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경기북부 항일독립투사를 찾아서

김선태 주주통신원l승인2017.09.25l수정2017.09.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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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문화공간 온:'이 조합원을 위해 마련한 <잊혀진 경기북부 항일독립투사를 찾아서>에 참가했다. 약 25명이 참석한 이 행사는 경기북부보훈지청과 한겨레:온, 민족문제연구소경기북부지부의 후원으로 23일 09시부터 18시 30분까지 진행되었는데 의정부, 양주, 동두천에 있는 항일유적지를 탐방하는 행사였다. 

아침 9시 출발 예정인 우리 탐방단은 탑골공원 담장 옆에 주차된 신세계관광 버스에 올라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기사님이 우리들에게

“저기 좀 가서 보시고 오시죠? 정조행궁행차 행렬이 지나고 있는데요?”

하는 소리를 듣고 차안에 있던 우리는 벌떡 일어서서 카메라를 들고 종로거리를 향해 뛰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전체를 보여주기 위한 완전한 행군이라는 것이다. 정조임금님이 현륭원<현릉>을 찾아가는 효도행차인 화성행궁행차 행렬은 종묘쪽에서 출발하여 종로1가 쪽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우리가 종로3가에 도착하였을 때 대취타대가 지나고 있었고, 10분 정도 기다리는 동안에 혜경궁홍씨 자궁가교가 지나고, 수라가자가 지나고, 이어서 정가교 즉 정조대왕 가마가 뒤를 이어 왔다. 더 보고 싶었지만 출발해야 할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버스로 달려갔다.

서울을 벗어나서 의정부 녹양역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회원들과 함께 떠나기 위해서 녹양역에 차를 대었다. 대부분 녹양역에서 승차하여 함께 출발하였다.

첫번째로 방문한 곳은 금오동 네거리에 있는 3.1운동 장소다. 차를 이리저리 돌려야 할 정도로 아주 좁은 공간, 의정부시 금오동 390에 위치한 '3.1운동 기념표지석'에 갔다. 민족문제연구소경기북부지부장을 역임하셨던 우리 '문화공간 온:' 조합원이자 한겨레주주통신원인 김재광 선생이 표지석에 대한 안내를 해주었다.

▲ 경기북부지역 위병활동 유적지를 찾아서 1 금오동

그는 “이 조그만 표지석도 없던 것을 작년에야 겨우 세우게 되었습니다.” 하며 그간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들려주었다.

여기서부터 단체 사진을 찍을 때에는 꼭 "친일 청산!"을 외치면서 주먹을 불끈 쥔 모습으로 찍었다.

이어서 의정부시 산단로 132번길 59에 있는 정문부장군묘역으로 가서 묘소참배와 '북관대첩지 복제비'를 보았다. 먼저 정문부 장군의 묘역에 올라가서 헌화를 했다. 

“자 오늘 이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앞으로 나서서 꽃을 바치기로 합시다. 이렇게 어린이가 참석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어린이들을 앞장서서 헌화를 했다. 헌화 후에 모두 함께 묵념을 드렸다.

▲ 경기북부지역 위병활동 유적지를 찾아서 2 정문부장군묘와 북관대첩복제비

조금 아래에 배치되어 있는 '북관대첩비 복제비' 앞에 모여 이 비가 이곳에 서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이 해설을 듣는 중에 내 블로그를 검색하여 '북관대첩비'를 검색하였다. 2006년 4월 26일자에 [북관대첩비 복제비 제막식] 기사를 썼다.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의 뜰 제막식 기사다.

관련기사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ksuntae&folder=9&list_id=6227969

이어서 소요산 입구에 차를 대고 소요산으로 걸어들어 갔다. 내가 양주군에서 근무를 하였고, 동두천에 교육청이 있어서 동두천에 자주 들렀지만, 소요산에는 처음 들어선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입구에서 식당가가 끝나는 부근에 있는 원효대(동두천시 상봉암동 산32)에 위치한 '독립유공자 기념비'에 가서 역시 헌화와 묵념을 올렸다. 

원효대에서 내려오다 맨 첫번째 식당인 명당식당으로 들어서자 곧장 식사가 준비되어 있어서 금방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식후 잠시 쉴 시간도 없이 곧장 출발하여 '조소앙 기념비'가 있는 양주시 남면 황방리로 이동했다. 광장에 서 있는 조소앙선생 동상 뒷벽에 '삼균주의'와 '대한민국 임시헌장' 두 개의 석판이 붙어 있었다. 잠시 해설을 듣고 '조소앙 기념관'으로 들어서서 전시물들을 사진에 담았다.

▲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

그 이유는 바로 내 블로그에 [삼균사상가 조소앙 평전]을 연재하기로 마음먹고 여기서 찍은 사진을 김삼웅 선생님의 평전에 약간 첨삭을 하여 한장씩 넣어 볼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준비를 하고 나와서 600여 년 전부터 서 있었다는 황방리 느티나무를 보고 잠시 설명을 들었다.

곧장 우리는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에 있는 '가래비 3.1독립만세운동터의 가래비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로 달려갔다. 길이 좁아서 상당히 힘들어 하는 기사님이 안타까웠다. 길가에 차를 대고 기념비가 있는 공원으로 갔다.

▲ 가래비 3.1운동기념탑

'가래비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는 비교적 산골의 작은 면소 안에 세운 비 치고는 상당히 규모도 크고 우아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기념비 좌우에 세 분의 동상이 흉상으로 있었다. 바로 이 가래비3.1만세 당시에 일본헌병의 총을 맞아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세 분이다. 김진성, 이용화, 백남식 세 분 중 두 분은 지난해에서야 서훈이 결정될 정도로 보훈청의 결정이 엉터리였다는 사정을 이야기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양주관아터'로 향하였다. 양주관아터는 지금 한창 공사 중이었다. 관아 일부 건물을 다시 짓고 담장을 둘러쌓는가 하면 주변의 주차장을 닦고 있었다. 주차장 겸 양주별산대 놀이의 공개 공연장으로 쓰일 것으로 보이는 작은 운동장을 통하여 관아터로 다가섰다.

▲ 경기북부지역 위병활동 유적지를 찾아서 5 양주 관아터

관아터의 역사 그리고 주변의 모습에 대한 설명을 듣고 돌아오다가 관아터 옆에 서 있는 소위 말해 '원님 칭송비'들이 10여 개나 즐비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고 이 칭송비를 세운 이야기를 들었다.

본인이 잘한 원님이야 당연히 떠난 다음에 세워질 것으로 믿었지만, 소위 말해 탐관오리 원님들은 자기가 떠나고 나면 칭송비가 세워지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본인이 재임 중에 비를 세우고 떠나기도 했다는 말에, 재치있는 비난들이 나와서 한바탕 웃기도 하였다.

이곳 해설을 마지막으로 오늘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모든 회원들은 애쓴 김재광  해설사 조합원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여러 유적 탐방을 위해 경기 북부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행사여서 더욱 좋았다. 오늘의 행사에서 알게된 독립운동가에 대해 10개 연재로 묶어 써보려고 계획을 하고 사진들 분류를 마쳤다.

이런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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