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도 무더웠지만 작년 여름은 무더우면서도 유난히 길었다. 더위가 한창인 작년 중복 즈음에 퇴직 동료들끼리 개고기를 먹기로 했다. 매달 한번 만나는 점심 모임인데 누군가의 제안으로 보신탕집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당일 보신탕집에서 벌어졌다. 그 음식점에서는 보신탕을 안 먹는 사람들을 위해 삼계탕도 준비되어 있었다.

한 두 사람이 "어?, 삼계탕도 되네."하면서 삼계탕을 주문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하는 주문이 잇따랐다. 열댓 명이 모였는데 결국 보신탕을 주문한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십여 명은 보신탕이 아닌 삼계탕을 주문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현직에 있을 때는 '튀는 사람'으로 분류되기 싫어 마음에 안 들더라도 남들과 어울리느라 보신탕을 먹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퇴직한 후에는 남의 눈치 볼 일이 없다. 남이 나를 "튀는 사람'으로 보든, 다들 보신탕 먹는데 혼자만 다른 음식을 시킨다고 뒷담화를 하든 신경 쓸 일이 없어진 것이다.

개고기를 식용으로 하는 문화가 바람직한지 아닌지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개고기 문화의 뒷면에 묘하게 작용하는 허와 실이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보신탕은 일종의 특식으로 여겨진다. 가격도 다른 음식에 비해 비싼 편이다. 상사나 거래선이 보신탕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보신탕을 먹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상대가 동료라해도 개고기를 먹자는데 대놓고 거부감을 표시하면 마치 개고기 문화를 비난하는 입장에 서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는 사실이다.

퇴직하고 나서야 비로소 개고기에 대한 자신의 선호를 밝히는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이는 개고기 문화의 이면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강요(?)'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 강요는 타인에 의한 강요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짊어진 마음의 부담이다. 외국에서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비난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같은 한국인끼리는 개고기 문화를 비난해서는 안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은연중에 퍼져 있는 것이다. 개고기 문화의 허와 실이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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