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와 군량미를 제공하여 의병활동을 도운 박응삼선생

의로운 곡식으로 창의를 도운 석정(石亭) 박응삼선생

박응삼은 진원 박씨로 시조 고려조 대장군 박진문<朴進文>의 13대 손이고 위남 선생의 6대 손이다. 절제사 박지추(朴之樞)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한장漢章), 호는 석정(石亭)이다.

박응삼은 일찌기 무과에 합격하여 벼슬이 부사직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그의 삼종형이었던 박죽천의 의병 막사를 찾아가 공부하였다. 박죽천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호남의 대표적인 의병장이다. 박죽천 밑에서 함께 공부한 안우산과 임계영 장군과 더불어 보성 관문에서 의거에 함께 하였다. 자신의 재산을 털어 싸울 무기와 군량미를 제공하여 의병활동이 활발하도록 도왔다.

또한 전라도제찰사 송강 정철을 찾아가 군량미 삼백 석을 자진하여 내어 놓으므로써 군량미 걱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 군량미 1

진사 문위세와 함께 영남의 금산, 무주, 선산, 개령에서 싸워 크게 이겨 공을 세웠다. 정유란 때에도 재종 진사 응호와 부장 송홍열, 진사 박사길 등과 동복에 진격하여 적군을 대파하였다.

선조께서 공적을 가상히 여겨 대호군 부사직을 하사하였다.

공의 이러한 의거활동은 일시적인 의분이 아니라 좋은 스승 밑에서 부지런히 갈고 닦은 일편단심의 충성스러움이었다. 그 승훈을 받들어 10대 손인 춘헌(春軒)공 박용진(朴鎔鎭)이 선비를 양성하기 위하여 공부할 곳을 마련하였다. 미력면 백운산 아래에 용강재(龍岡齋)를 세워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 군량미2

용강재 제자 300여 명이 춘헌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춘헌문집]을 발간하였으며 선생의 기일에 용강재에 모여 시를 논하고 강의를 한다고 한다. 이는 선대 석정 선생의 학문을 사랑하는 호학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라 하겠다.

춘헌공의 손이 미력면 활천(活川)에 살고 있다.

 

<참고 : 山陽三綱傳, 寶城郡誌에서 취록하여 수록한

1974년판 寶城郡鄕土史를 참조함> <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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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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