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지팡이

 

이른 아침 뒷동산 산책길에 나섰는데 등산지팡이를 잊고 왔다. 하는 수 없이 쓰러진 나무로 임시변통하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적당한 크기의 넘어진 나무 가지를 발견했다.

불청객: 야! 내 너에게 신세 좀 져야겠다. 내 지팡이가 좀 되어 줄래?

나무: 응~ 그래. 필요하면 네 맘대로 써.

불청객: 고맙다. 어차피 너는 죽었으니, 써도 괜찮겠지 뭐~

나무: 뭐라고? 네가 보기엔 내가 죽었나? 가만히 쓰기나 하시지? 건드리지 말고?

불청객: 아니? 그럼 네가 살아 있단 말이냐?

나무: 지금 내가 여기 있잖아? 너는, 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몰라? 참, 기가 막혀!

불청객: 그런가? 난, 잘려진 나무는 죽은 줄 알고 있었어......

나무: 거참! 어이가 없네. 설령 죽었다 해도 그렇지? 죽은 것은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거야? 그건 아니지?

불청객: 그그그 그렇지는 않겠지~ 미~안~  말문이 막히네.

나무: 인간들은 만물을 너무 함부로 해. 너희들이 누구 때문에 살고 있는지 좀 알았으면 좋겠어. 아니? 깨달아야 해. 보답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그러면 안 되지. 더구나 너희들이 잘나서 그런 줄 안다면 큰 오산이야.

불청객: 그런가? 사실 그랬지. 나부터 부끄러운 점이 많아.

나무: 그나마 다행이네. 세상 사람들이 너 같기만 해도 좋을 텐데.

불청객: 그건 아니야. 나보다 좋은 사람들이 많아. 그것만이라도 알아주면 고맙겠어.

나무: 그래. 그럴게. 우리 서로를 조금만 배려하면, 조화롭고 평화롭게 어울려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낳은 대로 생긴 대로 그렇게 말이야.

불청객: 오늘 미안해!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네? 인간들의 틀에 길들여진 결과라고 생각 해 줘. 앞으로 주의할 게. 네가 나보다 품이 넓잖아?

나무: 풋~ 내 품이 넓어? 알았어! 좋은 아침! 좋은 하루!

 죽은 나무를 그대로 두면 얼마 못 가 흙으로 돌아가지만, 지팡이나 그 외 용도대로 사용하면 훨씬 오래간다. 만물은 형체가 없어질 때가지 죽은 게 아닌 것이다. 아니? 형체가 없어져도 죽은 게 아니지 않을까? 돌멩이도 사랑하면 빛이 나듯이, 밑동이 잘린 나무도 사용하면 오래가는 것이다. 아마 이 지팡이도 곁에 두고 수시로 사용하면, 내 목숨보다 오래가지 않을까?

 난 나무들에게 불청객이었다. 어찌 나무들뿐이겠는가? 자연에게 그랬다. 이 산책로만 해도 그랬다. 나를 비롯한 인간들이 찾지 않는다면, 저희들끼리 잘 어우러져 살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침 등산길을 내려 왔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태평 주주통신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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