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 네이버뉴스 (2017. 9. 18)

 

이른 아침 러시아워 시간에 바삐 출근하고 있는 사람들 인파 속에서 나 역시 전철로, 버스로, 바쁜 걸음으로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바쁜 일정 속에 잠시 커피 한잔 빼들고 느긋하게 건너편 고층 건물을 응시하고 있으면 성냥갑 같은 층층 사이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며 바쁘게 움직이거나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개미집처럼 정형화된 구조 사이로 건너다 보이는 사무실에서 물론 그런 장면이 자세하게 보였을 리 만무했을 것이고, 단지 내가 서 있는 사무실에서 건너편을 향한 시선 속에서 나를 상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나 역시 마치 이 조직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에 젖어 하루해를 보냈던 짧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정형화된 패턴이 내 몸에 맞지 않음을 알게 되고는 칼 같은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직업으로 갈아탔을 때 나는 ‘아, 이제야 해방이 됐구나.’ 하는 뿌듯함에 도취되어 있었다. 물론 그 자유로움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했고, 자신은 물론 나를 도와주는(고용한) 사람들까지 내가 책임을 져야 했지만, 누군가의 지시 속에서 사는 것보다는 나름의 자부심도 있고 견딜만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은 것이, 자유로움의 세계에서 겪어야 할 경쟁은 조직 속에서보다 한층 치열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강하게 내 머리를 강타한 것이 있었다.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든, 자유로운 직업에서든 이 사회는 전체가 이미 경쟁 체제의 용광로였다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내 능력이 제대로 발휘한다면 그것은 그 누구의 영역도 아닌 나의 일, 나의 영역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그 어디에도 개인이 주인이 되어 일이 처리되는 영역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경쟁의 용광로를 평소 일상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성공’이라는 달콤한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주변의 그 수많은 사람들을 넘어서야 얻어질 수 있는 그 목표를 향한 성공 메시지. 그러나 그 성공이 과연 내게 필요한 쟁취물이기는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곤 했었다.

우리 세대가 이 치열한 경쟁 관계를 견디어 내고 묵묵히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성공’이라는 신기루 때문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 달콤한 성공 메시지도 어느 순간 우리에게서 사라지고 없었다. 바로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IMF라는 크고 깊은 경제 충격과 함께 말이다.

1997년 IMF가 우리 경제를 강타하면서 우리의 경제는 물론 사람들의 인식에도 급속한 변화가 일고 있었다. 산업의 호황기를 누렸던 IMF 이전의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는 이전의 군부 독재 사회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공무원의 대국민 서비스는 경직되어 있었고 은행 문은 높았으며 사람 생명을 다루는 병원의 의사는 여전히 고압적이었고 제품 생산 능력이 문제였을 뿐 판매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기업들은 여전히 ‘갑’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그런 권위적이고 경직된 우리 사회가 서서히 그 권위를 내려놓기 시작했고 소비자 개개인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은 IMF가 계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병원의 의사들은 환자들 진료 Chart를 꺼내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자신을 PR 하기 시작했으며, 찾아가서야만 받을 수 있는 서비스로 알았던 법률서비스는 어느새 찾아오는 서비스로 바뀌고 있었다. 상품 역시 팔리는 개념에서 팔아야 하는 개념으로 바뀌자 기업들은 생산 라인을 중지하지 않고 가동하기 위해 대고객 서비스라는 개념을 도입하는가 하면,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광고 등 PR은 가히 전쟁이라 할 정도로 기업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즉 개개인, 소그룹 중심의 권위(주의)가 전 세계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돈이라는 매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쑥대밭에서 변해간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났는지 확실히 대답해주는 이도 없이 난생 처음 겪게 되었던 그 IMF라는 회오리 속에서 우리 사회는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개인은 그저 이 거대한 경제 시스템의 구성원일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개인을 향한 의사들의, 공무원들의, 기업의 태도가 이처럼 확연히 달라져가고 있었다는 것은 일단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성숙한 문화로 인해 이들의 자세가 변했던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서 경제 주체들의 살아가기 위한 생존전략이었던 것임이 곧 드러나기 시작한다. 물론 그 IMF 이전 지나칠 정도의 권위주의적이었던 사회가 탈권위화 되었다는 사실은 일단 긍정적이긴 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기업이 되었든, 기업 내의 직원이 되었든, 자영업자가 되었든, 모든 경제활동의 주체들은 서서히 무한경쟁의 장으로 내몰리기 시작한다.

생각해보자. 경제는 파탄이 났고, 소비자의 소비 여력은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는데, 경제 규모를 뒷받침하는 소비 여력 확대 없이 그 바닥난 소비시장을 서로 점유하려다 보니 쟁탈전이 연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흐름과 함께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을 외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기업의 모든 활동을 지표화하여 관리할 수 있는 제도, 즉 평가제도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MBO(management by objectives, 목표관리), BSC(Balanced Score Card, 균형된 성과평가)라는 인사 시스템을 앞 다투어 도입하기 시작한다. 이후 ‘6 시그마’와 같은 품질관리 경영 혁신 프로그램까지 가세하게 된다. 이전의 테일러시스템이 작업 동선에 대한 과학적 관리방법이었다면 BSC는 언제 어디서든 직원의 성과를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인 관리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당시 미국의 GM, 일본의 도요타 등 선진기업들이 이미 보편적으로 도입하고 있었던 시스템이었고 그들의 사례들은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들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기업 운영의 만능인 시스템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컨설팅 산업도 함께 급성장해간다. 이 성과제도는 복지부동의 밥그릇을 챙기는 연공서열형 인사 체계를 바꾸어갔고, 복지부동의 공무원들을 변화시킬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필요에 의해 도입한 것이 아닌, 어느 날 갑자기 닥친 환경에서 받아들인 이런 시스템들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행동을 제약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성과 강박증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게 되었고,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게 되면서 조금이라도 지체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게 되었다. 총알 배송 서비스라는 슬로건 하에 누리게 된 당일 택배 배송, 30분 내 음식 배달 등 소비자는 군림하는 서비스를 누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조금만 늦으면 질타를 한다. 기업에 돌아가서는 자신들 또한 이렇듯 저자세로 나오지 않으면 그대로 최하위 평가라는 보복으로 돌아와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이처럼 누군가의 지시 없이도 우리나라를, 우리 국민들을 새로운 경쟁체제로 진입하도록 분주하게 움직이게 한 것은, 실은 우리 사회 전반의 비합리적, 비효율적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IMF를 계기로 물밀듯 들어왔던 외부로부터의 무언의 압력 때문이었다. 이후 보스턴컨설팅 그룹, 맥킨지 등 세계 굴지의 컨설팅 기업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고, 국내에도 중견기업들을 타깃으로 하는 컨설팅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기업에 대한 경영컨설팅 산업은 새로운 시장으로 급부상해갔다.

그들 컨설팅 그룹이 기업으로부터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대의 컨설팅 비용을 챙기고 내놓은 결과물들은 다름 아닌 치열한 경쟁의 틀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내부 직원들 간 경쟁체제는 물론, 기업들 간의 치열한 경쟁 채비를 위한 일종의 전략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 그러나 그들은 이를 신 시장 개척 전략이니 Blue Ocean 개발 전략이니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당연히 이 컨설팅을 앞서 구축했던 기업들은 경쟁체제의 선봉이 되었으니 이후 단기간이었지만 경영실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경쟁기업들과의 경쟁에서 그들로부터 이익을 쟁취해온 덕분이다.

이를 본 다른 경쟁기업들도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앞 다투어 이 컨설팅 그룹들로부터 거액의 컨설팅을 받기 시작했고 산업 전반으로 컨설팅이 확산되면서 이제 경쟁의 결과를 독식하는 기업이 사라지게 된다. 모든 기업들이 이미 이 경쟁체제의 기반을 갖추었으므로 서로 쉽게 뺏고 쉽게 빼앗기는 구조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뻔하지 않은가? 치열한 경쟁 체제의 구조 속에서 이들 기업들이 빼앗아 올 수 있는 상대는 버거운 상대가 아닌 만만한 중소기업이 되었으며, 결국 중소기업은 하청 업체로, 대기업은 이들 하청기업을 거느린 거대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 이것이 바로 자본의 신자유주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더 이상 개척할 시장이 바닥이 나자, 이제 새로운 시장을 통해서가 아닌 작은 기업들을 먹어치우고 일반 근로자들은 끝없는 경쟁체제로 내모는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더 이상 성공이라는 허상을 쫓을 수 없음은 물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이 그렇게 내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도 취업시장에 뛰어든 청년들은 취업박람회로, 기업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각종 매체들로, 취업을 위한 스터디 모임으로, 여기저기 바쁘게 몰려다니고 있다. 마치 먹이를 찾아 몰려다니는 야생의 모습이 연상되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꿈도 꾸지 않고, 당장에 먹고 살 먹거리를 위해 젊음을 모두 소진하고 있는 그들에게서 더 이상 ‘성공’이라는 말은 꿈같은 기억 속 단어가 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교육 시장 규모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수준인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2016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약 18조 2천억 원). 처음 대입(대학 입시)을 위한 고교 사교육으로 출발한 사교육 시장이 중등, 초등으로 확대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유치원, 유아 교육까지 미친 듯이 내려가기 시작했으며 학부모들은 속수무책으로 그 사교육 시장에 돈을 퍼부어야만 했다. 그렇게 평정된 사교육 시장이 더 이상 확대될 곳도 없으니 이제 안정화 단계에 들었거니 생각한 순간 착각이었음을 일깨워 주기라도 하듯 바로 취업준비생의 교육 및 정보 시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었던 것. 이제 취업준비생들이 취업을 마치고 나면 조직에서의 승진 준비 시장까지 확대될 차례인가? 이 치열한 정보전쟁의 시장은 과연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중․장년층 시장으로까지 확대되고 결국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 정보전쟁을 치르기 위한 시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어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가 아무리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노력한다 해도 일시적 처방일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는 이 독특한 경쟁체제라는 도구를 통해 이 사회를 더욱 매진하게 할 것이며, 자본의 주기적 사이클인 금융위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부의 재분배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런 순환적 사이클의 반경이 바로 글로벌 시장이고 보니 우리 시장도 이 사이클의 반경에서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하는 우리 삶의 시스템인 자본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되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한 때 우리 인생에서 도박(?)을 꿈꾸게 한 수단으로 여겨졌던 ‘성공 신화’ 대신 오늘의 우리는 이 무한경쟁의 쳇바퀴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자본의 한 자락을 (꼭~) 붙들고 있다. 갈수록 가속도를 내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이 자본에 매달린 손을 놓치기라도 하면 곧 인생은 끝장나고 다시 일어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뿐 누구도 나를 구해줄 수 없다는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청년들의 취업전쟁은 시작되었다. 기업이 원하는 소위 그들만의 인재상으로 거듭나기 위해 마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선 후보자들처럼 온갖 방법으로 자신들을 잘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맞추어 가는 젊음을 보고 있노라면 찡하고 마음이 아려온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진희 주주통신원  kimjh1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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