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와 질서

바인뿌루커(巴音布魯克,파음포로극)대초원’을 출발, 천산을 넘어 신장(新疆,신강)의 남쪽 타클라마칸 사막 북단으로 이동한 후 동쪽으로 달려 쿠처(庫車,고차)까지 가는 일정입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8시에 출발을 하기로 했는데 가이드 이야기가 어제 내린 눈으로 천산 남쪽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막혔답니다. 만약 길이 풀리지 않으면 어제 넘어왔던 나라티(那拉提,나랍제)대초원으로 다시 나가서 돌아야 하는데 그럴 경우에는 6시간 정도의 시간이 더 추가된다고 합니다.

중국에 10년 살면서(대만은 아님) 터득한 깨달음은 ‘문제없다. 고 말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고, 안된다고 말하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가이드가 의견을 구하기에 전 당연히 6시간 더 도는 길보다 원안대로 가자고 주장을 했지요. 각자 다시 호텔 방으로 들어가 대기를 하다가 길이 뚫렸다는 소식을 듣고 9시 반경 출발을 했습니다.

밤과 낮의 온도차가 심하기 때문에 8월 한여름에도 몽고의 게르에서 자려면 난로가 필요합니다. 예전에 몽골 여행 중에 불성실한 종업원이 화목 난로에 장작개비 몇 개 올려놓고 연기만 피우더니 불이 붙지도 않았는데 나가버려서 밤새 추위에 뒤척였던 기억이 있었던지라 눈 덮인 게르를 바라보노라니 안쓰러움이 일어납니다.

아름다운 설경과 굽은 한적한 길을 달리노라니 잠시 전의 근심은 사라지고 저 눈부신 하늘만큼이나 오늘 하루 상쾌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불행은 뒤이어 따라오더군요. 캄캄한 터널을 한 10여분 달렸을까요? 앞차가 멈춘 지점에 온 우리 버스는 익숙한 듯 시동을 끄고 조명도 모두 껐습니다. 그야말로 칠흑의 어둠입니다.

이유가 있더군요. 이 긴 터널에는 환기 시설이나 조명이 안 되어 있었고, 대피공간도 없는 왕복 2차선의 좁은 터널입니다. 대형 트럭이 아슬아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좁은 길. 뒤를 이은 차들도 소리 없이 다가와 칠흑의 어둠속에 정지하였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기약 없는 기다림. 대부분이 노년층인 우리 일행 중에서 차문을 열어달라고 합니다. 요의를 느낀 남자들이 문을 열고 차와 벽 사이에서 소변을 보고, 뒤이어 여자들도 내렸습니다.

통상 두 시간 정도를 화장실 가는 시간으로 배려를 했는데 터널 안에서 시동을 끈 상태로 한 번 더 차문을 열고 소변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좌측 차선으로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자동차들이 간간히 지나더군요. 그래서 조금 희망을 가졌습니다. 우리 차선도 빠질 거라고.

지루한 기다림 끝에 앞차가 시동을 걸고 이동을 하자 우리도 뒤를 따라 서서히 진행을 했습니다. 가이드가 그럽니다. 2시간 45분 만에 자동차가 다시 출발 한다고. 터날 안에서만 3시간 넘게 보냈습니다. 원인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터널을 빠져나와 산 아래를 보니 도로가 Z자 형태로 나있습니다. 꺾이는 부분이 워낙 급해서 소형차는 상 하행 방향으로 동시에 진행을 할 수 있는데 긴 트럭은 물론 우리 버스도 상대차선으로 넓게 돌아야만 하는 좁고 가파른 곳이 두 곳이 있었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큰 트럭이 외곽으로 돌고 작은 차들은 그 사이에 세치기를 하며 들어옵니다. 그래, 여긴 대륙이지! 맞은 편 자동차는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큰 트럭이 정차해있고, 운전기사가 밖에 나와 서있는 모습이 보이시죠?

아래 사진은 우리 버스도 외곽으로 돌자 작은 차들이 이미 줄지어 새치기로 밀고 들어와 새로운 줄이 되었고, 도로는 왕복 도로가 일방도로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경적을 울리거나 끼어들지 못하게 방해를 하는 차가 없습니다. 저만 이 인간들 아직 멀었다고 분노하면서 셔터를 누르고 있습니다. 그중에도 어떤 소형차는 트럭 뒤에서 순서대로 따라오지만 아마도 손해를 본다는 생각마저 지울 수는 없겠지요.

위 사진에서 보이는 우측 차들은 아래로 진행을 하고 있고, 좌측 차들은 시동을 끄고 누워있거나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천산을 넘어가려는 차들이 줄줄이 대기하며 길이 뚫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국에서 닭장차는 여로 용도로 많이 익숙한데 이곳에선 양을 싣고 가는 차가 있습니다. 3층으로 된 적재공간에 양들이 움직일 공간도 없이 빼곡하게 실려서 가고 있습니다. 초원을 누비는 양들은 목가적이던데 이 양들은 인간들의 먹을거리로 팔려가는 것이지요. 신장은 양요리가 아주 흔합니다.

사진 위 천산의 깊은 곳에 있는 연못으로 대용지(大龍池)라고 불리며 신화 속의 서왕모가 목욕을 한 곳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 구경을 생략하고 하산을 합니다.

드디어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왔습니다.

오후 4시 30분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왔고, 식욕도 맛도 없는지 대부분 몇 숟갈 뜨고는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국립공원인 쿠처(庫車,고차)대협곡에 들렸습니다. 중국의 7대협곡중 하나라고 합니다.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신견수곡(神犬守谷)이라는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신령스런 개가 이 협곡을 지키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시간도 많지 않고, 일행이 별로 흥미도 없어하는 계곡이라서 친구 부부와 저 셋이서만 가장 멀리 들어갔다가 서둘러 돌아 나왔습니다.

다른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숙소를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잠시 졸다가 뭔가 이상한 기분에 눈을 뜨고 바라보니 줄줄이 늘어서있는 트럭들을 뒤로 하며 우리 버스가 역주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소형차가 마주 달려오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소형차는 지나가고 그 뒤를 커다란 트럭이 오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멈춰 섰습니다. 우리 버스가 가까이 가자 아래 우측 약간의 공간으로 트럭들이 앞으로 이동해서 우리 버스가 끼어들게 도와주고 마주오던 트럭들은 다시 진행을 합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우리 뒤로 소형차들은 역주행을 하며 따라와 틈만 생기면 앞으로 가는데 트럭들은 수 킬로를 묵묵히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심지어 역주행하는 우리 차가 끼어들게 도와주기까지 합니다. 아니 대륙인데??? 우리는 트럭을 보내고 다시 빠져나와 역주행을 계속하고,,,, 제가 눈뜨고 본 거리는 적어도 2-3키로는 되는데, 가이드가 나중에 마이크를 잡고 우리가 6-7킬로미터를 역주행 했다며, 만약 우리 기사가 그렇게 운전을 안했으면 새벽 3-4시에나 호텔에 들어왔을 거라며 기사에게 박수를 쳐주자고 합니다. 고백하건데 저도 신나게 박수를 쳤고, 공항에서 헤어질 때는 팁으로 지폐를 건넸습니다.

제 생각에는 대륙의 무질서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에 좁은 커브에서 서로 엉키고 양보를 안 하면 통제 불능이 되지만 2-3시간 기다리더라도 한쪽 차선이 다 빠지면 그 다음에는 다른 차선이 움직이고, 또 작은 차나 빨리 갈 수 있는 차들은 어차피 자기들과 다르므로 빨리 지나가게 용인을 해주는 나름의 질서를 느꼈습니다.

도로 시공 표시와 흙을 퍼다 부어놓아서 아예 진입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냥 표지판이나 고깔 몇 개 세워 놓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시공 업체도 알고 운전기사들도 알고!

대신 뻥 뚫린 길을 두고 흙먼지를 날리며 돌고 또 돌아서 갑니다.

식당도 다 문을 닫은 시간이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을 했습니다. 점심도 부실했고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다행스럽게도 5성급 뷔페가 있는 호텔이라 서둘러 음식을 날라놓고 허기를 면한 후 본격적으로 저녁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편집 : 안지애 부에디터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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