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김미경 주주통신원

 

오른쪽 굴뚝에 그들이 있다. 그들이 보내주는 빛이 있다. 그 빛은 탐욕스런 자본이 판치는 세상에서 내쫓겨진 이의 절박한 외침이다. 그 빛은 지금은 우리지만 언젠가는 너희들에게도 올 수 있는 고통을 미리 알려주는 메시지다. 그 빛은 힘들다고 외롭다고 부축해달라고 그래서 함께 걸어가자며 앙상한 손으로 내미는 몸짓이다.

굴뚝에서 보내주는 두 개의 빛 중 하나는 이창근 해고노동자의 빛이다. 그가 70m 굴뚝에서 휴대폰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의연했다. 또박또박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냈다. 너무나 서러운 이야기라 그가 목이 메야 하는데… 그가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해야 하는데… 듣고 있는 우리가 목이 메었다. 목이 메어 꺼이꺼이… 그가 우리를 울렸다.

‘시사인’에 가끔 올라오는 그의 글 솜씨에 반한 적이 있다. 그가 썼던 글처럼 역시 그는 말솜씨도 좋다. 우리의 기도가 현실에서 뚜벅뚜벅 걸어가게 하고 싶단다. 기도를 아니 할 수가 없다. 우리 마음을 흔든 그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아래 옮겨본다.

또 수녀님의 말씀처럼 땅 위에 설 자리가 없으니까 결국 70m 고공 위에서 겨우 발 딛을 자리를 찾아 절체절명의 하소연을 하고 있는 두 해고노동자와 하루하루 벼랑끝 삶을 살고 있는 다른 모든 해고노동자를 늘 잊지 않고 기도하련다.

‘기도해주십시오’

굴뚝인 이창근 쌍용차 해고노동자

반갑습니다. 추우시죠? (아뇨) 촛불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따뜻해 보입니다. 월요일 신부님들, 수녀님들 쉬셔야 하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미사 봉헌해주시는 거 너무 고맙게 생각합니다. 정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이렇게 거리에서 미사 봉헌하는 성직자분들 보면서 이 싸움 계속 길게 가고 있는… 한 개인으로서 면목 없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사실 이곳 굴뚝에 올라오면서요, 어떤 다짐을 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올라가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말들을 해야지 많이 생각했는데요. 올라오면서 굴뚝에 탁 앉는 그 순간, 가슴을 탁 때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건 평소에 제가 다짐했던 말이 아니었고, 제가 쓰던 단어가 아니었고, 어떤 말이었습니다. 약하다는 생각들, 연약하다는 말들, 내가 흔들리고 있구나, 하는 그런 말이었습니다. 예전에 교회와 성당에서 쌍용차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많은 말씀을 드리려고 우리 신부님, 수녀님, 우리 신자 분들 앞에 섰는데요. 그때도 매번 앞으로 나가면서 가슴을 때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저에게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기도해주십시오’라는 말입니다. 그 말이 저에게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기도해주십시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매일 가슴에 꼭 품고 매일 자고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문제가 지겹게도 오래 가고 있습니다. 동료 많이 잃었고, 시간도 많이 축낸 것 같습니다. 30대가 40대가 되었고요. 40대가 50대가 되었고, 해고 과정에서 정년퇴임 하는 동료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싸움 끝나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정말 청춘이 날아가 버리는, 청춘이 하얗게 새버리는 이런 시간들은 이제는 중지 선언을 하고 싶습니다. 굴뚝에 올라서 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만큼은 승리라는 말이, 우리는 이긴다는 우리 주장이 쓰러져 있다면 세울 것이고 넘어져 있다면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약속들 하지 않겠습니다. 하루를 충실히 살고, 하루를 충실히 버티고 그것으로 족하겠습니다. 우리가 만날 그 시간들은 아마도 오늘을 충실히 사는 우리들에게 열리는 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일의 문은 우리가 오늘을 살았기 때문에 열지 않겠나,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마음 모아 주시고, 힘 모아 주시고 또 그 불빛으로, 손길로, 온기로 우리에게 늘 함께 해주시는 신부님, 수녀님, 신자 분들 너무 고맙습니다. 기도가 현실에서 혹은 땅위로 두발 걷고 다니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합니다. 기도는 기도일 뿐이라는 말들도 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가슴 아파하는 신부님들 수녀님들 많이 봤습니다. 가슴 아파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현실에서 뚜벅뚜벅 발 딛고 걸어가는 모습 반드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걸 증명해 보여드리겠고 그때 여러분과 어깨 걸고 신나게 웃으면서 춤 한번 췄으면 좋겠습니다. 마음모아 주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수원교구의 공동선실현 사제연대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쌍차공장 앞 굴뚝미사를 봉헌한다고 한다. 오늘 14일부터 시작이란다. 미사를 주관하는 수원교구의 공동선실현 사제연대는 지난 2012년 한상균, 복기성, 문기주 쌍차 해고노동자가 170일 간 평택공장 앞 송전탑에서 농성할 때에도 매주 미사를 봉헌했다. 적어도 수요일 오후만큼은 그들이 외롭지 않겠다.

 

김미경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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