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탐방 9- 가래비 3.1운동 기념공원 기념비

경기북부지역 기념비 중 가장 우뚝 선 가래비 3.1만세 기념비 김선태 주주통신원l승인2017.10.12l수정2017.10.12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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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래비 3.1만세기념비 전경

때 : 2017년 9월23일 15시 ~ 16시

장소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누가 : 한겨레온<한겨레주주 통신원 및 가족>

무엇 : 가래비 31운동기념공원 기념비

후원 : 경기북부보훈청, 한겨레:온, 민족문제연구소경기북부지부

가래비 3.1기념비라면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에 위치한 [가래비 3.1운동 기념공원]안에 세워진 기념비이다.

▲ 가래비 3.1만세기념비 2 현장사만자 흉상 1

<가래비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는 비교적 산골의 작은 면소 안에 세운 비 치고는 상당히 규모도 크고 우아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기념비의 좌우에 세 분의 동상(흉상)이 세워져 있었다. 바로 이 가래비 3.1만세 당시에 일본헌병의 총을 맞아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세분이다. 김진성, 이용화, 백남식 세분 중의 두 분은 겨우 지난해에야 서훈이 결정될 정도로 보훈청의 결정이 엉터리이었다는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가래비는 양주군의 가장 중요한 5일장이 서는 곳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는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시위를 열었던 다른 지역보다 가장 큰 규모의 시위를 벌였던 곳이다. 3·1운동 순국기념비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709-1 만세배미에 세워져 있는 3·1 운동 순국열사 기념비이다.

▲ 가래비 3.1만세기념비5 위용

[가래비 3·1운동 순국기념비가 서 있는 만세배미는 1919년 3월 28일 군민 950여 명이 모여 독립 만세를 부르고 독립을 외쳤던 곳이다. 이때 만세 운동을 주도한 백남식(白南式)·이용화(李龍和)·김진성(金辰成) 등 앞장섰던 세 분이 왜병의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고 40여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후 이곳은 만세배미라 불리게 되었으며, 만세배미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사람들의 가슴속에 독립 정신의 상징으로 기억되어 오고 있다.

가래비 3·1운동 순국기념비는 양주 가래비에서 일제에 저항하다 희생된 백남식·이용화·김진성 열사 등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1986년 건립된 가래비 3·1운동기념비의 위치가 협소하고 도로에 인접해 있어(버스로 지나다 본 기념비는 도로 표지석보다 더 작고 보잘것없었음) 접근성이 떨어지므로, 2007년 10월 16일 가래비 3·1 만세 운동의 현장인 만세배미에 새로 가래비 3·1운동 순국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양주시 지원비 2억 5000만 원, 재현 성금 3000만 원 등 총 공사비 2억 8000만원이 투입되었다.]

그래선지 이 비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웅장하였으며, 세분의 흉상까지 갖춰져 있어서 작은 면 규모에는 상당히 큰 공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횃불 모양 순국 기념비의 좌대 폭은 4.1m, 좌대 높이는 2.5m, 비신 너비 1.1m, 비 높이는 6m이며, 봉화 폭은 1.2m, 봉화 높이는 1.5m이다. 가래비 3·1운동 순국 기념비 뒤에 조성된 병풍석의 조각 높이는 2.5m이다. 전면에 ‘양주 가래비 3·1운동 순국기념비’라고 새겨져 있고, 옆면에는 후기문과 독립 선언문 등이 새겨져 있다. 순국기념비 양옆에는 가래비 3·1 만세 운동 당시 순국한 백남식·이용화·김진성의 흉상과 횃불 모양의 봉화탑이 서 있다.]

▲ 가래비 3.1만세기념비 6 가념촬영

이 탑이 선 이곳 가래비 만세시위는 본래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세분들이 주도하여 효촌리에서 시위를 벌이려 하였으나, 하필이면 그 부근에서 화재가 나서 부득이 시위대를 이끌고 10여리가 떨어져 있는 이곳까지 와서 만세 시위를 벌이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 흉상이 모셔진 세분은 앞장을 서서 헌병들과 맞서서 꾸짖었다.

“뻔뻔스런 도둑놈들아! 남의 나라 국모를 죽이고, 삼천리 강토를 도둑질 한 놈들이 적반하장으로 조국을 독립하려고 부르는 만세를 부르지 말라고? 물러가거라! 건방진 소리 말고....”라고 외치자 면장이 슬그머니 뺑소니를 치자 “면장놈을 타살하라!”는 고함이 터졌고, 돌팔매질이 시작되었다.

시위대에 밀린 헌병들은 총을 쏴서 세 분이 목숨을 잃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수많은 사상자가 나기도 하였다.

계속 되던 시위는 일본 헌병의 무차별 사격으로 약 2시간 동안 많은 사상자들이 나오고 나서야 흩어졌다.

이후 바로 이 자리에서 4월 3일 2차 만세 시위가 열렸다.

물론 3.1만세 시위는 양주군에서 활발하게 진행이 되었는데, 양주군 16개면에서 14개면에서 벌어졌다는 것만 보아도 이 고장의 항일 정신이 얼마나 활발하였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이 가래비에서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해서 이 고장 분들에게 더욱 강한 항일의 신념을 심어 주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편집 : 안지애 부에디터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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