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영혼의 사다리

내가 이들을 초대했으며, 한 밤에 거리를 배회한 것도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면 정작 당사자인 나는 왜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걸까? 또 다른 의문도 든다. 시체가 사라지기 전에 시체 주변에 웅성거리고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걸까?

"그럼 아까 그 시체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진 거요?"

"그들은 당신의 자아가 의식하고 있던 타인들의 시선이오. 자아는 타인들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게 습관이 되어서 죽는 순간까지도 타인에 대한 자의식이 남아 있어 그것이 잔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이오."

이들은 도대체 사람인가 귀신인가? 그것도 아니면 천사이거나 악령일까? 이들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나는 이들과의 대화 속에 더욱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나의 자아가 죽었으니, 내가 어떤 깨달음의 경지에라도 들어선 것이오?"

칙칙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착각하지 마시오. 그건 상태의 변화일 뿐 단계의 상승을 뜻하는 건 아니오."

"상태는 무엇이고 단계는 또 무엇이오?"

"당신이 전과는 다른 상태가 되었다고 하여 당신의 영혼이 한 단계 상승한 게 아니란 말이오. 왜냐하면 당신은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오. 현세에서 생을 영위하는 동안 확실한 경지라는 건 있을 수 없소."

환멸의 냉정함이 안스럽게 보였던지 멋진 청년 환상이 위로하듯이 설명을 덧붙인다.

"인간은 가변적 존재이고 늘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인 것이지요."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인간의 내면세계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실감할 뿐.

"영혼의 성장은 욕망의 단계와 맞물려 있어요. 육체와 물질에 대한 욕망을 정화하고 승화시켜 순수의 세계로 향해가는 과정이 녹록치만은 않을 겁니다. 감각적 환희나 물질적 풍요를 이루면 행복해질 거라고 여기는 환상이 집요하게 그걸 방해하고 있거든요."

에로스가 고양되는 과정을 플라톤은 '사랑의 사다리'라고 했던가? 성경에서는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했다고 하여 '야곱의 사다리'라고 부른다. 인간은 순수를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감각적, 물질적 욕망을 동시에 추구하는 모순적 존재이기도 하다.

"당신이 사는 세상은 물질이 넘쳐나고 감각을 최우선시하지요. 그것들은 유혹이기도 하지만 결핍의 위협이나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지요. 그러나 모두 환상에 불과하오. 삶의 현상들은 실체인 듯 보이지만 허상이고, 허상인 듯하지만 실체이기도 하지요."

불교에서 일컫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두고 하는 말일까?

"삶의 양상은 다 비슷한데, 도대체 어떤 것이 허상이고 또 어떤 것이 실체란 말이오?"

"욕망을 이루는가, 못 이루는가의 관점에서 보면 삶은 허상일 것이요. 그러나 선과 진리를 세상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보면 삶은 실체인 것이오."

헷갈린다. 현실 속에서는 허상과 실체가 마구 뒤섞여 있는데 이를 어쩌란 말인가?

사람들은 지상과 천국을 이어주는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할뿐 좀처럼 지상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지옥행 사다리에는 잽싸게 올라타면서도 말이다. <계속>

* 대표사진 출처 : http://v.media.daum.net/v/20170326161605027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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