 받으면서 일하는 시간은 20% 더 길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빈곤율이나 사회복지지출 수준도 선진국보다 크게 뒤처져 있어, 앞으로 경제성장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성장모델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한국일보, 2017.07.16).


► 출처 : 한국일보, 2017.07.16

문재인 정부 시대를 맞아 우리는 이제 막 생활임금의 의미와 함께 복지사회를 향한 걸음마를 떼고 있는 상황이다. 그 단초가 바로 최저임금이기를 바란다. 영세 기업과 상공인은 근로자와 대척점에 있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이들에 대한 정부보조금 및 각종 세제혜택을 함께 준비하고 있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진희 주주통신원  kimjh119@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