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희극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는 비극이다. 인간들이 무엇을 선택하든 간에 세상 어딘가에는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지구촌 어느 곳에선가는 아직도 내전과 기아로 허덕이는 불쌍한 인류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세계 곳곳에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진보정권이 들어서도 사회적 갈등은 깊어만 갈뿐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1세기 물질문명이 발달한 현 시대에도 이 지경이니 지난 세대의 인생들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오늘 나는 지난 생을 회상하며 나의 과거를 되돌아본다. 그리 짧지도 않고 그리 길지도 않은 생애였지만 지난 일을 회상하자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자랑스러운 삶도 있었지만 후회스런 삶도 많았다. 80여 년의 세월이 어찌 순탄하기만 했겠는가. 개인의 인생사나 한 나라의 역사나 영광과 오욕으로 점철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헤겔은 옳음과 옳음의 충돌이야말로 비극이라고 했지만, 인생에서 진지하게 수행해야 할 의무들이 서로 상충되어  무엇을 하든 간에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면 그런 삶이야말로 비극적 인생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반면에 선택하기 전에는 숱한 고민을 했지만 나중에 보니 무엇을 선택했다해도 결과적으로 잘한 일로 판명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을 두고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삶은 비극적이었을까 아니면 행운으로 가득한 삶이었을까. 인간의 삶에는 비극적인 일이 더 많을까, 행운이 더 많을까.

나의 과거를 고백하자면 나의 역사는 여자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의 역사다. 탄생 자체를 여인의 몸에서 태어났으며, 아마 죽을 때도 여인 품에 안겨 죽을 것이다. 나이 육십이 되기 전까지는 이 사실을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 일이 내 인생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 70을 넘게 살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의 역사는 세상 역사이기도 하지만 여인들과 관계의 역사이기도 했다. 이것을 애써 부인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겠지만, 그들조차도 세상의 반을 여성이 차지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고, 여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남자들에게 이러저러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상호작용이 선순환인가, 아니면 악순환인가에 의해 좌우된다. 남자들의 권력욕과 명예욕이 여자들의 물질주의와 배금주의에 결탁할 때 그 사회는 썩어빠진 사회가 될 것이고, 반면에 남자들의 정의와 진리에 대한 열망이 여자들의 포용심과 평화주의에 결합될 때 그 사회는 희망찬 미래를 꿈꾸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라는 대립도 겉보기에는 정치적 대립으로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 전자를 부패한 보수라고 부르고, 후자를 진보라고 부른다.

나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적에는 물론이고, 성장해서는 수많은 동거녀들에 둘러싸여 살았다. 동거녀들이 몇 명인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수백 명이거나 수천 명쯤 될 것이다. 매일 동거녀가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날은 밤낮으로 동거녀가 바뀌는 날도 있었다. 심지어는 오전과 오후 사이에 동거녀가 바뀌기도 했다. 나는 행운아인 걸까. 이를 두고 여복(女福)이 많다고 보는 사람은 하수(下數)다. 이를 여난(女難)으로 보는 사람이 고수다. 그것도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일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수많은 동거녀를 거느리는 것을 보니 재력이 대단할거야, 아니면 탤런트처럼 잘 생겼거나, 그것도 아니면 밤일을 엄청 잘할 거야'라고.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돈도, 외모도, 밤일도 그리 출중하지 못하다. 모든 면에서 평범 그 자체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많은 동거녀를 건사하며 사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동거녀들이 어떻게 해서든 나를 찾아오는 걸 내가 막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오는 여자 막지 말고, 가는 여자 붙잡지 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계속>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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