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박봉우 창간 주주(숲과문화연구회 회장, 강원대 명예교수)는 임학과 조경학을 전공하고 강원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정년퇴직했다. ‘산이 공동체의 중요자산이라 인식하고, 잘 활용하여 미래세대에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1992년 동료들과 숲과문화연구회를 발족하여, 25년 동안 변함없이 활동하고 있다. 또한 1992년부터 시작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숲 찾아가기’는 137차 진행하였다. 2003년부터 시작한 ‘해외의 아름다운 숲 탐방’은 10차 진행하였다. 이 글은 10차 해외 숲 탐방 후기이며 앞으로 ‘숲 탐방’에 관한 기사를 <자연의 향기>에 연재할 예정이다.

해외 숲 탐방기 : 몽골의 숲

숲과문화연구회가 1992년 창립하면서부터 시작한 ‘아름다운숲찾아가기’는 1992년 3월 29일 원주 신림 성황숲과 치악산 입구의 황장금표와 황장목 소나무 숲을 탐방한 이래 매년 6회 내외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양구 펀치볼 일대의 숲을 찾았고, 내달 8월에는 138차 홍천 미약골 탐방이 예정되어 있다.

국내의 숲 탐방을 시작한 이래 외국 숲에 대한 궁금증으로 참여 해 온 분들의 요청에 따라 1년에 한 번 외국 숲도 방문하고 있다. 작년엔 일본 북알프스 지역 카미코지를 탐방하며 숲을 즐겼고, 숲길을 실컷 걸었다. 몽골 숲은 지난 25년의 시간 속에서 10번째로 다녀 온 해외 숲이다. 몽골하면 끝 모를 초원을 연상하는데 '홉스골'은 수평선을 보여 주는 호수와 높은 산과 숲, 그리고 초원이 함께 하고 있는 곳이다. '홉스골'은 몽골의 국립공원지역이다.

6월28일, 매년 이맘때쯤 출발하는 해외 숲 탐방을 5박 7일 일정으로 시작하였다. 인천에서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까지 비행하고 호텔에서 1박하고는 바로 홉스골 인근 공항인 무릉 공항으로 날아간다. 공항으로 향하기 전, 아침 일찍 호텔 주변을 걸었다. 도시 중심부인 ‘평화대로’에 위치한 호텔 주변은 가로변의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다. 위도가 높은 지역이라 침엽수인 유럽소나무, 시베리아 이깔나무들이 가로의 녹지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활엽수로는 사시나무 류가 간간이 끼어 있다. 호텔 맞은편에는 칭기즈칸 광장이 있다. 드넓은 광장 한쪽 녹지대에는 2016년에 개최한 '아샘정상회의'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는데, 몽골의 조각 수준이 예사롭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무릉 공항에서 홉스골 호수가 있는 곳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포장과 비포장도로를 두 시간 반가량 정신없이 달린다. 창밖으로 몽골의 초원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여러 종류의 가축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으로 보인다. 드넓은 초원이 맑은 청색의 하늘과 끝 간 데 없이 이어진다. 지평선에는 벌거벗은 산들이 보인다. 곳곳에 물이 흐르는 하천도 보인다. 우리 일행이 몽골에 도착하면서 비를 가져 왔다고 하면서 반가운 손님들이라고 가이드가 한마디 한다. 하기야 일행 중에 용이 넷씩이나 있으니 비가 오지 않을 수가 없다.

홉스골 호수변의 숙소인 게르에 도착하였다. 18년 전에 관광사업을 시작한 곳인 만큼 주변 환경과 풍경이 상당히 좋았다.

청정 그자체인 이곳에서의 별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함은 일행 모두에게 상당한 기대감을 주었지만, 밤마다 내리는 비로 ‘별 볼일 없는 여행’이 되었다. 홉스골의 첫 밤은 게르의 천막을 때리는 빗소리와 게르 안의 난로 속에서 탁탁 소리를 내며 타고 있는 장작소리와 더불어 지나갔다.

둘째 날 아침 여전히 비가 와서 일정을 미루고 인근에서 유목하고 있는 게르를 방문하여 그 가족들과 더불어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비가 그쳐서 숙소 주변 숲을 한 바퀴 걸었다. 숲은 이깔나무 숲이다. 홉스골 호수의 영향으로 이깔나무들은 온대 다우림에서나 볼 수 있는 이끼를 치렁치렁 매달고 있다. 이깔나무 숲은 다른 숲과 달리 숲바닥층이 단순하다.

이곳도 거의 마찬가지인데, 숲바닥층에 다양한 초본 류들이 자리 잡고 있고, 계절이 계절인지라 야생화가 만발하고 있다. 야생화 전문가 덕분에 많은 꽃들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종 목록에 올라있는 복주머니란(개불알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탄성이 터진다.

또 분홍노루발도 무리지어 피어 있어서 환호하며 사진기를 들이댄다.

예전에 공부할 때는 숲에서는 오로지 나무만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것도 사람이 쓸모 있다고 생각한 나무들만이 이야기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숲속을 거닐어도 나무보다는 야생화들이 관심 대상이고 화제에 오른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숲은 여전히 나무가 주인이다. 그 나무들이 있어서 숲은 우리에게 산소를 공급해 주고, 맑은 물을 저장했다가 내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소중한 나무의 역할은 나중 일이고 당장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은 색색의 야생화이다.

여행 4일차, 홉스골 호수 주변은 물안개로 선경을 이룬다.

하늘은 구름이 가득했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산행하기에 적당할 것 같다. 한 시간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햐사산 입구에 도착했다. 지금 위치는 해발 1700미터, 정상은 2450미터이다. 구 소련의 지질학자들이 연구차 머문 흔적이 남아 있어 정상까지 임도가 잘 개설되어 있고, 산행은 임도를 따라 3시간 여정이었다. 왕복 6시간, 만만치는 않겠지만 정상을 오르는 것은 각자 형편에 따른다. 숲과문화연구회의 산행은 정상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산에서 숲에서 만나는 것들과 더불어 시간을 보내는 느림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번 햐사산의 산행은 머릿속에 초원만 가득했던 몽골의 산과 숲을 보고, 홉스골 호수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과 우리 식으로 말하면 돌무지 성황당이라고 할 수 있는 '어워(ovoo)'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정을 향하기로 하였다. 숲길은 야생화 천국이다. 특히 분홍바늘꽃의 군락은 산행 내내 장관을 연출하였다.

정상에 이르기까지 장구채 류를 비롯하여 다양한 야생화를 만끽할 수 있었다. 임도는 그늘이 전혀 없었지만 구름 낀 하늘 덕분에 견딜 만 했다. 임도를 벗어나면 시베리아 이깔나무 순림이다. 눈으로 보기에는 거의 100% 시베리아 이깔나무의 세계이다. 이깔나무는 흔히 낙엽송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북에 분포하고 있고, 남쪽에는 우리가 심어 가꾼 일본잎갈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낙엽송은 사시사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른 봄 나풀거리는 연한 연두색 짧은 잎을 내고, 여름이면 진한 녹색으로 색깔을 더한다. 가을에는 밝은 노랑 단풍을 들여 침엽수 숲이건만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겨울에는 낙엽송이라는 이름과 걸맞게 잎을 떨구어 나목으로 변신한다. 해발 1850미터 쯤 부터는 사시나무 류 한 무리가 남쪽 경사면에 나타난다. 남쪽 사면이라 침입해 들어 온 것으로 보인다. 이깔나무와 비해 볼 때 나이도 어리고 해서 천이과정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사면의 좀 더 위로는 이미 무리를 이룬 사시나무들이 고사한 채로 있는 것도 보여, 환경에 적응하는 단계에 있지 않나 싶었다. 연구하러 온 것이 아니니 그냥 지나친다.

1950미터부터는 다시 이깔나무 순림이다.

오랜 삶속에서 많은 일을 겪은 흔적들을 보여 주는데, 밑동이가 줄기에 비하여 상당히 굵고 갈라진 것들은 산불을 겪은 흔적들이다. 2200미터를 넘어서면서부터 이깔나무는 드문드문 나타나고 키도 작다. 점차 바람도 거세다.

정상까지는 고원처럼 평탄하게 펼쳐진다. 햐사산 너머 더 높은 주변의 산들은 나무 한그루도 없고 거리가 있어서인지 마치 굵은 모래가 흘러내린 듯한 사면으로 황량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햐사산은 정상인 듯 아닌 듯하면서 계속된다. 가까운 듯하지만 저 멀리 앞서가는 일행들이 보인다.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이자 산의 끝이다. 아래는 절벽에 가까운 사면이 호수와 이어진다. 정상 2450미터에 이르기까지 야생화가 함께 한다. 그들은 이젠 키가 매우 낮다. 올라오면서 만났던 것들이 난장이가 되어 있다. 돌무지 성황당인 '어워'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산행을 하는 이마다 쌓아 올린 '어워'들이다. 그 가운데 좀 더 큰 '어워'에는 하늘 빛 청색 헝겊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이들은 하늘빛 청색을 나무에 건다. 우리와 동일하게 하늘을 받들지만 우리가 흰색을 경건하게 생각하듯 이들은 청색을 성스러운 색으로 삼는다. 푸른 하늘, 태양 빛이 비추는 홉스골의 수면도 하늘과 같은 색이다. 청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크고 작은 수많은 어워들. 무슨 바람을 이 어워에 담아 놓았을까? 돌 하나 손에 쥐고 염원을 외우면서 세 바퀴를 돌고 돌을 내려놓는단다. 내가 만드는 어워, 이미 누군가가 만든 어워에 내 돌 하나를 더하는 어워, 어워는 이렇게 늘어가고, 커간다. 햐사산에서 산과 물과 하나가 된 모습을 본다. 우리가 묵는 게르가 있는 숲이 저 아래 아득하게 보인다. 내려오는 길에는 그때까지 참아 주었던 비가 한차례 뿌리고 지나갔다. 오랜만의 산행에 피곤이 몸을 짓누른다.

여행 5일차, 전날 6시간을 걸었지만 아침의 몸 상태는 오히려 모든 뼈마디들이 제자리에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허벅지에 미세하게 근육통이 느껴질 뿐이다. 아주 기분 좋은 아침이다. 성산이 내 몸을 정상으로 되 돌려주었다 싶다.

무릉 공항으로 이동해서 다시 울란바토르를 향한다. 여행도 자주하면 꼭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초창기에는 왜 가방을 일시적으로 분실하는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언젠가 사흘 후에 돌려받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저쪽 공항에 강풍이 불어 비행할 수 없다고 한다. 덕분에 무릉 시의 박물관, 초원, 선사시대의 암각화 등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다녔다는 현지인 가이드가 알뜰하게 시간을 쓸 수 있도록 애를 많이 써 주었다.

여행 6일차, 울란바토르에서 가까운 테렐지 국립공원으로 가서 자작나무 숲을 거닐었다.

몽골의 국립공원에는 많은 관광시설시설들이 함께 하고 있고, 가축들도 늘 함께 한다. 오후에는 몽골의 전통 공연을 감상하고, 여행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 백화점에도 들렸다. 식물도감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책방에 들렀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그래도 식물도감 하나를 칭기즈칸 공항의 면세점 책방에서 고를 수가 있었다.

초원이고, 건조한 지역으로 막연하게 산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몽골은 산도 많고 숲도 부분적으로는 울창했다. 초원도 예전에는 숲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숲이었던 그런 흔적들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목 생활이 지속되고, 툰드라 지역이므로 나무를 지속적으로 심어 가꾸지를 않고 벌채하여 이용만 해 왔기 때문에 초원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유목민들은 한 곳에서 2개월 정도 머문다고 한다. 더 이상 머물게 되면 목초지가 훼손되어 다음 해 방목에 어려움을 주게 되기 때문이란다. '수용력' 개념을 적용한 목축 방식이다. 현대에 들어서 공간 계획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수용력 개념이 방목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는데, 이번 여행은 그 현장을 보고, 듣고, 확인하게 된 기회이기도 하였다.

(사)숲과문화연구회는 우리 숲을 아끼는 모임으로 숲의 소중함을 지키며, 숲을 즐기고, 또 우리 아이들의 세대까지 온전히 물려주자는 생각을 함께 하는 모임이다. 연구회는 이러한 우리의 생각을 공유하고자 하는 일반인들과 더불어 활동하며, 회비로 운영하는 비영리 독립단체이다. 해외 숲 탐방기를 이곳에 올리는 이유 중 하나도 그러한 생각을 가진 분들의 참여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오염의 악화는 숲을 통해서 줄일 수 있다. 또 숲이 있어야 물도 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깨끗한 하늘과 맑은 물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물론 현 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숲을 충분히 누리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손 잡자고 숲과문화연구회는 말한다. 독자 여러분께, 연구회 회원으로 함께 하자고 권하고 싶다.

* 박봉우주주 인터뷰 기사 :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74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박봉우 주주통신원  pakbw@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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