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사실조차 폄하되고 있는 조소앙선생의 기념관에서 재평가의 싹을 찾다

때 : 2017년 9월23일 15시 ~ 16시

장소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양연로 황방리 214

누가 : 한겨레온<한겨레주주 통신원 및 가족>

무엇 : 조소앙 동상과 조소앙 기념관

후원 : 경기북부보훈청, 한겨레:온, 민족문제연구소경기북부지부

▲ 조소앙선생 동상

소요산 입구에서 홍덕문 선생의 추모비를 보고 한 시간 가까이나 차를 달려서 남면 황방리 조소앙기념관 주차장에 닿았다. 훤히 트인 들판 가운데에 위치한 기념관은 앞뜰에 넒은 공간을 두고 동상을 세웠으며 동상의 뒤편 담 벽에는 <삼균주의>와 <대한민국 임시헌장 : 임시정부 헌법의 기초가 되었음>을 새긴 돌판이 붙어 있었다.

 

[조소앙 :1887년(고종 24)∼1958년. 독립운동가·정치사상가.

본관은 함안(咸安). 본명은 용은(鏞殷), 자는 경중(敬仲), 소앙(素昻)은 호이다. 1887년 4월 10일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정규(禎奎)이며,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일제식민지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으며,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광복 후 제2대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전국 최고득점으로 당선되었으나, 6·25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소앙 [趙素昻]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삼균주의 돌판

김재광 선생님은 “조소앙 선생이 납북된 사실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비교적 푸대접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은 어쩜 친일파로 점거된 이승만 정부에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트라우마와 같은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임시정부 요인들을 함께 입국하여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치르지 못하게 두 번에 나누어서 입국을 시키는가 하면, 조만식, 김구 선생 같은 독립운동의 거목들을 암살하여 세력을 꺾어 버리는 짓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납북이지만 북으로 간 조소앙 선생을 추앙해줄 리가 없었습니다.” 하면서 조소앙 선생이 과소평가 내지 배척, 소외를 당한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삼균주의三均主義 자주와 평등의 독립국가를 꿈꾸다. 민족균등주의란 것은 국내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권리를 고루 누리는 것을 말한다. 조소앙선생님의 기념관은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주발전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 조소앙 선생의 숭고한 위업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널리 알림으로써 국가와 민족의 정기를 더욱 창달시키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 해설을 듣는 회원들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해설을 하는 동안 나는 얼른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내 블로그의 <현대인물평전>에 아직 조소앙선생의 평전을 싣지 않았는데 이제 다음번에는 조소앙 평전을 실을 것이며, 김삼웅 선생의 글에 매회 한 장 씩의 기념관에서 찍은 사진을 곁들여서 수록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회원들과 같이 움직이면 사진을 차분하게 찍을 수가 없고 그 사진을 올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여 미리 찍어 두자는 생각이었다.

조소앙기념관을 들어서니

[설립목적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조소앙선생의 생애를 재조명하여 선생의 고귀한 독립운동정신을 기리고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 후손들에게 애국정신의 함양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

라는 설립취지가 적혀 있고 조소앙 선생에 관한 기록, 유물, 서책, 서류 등이 전시 되어 있었다.

▲ 기념관 현판

조소앙기념관은 설립 취지에

[삼균주의三均主義 자주와 평등의 독립국가를 꿈꾸다. 민족균등주의란 것은 국내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권리를 고루 누리는 것을 말한다. 조소앙선생님의 기념관은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주발전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 조소앙 선생의 숭고한 위업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널리 알림으로써 국가와 민족의 정기를 더욱 창달시키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라고 적은 것과 같이 조소앙 선생의 생애에 따라 구분된 공간마다 중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른 회원들보다 먼저 죽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회원들이 들어 왔을 때에 같이 해설을 들으니 좀 더 정확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조소앙 선생은 출생은 파주군 출신으로 오늘 우리가 탐방에서 돌아보고 온 북관대첩비가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맨 처음 알려주신 분이기도 하다. 여기에 와서 이런 사실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일본 유학중에 이승만의 연설을 듣고 반일민족사상과 조국광복의 독립사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의 박은식 선생등과 대동당을 조직하기도 하였습니다. 선생이 유럽 각국을 여행하시게 된 것은 형님 되시는 분이 당시 유럽의 어느 나라 영사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형님의 영향을 받아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셨던 것입니다.”하는 해설과 함께 전시장의 곳곳에 대한 설명을 해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기념관에서 나와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황방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78호: 수령 약 600년>을 보며 이 마을의 역사를 가늠하게 되었다.

편집 : 안지애 부에디터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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