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의 노령으로 손자 윤형원과 함께 말 탄 기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의병에 참여

 칠순의 용사 윤만옹(尹謾翁)

고종 3년 병인년에 대원군이 천주교도들을 추방하고 학살하자 프랑스신부 리델(한국 이름 이덕아)은 탈출하여 본국에 보고하였다. 전함 7척이 출동하여 강화도에 침입하니 당황한 조정은 각 처의 방어를 엄하게 하라 이르고 각 도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때 크게 노하여 분연히 일어선 칠순 노령의 용사가 있었으니 복내면 유정리 출신 윤만옹이다.

본명은 윤치방이요, 칠원 윤씨로 자는 광국(光國), 호는 만옹<謾翁>이다.

충간공 윤자량의 후예이고 교관을 추증 받은 윤징삼의 증손이었다. 남과달리 포용력이 넓은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경전에도 능하고 학식이 넓은 분이었다.

병인년에 이병사 관연(寬淵?이 전라도 의병을 모집하고, 소집하는 책임을 맡고 각 도읍에 격문을 보냈다. 격문을 본 73세 윤만옹은 노령으로 손자 윤형원과 함께 말 탄 기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의병에 참여 하였다.

 

北風欲激 老大心, 推折千山萬樹林

북풍은 늙은 이의 마음을 휘몰아서 전지의 일천산 만수림을 휘몰아간다.

溪邊落落 蕭蕭語, 令人敵愾意忱沈

소소한 모습으로 단풍든 나무가 타 오르듯 적개심을 굳게 하노라

 

출전하기에 앞서 윤만옹은 시를 써서 자신의 맹세 굳히니 부하 신석원이 듣고 감탄하여 흠모하는 마음으로 그를 따랐다.

완주 감영에 이르러 싸울 계획을 이야기하니 감사 조재응과 의병 책임자 이관연이 크게 감탄하였다. 얼마 지나지않아 적이 물러갔다. 적을 물리친 후 공북루(拱北樓)에 나아가 임금님께 하례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다.

 

고종 기묘년에 도내 유림들의 추천으로 당예원정(堂隸院正)을 추증하였다.

복내면 유정리에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 山陽三綱傳, 湖南節義錄, 謾翁遺稿, 權純命碑文에서 취록하여 수록한 1974년판 寶城郡鄕土史를 참조함>< 8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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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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