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죽음은 비루한 목숨 위에서 빛난다
"조선의 왕은 앞으로 나와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라"
막상 인조가 그 짓(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을 하기 전까지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랐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제단 위에 청나라 황제가 앉아있고 위에는 의기양양한 청나라의 대신들이, 아래에는 고개를 숙인 조선의 대신들이 늘어섰다. 인조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명치끝이 아파왔다.
검은 상복을 입은 남루한 왕은 절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땅에 찧었다. 그냥 절하다가 머리가 땅에 닿은 것이 아니라 땅에 짓이기는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카메라는 왕이 머리를 찧을 때마다 묻어 올라오는 흙가루까지 잡아냈다.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는 그 모든 시간들은 끝나지 않을 영원 같았다. 갑자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구토감이 올라왔다. 저렇게까지 해서 비루한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가...
페르시아 백만 대군이 스파르타를 침공했을 때 스파르타의 왕은 전사 300명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모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용사들이여, 노예로 치욕스럽게 사느니 자유인으로 명예롭게 죽자.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스파르타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싸우다 죽어갔는지를 기억해 줄 것 이다."
페르시아 대군은 300명의 스파르타 용사들을 쉽게 이기지 못하고 수만의 병사들을 잃은 뒤에야 스파르타를 함락하게 된다. 그 뒤 스파르타는 역사에 남을 용맹함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바쳤는지, 그 수호정신을 인류에게 선사하였다. 희생 없는 자유는 없다고...
왜 인조는 그렇게 죽지 못하였는가. 만약 인조가 갑옷을 입고 말위에 높이 앉아 죽기를 각오하고 맨 앞에 나서서 싸웠다면, 그리하여 스파르타의 왕처럼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어져 처절하게 죽었다면, 우리는 훗날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감히 그 누가 왕부터 어린아이까지 죽기를 각오하고 지키려는 나라를 빼앗으려 할 것인가...
왕은 아니었지만 스파르타 왕처럼 말한 이가 있었다.
"우리는 오늘 이 도청에서 죽지만 훗날 역사는 광주를 기억줄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땅의 민주의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우리를 기억하고 용기를 내고 독재와 맞서 싸울 것입니다."
정말 그랬다. 그들은 죽어서 이 땅에 빛나는 민주주의 별이 되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국민들은 광주를 불러냈고 그들에게 의지했으며 그들과 함께 울고 희망을 노래했다. 지난겨울 그 혹독한 눈보라 속에서도 광주는 늘 광화문 광장에서 국민들과 함께 있었다. 그것은 윤상원 열사가 불의에 굴복하여 비굴하게 살기보다 정의로운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인조같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짓찧었으면, 신군부에게 항복하여 목숨을 구걸하고 살아남았으면, 이 땅의 광주는 남루하고 비루하게 잊혔을 것이었다.
영화에서 역적 최명길은 스스로 역적의 이름을 얻을망정 임금과 백성을 살려야겠다는 의지를 가진 충성스러운 신하로 비추어진다.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으되 아마도 생각할 여백을 남겨둔 듯 하다. 그러나 이완용도 최명길과 같은 논리로 조선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나라를 넘겼다고 했다. 그러한 논리라면 세상은 오직 하나의 강대국과 조각난 식민지들만 남았어야 한다. 진정한 충신이라면 왕의 유한한 육신보다는 영원한 이름을 위해 자신의 목숨으로 충성을 바쳤어야 했다. 그 이름으로 민초들이 힘을 얻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우리는 저 불한당 같은 미 제국주의 책동에 절대로 굴하지 않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존엄과 자주를 위해 싸울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남한산성이다. 그들이 독재 권력이든 미치광이 정권이든, 강대국에 굴하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지 않겠다는 자존심만은 존엄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기야 그 가난하고 병든 나라에서 독재를 하지 않고, 혹은 미치지 않고 어떻게 저 하늘 아래 유일 강대국인 미국과 전면전을 각오하고 싸우겠는가...
아마도 영화를 보는 내내,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객들은 북한을 생각했을 것이다. 박정희가 오랜 시간 우리를 세뇌시켰던 그 치졸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비루하고 남루하게 살아왔는가를 생각하며 힘들어 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다. 누구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는 아니나 누구라도 꼭 봐야할 영화임에는 틀림 없으니... 아마도 이 모순은 남한산성이 이 땅에서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인조가 되지 말고, 최명길이 되지 말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자고 말하던 예판 김상헌이 한번쯤은 되어보자고 말하고 싶다. 얼치기 생각이라 해도...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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