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에 간지 다섯 달 지났을 때 일병을 달고 휴가를 나왔다. 휴가를 나온 아들이 많이 변해서 좀 놀랬다. 성숙해졌다고 할까? 이제야 젖살(?)이 확 빠져서 뺨이 푹 파였다. 늘 딸랑딸랑 귀여운 강아지 이미지였는데, 얼굴이 홀쭉해지고 광대뼈가 드러나면서 강인한 진돗개 느낌이 났다. 동생을 ‘강쥐’라고 부르는 제 누나도 도베르만이나 셰퍼드 분위기가 난다고 하니 아들은 확실히 개상(?)인가 보다.

그토록 원하던 특수임무반의 훈련도 할 만하다고 했다. 솔직히 시간 가기만 바라는 군대에서 제자리 서있는 업무가 주된 평범한 헌병보다 다양한 훈련을 하는 특수임무 헌병이 더 잘한 선택 같다고 했다. 10월에는 헬기 고공낙하 훈련도 한다고 큰 기대를 했다. 특히 아들은 사격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려서부터 사격을 좋아하던 아들은 군대 가기 전에도 집 앞 야산에 있는 나무를 겨냥해서 비비탄총을 쏜 적도 있다. 조급해하지 않고 쉽게 흥분하지 않는 형이라서 사격이 잘 맞는 것 같다. 그래 그런지 사격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걸어가면서 하는 다발사격, 순간 좌우 90도, 180도 회전하면서 하는 사격, 권총사격 등.. 신이 나서 설명을 하고 시범을 보여준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다양하게 배우니 재미있나 보다. 냉정하게 말하면 사람 죽이는 기술인데도...

그리곤 자신감에 차서 이런다.

“엄마, 나 제대할 때, 정말 남자다운 남자가 되어 돌아올게. 기대해.”

아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아들이 ‘남자다운 남자’가 되기를 기대한 적이 없다. ‘선비형’이 내 이상형이기도 하거니와, ‘남성성과 여성성을 적정 비율로 조화롭게 가진 인간이 성숙한 인간’ 이라는 개똥철학 인간관을 갖고 있기에 아들에게 ‘남자다워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겁이 많았고 마음이 여렸던 아들이기에 더욱 그랬으리라. 그런데 아들은 ‘남자다운 남자’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한다. 아들은 진지한데 나는 쿡~ 웃음이 났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세 번 변한다고 한다. 눈 동그랗게 뜨고 내 뒤에 숨어 ‘무서워’를 연발하던 아들과 갈색으로 그을린 피부에 울뚝불뚝 근육질의 지금 아들. 가끔 ‘진짜. 쟤가 내 아들 맞나’ 생각까지 든다. ‘해맑고 당당하게만 자라다오’가 어린 아들을 위한 기도였는데... 아들은 ‘남자다운 남자’가 되겠다고 손을 불끈 쥔다. ‘남성성’을 강조하는 군대에 있어서 그런가?

아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또 하나 들려주고 갔다. 제대를 앞둔 ‘살 써는 선임’에 관한 이야기다. 이 선임은 장난기가 많다. 빵 써는 플라스틱 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후임들 살을 썬다. 영화 ‘아저씨’의 칼로 살을 써는 장면을 흉내 내며 유독 아들에게 와서 “나는 아저씨야.” 하면서 팔을 썬다. 아들이 아파 죽겠다고 막 뒹굴면 다른 선임이 구해준다고 와서 칼을 뺏어 그 선임의 다리를 썰면서 논다. 아들은 이 놀이가 해도해도 그렇게 재미있다고 한다. 자신도 선임이 되면 플라스틱 칼로 신입들을 썰어줄 거라고 하며 이렇게 말한다.

“엄마 선임 중에 성실하고 심각하게 군기 잡는 선임이 있고, 좀 잘 놀아주는 선임이 있어. 군대에선 둘 다 필요한 것 같아. 나는 군기 잡는 선임이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나는 신임들하고 장난쳐주는 그런 선임이 될 거야.”

너무 군기 빠졌다고 미움 받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면 “내가 해야 할 일 딱딱 하면 미움 받을 일 없어!” 라고 걱정 말라고 한다.

선임들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어 실제 아들과 관계가 어떤지는 모른다. 저런 장난을 눈치 안보고 하는 것을 보면, 한 번도 선임들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귀대 전에 내무반 식구들 줄 작은 먹거리라도 사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럭저럭 좋은 사이로 잘 지내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8월에 휴가 나온 아들과 딸의 엄마 놀래키기 놀이. 아직도 둘은 이러고 논다.

▲ 크게 눈뜨기
▲ 최대한 크게 눈뜨기
▲ 엄마 겁주기

아들이 군에 간지 7개월 넘었을 때 영외면회를 갔다. 멀리서 다가오는 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들 얼굴이 뽀얗게 보였기 때문이다. 실외특수훈련을 많이 하는 특수임무반이라 따가운 가을 햇볕에 까무잡잡할 줄 알았는데 정말 피부가 뽀사시하네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여드름 하나 없이 깨끗했다. 피부만 맑은 것이 아니라 전체 인상이 밝고 환했다. 군에 간 아이가 아니라 어디 가서 영양보충 실컷 하고 맘껏 쉬다 온 편안한 얼굴이었다. 남편도 딸도 ‘얼굴이 훤해졌다’고 한마디씩 한다.

아들은 누나가 생일선물로 좋은 화장품을 사줘서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화장품 보다는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아들의 얼굴을 보면 대충 그 심리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아들은 엄마에게 자신의 내면을 감출 수 있는 내공이 아직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준다. 그런데 내가 본 아들 얼굴 중에서 가장 편안한 얼굴이다. 참 희한한 일이다. 군에 가서 가장 편안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니...

지난 8월 휴가 나왔을 때만해도 아들은 비교적 편안해보였지만 그래도 뭔가 한두 가지 작은 피곤함이랄까? 긴장감이랄까? 그런 게 있었다. 세세하게 말은 하지 않아도 그냥 알았다. 그런데 두 달 새에 무슨 일이 있었나?

자꾸 캐물으니 아들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선임들 같이 좋은 선임들은 세상에 없을 거야. 최고야” 과장할 줄 모르고 포장할 줄 모르는 솔직함을 무기로 사는 아들이 한 말이라 나는 이 말을 굳게 믿는다. 그리고 한없이 편안한 얼굴이 바로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는 일병이 되면서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군 생활 중 훈련시간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다보니 남은 시간 쪼개서 바쁘게 운동을 한다고 했다. 아들은 <나라사랑카드>로 전화를 했는데 사용요금이 처음에 비해 3분의 1로 줄었다. 일주일 넘게 안 온 적도 있었다. 한번 하면 30분은 기본으로 하는데, 요새는 몇 말 하지도 않았는데 빨리 가봐야 한다 또는 점호시간 다가온다 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엄마와 전화통화로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아들이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다는 신호다.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엔 운동을 하느라, 전화할 시간조차 없는 것 같았다. 아들의 등짝을 보니 완전 역삼각형, 한창 때의 버즈라이트로 돌아갔다. 독학으로 단련한 아들의 몸을 부러워한 선임들이 아들에게 교습까지 의뢰하고 있다니... 아들이 의기양양 편안하게 보일 수밖에...

마지막으로 아들에게서 당당함이 느껴졌다. 특수임무 군인으로서 자부심이랄까? 특수임무 기초훈련을 무사히 이겨낸 자신감이랄까? 지난번에는 훈련에 약간 지친 모습이 있었는데 지금은 훈련이 좀 고되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지치지는 않는 것 같았다. 훈련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자신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얼마 전에는 타부대 특수임무 공군들과 전지훈련(?)도 다녀왔는데, 타부대와 비해서 자기 부대가 제일 잘하는 것 같다고 자랑 했다. 선임들이 잘 배워주어 신참인 자신이 타부대 신참들에 비해 비교적 나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랑도 했다. 앞으로 열심히 해서 차세대 유망주가 되고 싶다고 하니.. ^^* 힘든 특수임무 보직을 즐기고 있는데 아이가 그렇게 편안하게 보일 수밖에....

돌발변수가 없는 한, 아들은 12월 초순에 휴가를 나올 예정이다. 이번엔 5박 6일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군민체육대회에서 육군과 공군이 기마전을 했는데 체력 면에서 육군보다 쫌 시들시들 했었던 공군이 육군을 이겼다. 기마전에 참가하면 1박, 우승하면 2박을 포상휴가로 준다니 아들은 2박을 얹어 5박 6일 휴가를 올 수 있다. 아들 볼 날이 20일 남았다. 그럼 힘 잘 쓰는 아들 오는 날에 김장을 해볼까나?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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