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에 잠든 옥강의 충혼

비바람에 씻기고 눈보라에 씻기기 400여 년이 지난 옛 싸움터 동복 적벽을 지금도 돌아보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을 찾아 뜻을 기리는 사람들은 가을 풀잎이 말라가는 쓸쓸한 수백 개의 의병들 무덤에서 걸음을 멈추고 감개에 젖기도 하고 한숨을 짓기도 하는 것은 정유재란 당시 그 슬프고도 안타까웠던 일을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임진, 정유 양난의 사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리, 정치적으로 서로 떠밀고 서로 버티면서 자기 생존을 꾀할 수밖에 없는 운명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 아래서 우리 민족과 일본이 대립된 지 2천여 년에 이르고 있으나 상대국 일본 정세에 너무나 어두웠다. 10만 양병설을 주창한 이율곡 선생과 정사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을 예고하였으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정부는 머지않아 닥칠 전쟁의 불바다를 모르고 무사안일하게 태평을 노래하며, 당파 싸움과 편 가르기에 치우치는, 무지하고 등한한 헛꿈의 생활에 익숙해 있었다.

이런 안일하고 멍청한 국정은 임진, 정유의 왜란을 불렀다. 임진왜란은 전쟁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정부는 무방비 상태였다. 일방적으로 일본이 진격만하는 싹쓸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 화슨작벽 1<구글이미지>

임진년 4월 일본 침략이 시작되었다. 불과 한 달 동안 정부는 한 번도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쫓기고 몰려서 압록강 변까지 가서 초조한 발걸음을 멈췄다. 급기야 정부는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하라는 충의를 온 천하에 호소하였고 의병이 일어나게 되어 전쟁의 방향을 급하게 바로 잡아 일방적으로 당하는 전쟁이 아닌 서로 싸움하는 전쟁으로 바꾸어 놓았다.

큰 유학자 박광전 선생을 중심으로 안방준, 임계영 장군 등이 의병을 일으킨다는 격문은 의병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낭주에서 대대로 살아온 선비요 효자로 군내에서 소문이 자자하던 박사길은 선조조 기축년에 생원시에 합격을 하였고 경인년에는 오류촌에 옮겨 마을의 수재인 아들과 학문을 논하다가 의병을 일으킨다는 소식에 떨쳐 일어나 남도 각 군에 격문을 보내고 보성 의병의 막사로 달려가 임계영 막하에 군량과 병기를 조달하며 남원으로 진군하였다.

박사길은 우의병 최경회와 더불어 금산과 무주에서 적을 때려 부수고 성주와 개령에서 적을 추격하여 많은 참살을 한 후 조정에 상소하였다. 또한 임계영 장군과 더불어 합천으로 들어가 영남의 여러 의병장과 공동으로 방어진을 치고 승리를 거두었다.

잠시 조용하던 전쟁이 만력 25년 정유년에 다시 시작되자 박광전, 안방준 두 분 선생을 비롯한 박광선, 박근제 등을 좇아 문덕면 천봉산 대원사에서 전략을 협의하였고, 판관을 지낸바 있는 송홍열, 박훈, 박광선 등과 같이 동복 적벽에서 하루 동안 적을 세 번이나 크게 쳐부수어 사기를 돋우고 군의 위세를 떨치었다. 이와 같이 지역을 방위하고 주민을 보호하며 다시 적진으로 쳐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순천에서 대부대로 침입해온 왜적을 쳐부수며 가는 곳마다 이기기만 하던 공은 달아나는 적의 적진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정유년 11월25일 밤 적탄에 맞아 숨졌다. 의롭고 장렬한 충혼은 산새소리도 조용한 깊은 산골짜기에서 고이 잠들었다.

▲ 화슨작벽 2 <구글이미지>

그의 충절이야말로 몇 천 년이 지나도 본보기가 될 일이요 잊을 수 없는 충성스러움이라고 할 것이다.

공의 자는 경언(慶彦), 호는 옥강(玉岡)이다. 금성인 고려말 '감무'라는 벼슬을 지낸 진승의 8대손이자, 이조의 개국공신인 병조판서 의룡(義龍)의 후예요 장사랑 ‘중의’의 아드님이다.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였으니 효자의 가문에서 충신을 구한다는 옛말이 충효를 겸한 공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석천(石川) 박공은 억령 문하에서 용학(庸學)을 강론하였고 율곡 선생으로부터 극기복례(克己復禮)를 배워 종신토록 실천하였으며 ‘용학변의 십구조’를 기록한 책 두 권을 집안에 전하고 있다. 조성면 매현에는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참고 : 湖南節義錄, 山陽三綱傳, 全南道誌, 竹川 年譜, 奇寶正城鎭郡撰誌의 玉岡遺蹟叙文, 玉岡 行狀墓表에서 취록하여 수록한 1974년판 寶城郡鄕土史를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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