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손도손 사랑방] 김태평 주주통신원

8층 연구실에서 구내식당까지 가는데 약 7~8분 정도 걸린다. 가까운 거리보다는 조금 먼 거리라서 좋다. 오가면서 주변도 둘러보고 사람들도 만나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하러 가기 전에 일을 하다보면 미처 밖의 날씨를 살피지 못하고 가는 경우가 있다.

어떤 날은 1층까지 내려가서야 비가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늘이 그렇다. 비가 많이 온다면 다시 연구실로 가서 우산을 가져 오겠지만, 적게 올 때는 난감하다. 그래서 오늘은 비를 맞고 그냥 갔다.

중간쯤 가다가 식사를 마치고 오는 교직원들을 만났다. 모두 우산을 쓰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인사를 나누면서 우산을 대뜸 건넨다. 자기는 비를 맞으면서 말이다. 비가 올 때 우산이 없으면 빌리는 것이 보통이고 짓궂은 사람은 뺏기도 하는데... 그렇지만 자신이 쓰고 있는 우산을 남에게 스스로 내주는 경우는 거의 보기 어렵다.

더욱이 20대 초반의 어린 여직원이 말이다. “선생님! 이 우산 쓰고 가세요!” “ 아니, 괜찮아요. 다 와갑니다.” 다시 “쓰고 가세요!”한다. “본인은 어떻게 하고?” “괜찮아요! 저도 다 와가니까요!” “어허! 그것 참! 6층이던가?” “아니, 2층이에요! 나중에 주셔도 되고요! 주지 않으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허허! 그것 참!” 저 여직원이 몇 층에 근무한지도 모르다니, 한심한지고...

나는 저렇게 한 적이 없는데... 이게 작은 일일까? 평소에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친절이 나오지 않겠지? 내 기억에 한하은양! 그녀는 항상 웃는 모습이 밝고 명랑하다. 가슴이 뻥 뚫리도록 감사하다. 어린 나이에 저렇게 남을 배려하고 친절할 수 있다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진다.

오늘 크게 배웠구나. 집에 와서 아내에게 전달하였더니 “꼭 나 같은 아가씨구만!”한다. 내가 씩 웃으니 “당신은 곁에 있는 나를 몰라보고... 만약 내가 당신 곁에서 그런 친절을 다른 남자에게 보였다면 어떤 표정일까?”라고 반문한다. 속으로 “허허 그것참...”혀를 찼다. 내가 그렇게 못난 사람이란 말인가? 더욱 부끄러워졌고 할 말이 없었다. 아내에게 비친 내 모습이 가장 정확할 테니까.

김태평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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