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대륙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7~40일째

내 발걸음 속도에 맞춰 남쪽으로 내려가는 줄 알았던 가을이란 친구가 어느새 나를 앞질러 간다. 내 가는 길에 멋진 채색을 하며 바쁜 걸음으로 달려가고 있다. 뒤로는 거친 겨울바람이 곧 나를 추월할 기세로 쫒아오고 있다. 여행은 찬란하고 가벼운 바람 속으로 나의 일상을 날려 보내는 것이다. 중력을 벗어버린 시간 속에 드러나는 자신의 자태를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 2017년 10월 10일 Grosse siegharts에서 Gars am kamp까지 달리면서

그러나 너무 가벼워지면 삶은 날아가 버릴 것 같고 비현실적이며 무의미해진다. 이 길고 긴 여행의 가벼움을 치열한 달리기로 연줄을 삼아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긴장을 유지하는 일은 멋진 일이다. 분명 삶은 무겁지만 그 무게가 우리 삶을 더 치열하고 진실하게 해준다.

▲ 2017년 10월 7일 Mlada Vozice를 출발하며

 나는 체코를 달리는 동안 체코 조상님들에게 완전 반해버렸다. 그리고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와인과 맥주의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다채로운 맛의 고향이기도 하고 인심이 넉넉하기도 하다. 어떨 때는 하루 종일 사람구경도 못하고 숲속 길을 달릴 때가 있다. 말이 달린다는 거지 내가 지나온 체코의 지형은 거의 산악지형이어서 50kg가 넘는 손수레를 밀며 하루에도 몇 십 번씩 고개를 오르내려야하니 거의 걷는 수준이다.

▲ 숲속에서 만난 체코 젊은이들

데슈트나로 가는 길 숲속에서 벌목꾼들을 만났다. 남자 셋에 소녀 둘이다. 소녀들도 남자들과 함께 거친 일을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나도 반가워서 소리를 지르고 손을 흔들었지만 이들도 나의 모습에 박수를 쳐주며 함께 소리를 지르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한다. 한동안 서서 대화를 나누다가 한 친구가 필스너 맥주 한 병 하지 않을 거냐고 묻는다. 왜 그 좋은 맥주를 거절하겠는가? 목도 마르던 참이었다.

목적지에 다 와서 숙소를 찾으려고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자신은 영어를 못하고 아들이 영어를 잘하니 아들 제이콥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작은 마을인데 제이콥도 길 이름을 모른다. 다시 예약확인 메일을 보니 예약한 업소는 영업을 하지 않고 대신 다른 도시 호텔로 대체하라는 메일이 와있었다. 지금 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제이콥은 길 모퉁이에 펜션이 하나 있는데 거기를 가보라고 한다. 그 외에는 이 근처에 숙박 할만한 곳은 없다고 말하고는 엄마와 함께 가버렸다.

그 펜션에 가서 벨을 누르니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와서 여기는 더 이상 영업을 안 한다고 한다. 대신 다른 곳을 알아봐준다고 여기저기 전화를 건다. 나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여력이 없으니 창고나 방 한 구석이라도 재워달라고 사정을 하고 있는데 제이콥이 다시 나타났다. 본인도 그곳이 영업을 하는지 확신이 안가서 내가 혹 난처한 상황에 빠질까봐 가던 길을 돌려 다시 온 것이다.

▲ 제이콥과 어머니

펜션 아주머니가 약 3km 되는 곳에 있는 민박집을 알아봐주었고 제이콥이 그곳까지 차를 태워주었다. 나의 한혈마는 그곳 창고에 맡기고 아침에 찾으러 오겠다고 하였다. 춥고 비가 오는 날씨에 꼼짝없이 노숙을 하게 된 상황에서 제이콥이 선한 사마리안이 되어주었다.

체코를 달리면서 제 때 식당을 만나지 못해 아주 힘들었다. 내심 유럽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육류를 많이 섭취할 수 있기를 기대했었다. 장거리 달리기란 결국 얼마나 영양보충을 잘 해주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이 미국만큼 육류소비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소고기는 농촌지역에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치즈나 요거트 소시지는 흔했다.

그 옛날 지구상 어디에도 고기는 귀한 음식이었고 서민들은 빵이나 밥, 죽, 또는 지역에 따라서 감자나 옥수수만 먹으며 생활했다. 벼농사를 짓는 아시아와 옥수수 농사를 짓는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달리 유럽에서는 농경과 목축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비교적 자주 육류를 섭취했지만 서민들이 신선한 육류를 섭취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연중 신선한 고기를 먹는 것은 부유한 귀족이거나 대도시의 중산층 이상 시민들이었다.

▲ 2017년 10월 8일 Destna에서 Nova Bystrice까지 가는 길에서 만난 가을

이제 체코 마지막 도시, 노바 비스트르지체를 출발했다. 네팔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칭송하는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길은 여인의 아련한 속치마처럼 안개가 잔득 끼었다.

▲ 2017년 10월 9일 체코 Nova Bystrice에서 오스트리아 Grosse siegharts까지 달리면서

체코에서는 험한 산악지형을 오르내리느라 기진맥진했었는데 이제부터는 완만한 내리막이 계속된다. 완만한 내리막에서 발걸음은 자연히 왈츠 운율에 맞춰진다. 꿈결 같은 경치의 알프스, 중세 유럽의 품격과 예술적 영감이 가득한 땅,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 요한 슈트라우스와 모차르트, 하이든 같은 음악가가 태어나고 활동하던 곳이다.

지금은 영세중립국이지만 인류가 저지른 가장 야만적 전쟁인 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잉태한 땅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오스트리아에서 나고 자란 히틀러가 빈에서 미술학교를 다닐 무렵 레닌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그 얼마 후 스탈린이 혁명의 영감을 얻으며 꿈을 키우고 있었던 억센 기가 흐르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인들이 일찍이 1세기 때 이곳에 성루를 건설했다. 북쪽 게르만족 침입이 있자 로마인들은 도나우 강에 방어진을 구축했는데 이 진지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여 오늘날 주요도시가 되었다. 로마는 결국 게르만족에게 무너지고 게르만족 일파인 프랑크족이 이 지역을 지배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자부하며 프랑크 왕국에서 분리된 프랑스 부르봉 왕가와 오스트리아는 수백 년에 걸쳐 경쟁을 한다. 지금은 유럽 중앙의 작은 나라지만 합스부르크왕가 시절 프랑스 서쪽으로부터 발칸반도와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이루었다.

이제 꼭 40일 째 달려 수많은 도시와 마을을 지나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며 나는 나의 상상력과 에너지가 무한대로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이 길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달린다면 한반도 남쪽에 갇혀있던 작은 이념들과 관념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알게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달릴 때 시간은 일직선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다. 생각은 과거와 미래 현재를 넘나들며 홍수 때 물처럼 폭을 넓혀간다. 이제 나에게 있어 손목에 찬 시계는 의미가 없어진다. 하늘에 뜬 태양과 달이 시간을 알려주고, 위장의 허기가 식사 시간을 알려주고 계절마다 변화하는 숲이 큰 시간을 알려줄 뿐이다.

나는 지구 반 바퀴를 돌면서 혹성탈출의 설렘을 맞본다. 세상은 이제 인터넷의 발달로 실시간에 연결되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었다. 지금은 다국적 기업의 총수가 칭기스 칸의 제국보다도 더 큰 영역에서 더 큰 이익을 남기고 어쩌면 더 큰 권력을 자손들에게 교묘하게 물려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종교, 이념 등의 문제로 이 길은 미지의 길로 남아있다. 그 미지의 길을 두 발이 찍어내는 촘촘한 발자국을 무기삼아 평화 벨트로 연결할 것이다.

▲ 2017년 10월 7일 Mlada Vozice에서 Destna까지
▲ 2017년 10월 8일 Destna에서 Nova Bystrice까지 달리면서
▲ 2017년 10월 8일 Destna에서 Nova Bystrice까지
▲ 2017년 10월 9일 체코 Nova Bystrice에서 오스트리아 Grosse siegharts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2017년 10월 9일 체코 Nova Bystrice에서 오스트리아 Grosse siegharts까지 달리면서
▲ 2017년 10월 10일 Grosse siegharts에서 Gars am kamp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2017년 10월 10일 Grosse siegharts에서 Gars am kamp까지 달리면서
▲ 2017년 10월 10일 Grosse siegharts에서 Gars am kamp까지 달리면서
▲ 9월 1일 이후 10월 10일까지 달린 여정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페이스북 페이지(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에서 확인 가능하다. 또한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29277)와 강명구 마라토너의 홈페이지(http://eur20as17ia.cafe24.com/)에서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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