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6일~69일째

'마라톤이 아름다운 것은 중간 중간에 급수대가 있기 때문이야! 인생이 아름다운 것도 그와 같지! 살다가 지치고 목마를 때 급수대가 여기저기 있어! 황량한 사막보다 오아시스가 많다는 이야기지! 우리의 이웃이, 가족이, 친구가 그리고 간혹 기대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인생의 급수대가 되어주기도 하지!‘

그 때 마시는 물은 어떤 아름다운 여인의 미소보다도 더 가슴을 적신다. 첫 모금 물이 입술을 적셨을 때 첫 키스의 날카로움보다도 더 깊게 혀를 감전시킨다. 마치 그 물을 마시기 위해 먼 길을 온 힘을 다해 뛰어온 사람들 같기도 하다.

▲ 통일흥부가족

날씨는 점점 쌀쌀해져오는데 다리를 다친 제비는 강남에 날아갈 수가 없다. 이 때 흥부가족이 제비를 정성껏 치료해 결국 제비는 강남에 날아갔다. 나도 이 여정 중에 다리에 부상이 왔다. 보통 제비의 이동 거리는 5천km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1만6천km를 달려갈 사람이다. 미사일도 비행거리가 5천km가 넘으면 보통 미사일이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1만6천km를 넘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보통 대륙간탄도미사일하고는 비교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내심 걱정이 태산이었다. 불가리아 국경으로 가기 위해서는 산악지역을 넘어야 한다. 60kg나 되는 손수레를 밀고서... 건강한 다리가 있다 해도 두려움이 밀려왔다. 가는 중간에 잠잘 곳도 없고, 식당도 없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내가 여기서 포기할 사람은 아니지만 몰려오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긴 쉽지 않았다. 매일 아침 두려움에 떨면서도 예기치 않게 마주칠 기쁨에 기대를 한다.

다른 모든 것은 대체 가능하지만 내 몸은 대체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한계 너머 세계를 여행해야할 때 사람들은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나도 두 손을 모았다. 내가 다리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1월 4일 크루세바츠로 가는 도중이었다. 자동차 통행이 잦고 갓길이 없는 길이라 심리적 부담을 안고 달려야했다. 오른쪽 허벅지 안쪽 근육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잤다. 

며칠 전 다녀간 김수임, 김나라씨 가족이 일요예배를 마치고 다시 우족탕을 끊여 온다고 해서 아침 출발은 어린아이처럼 기분 좋게 했다. 그러나 기분 좋은 출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몇 발자국 달리는데 근육통증이 왔다. 갈 길이 멀어 마음이 급했다. 아파도 마음을 다져먹고 달려보았지만 통증은 견딜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불길한 생각이 스쳐갔다. 바로 달리는 것을 포기하고 걷기로 결정했다. 걷는 것과 뛰는 것은 다르다. 다리에 주는 충격에서 큰 차이가 있다. 보통 뛸 때 다리가 받는 충격은 자기 몸무게의 3배가 된다. 그것을 하루 종일 두 달 넘게 견뎌왔으니 탈이 날 때도 되었다.

▲ 2017년 11월 5일 세르비아 크루셰바츠에서 Aleksinac까지 달리면서 만난 사냥꾼, 낛시꾼.그리고 독일 젊은이들.

아픈 다리로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어갔고 산 중에서 토끼를 두 마리 잡은 사냥꾼도 만나고 물고기를 잡아서 콧노래를 부르며 가는 낚시꾼도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유럽 전체를 여행하던 독일 청년 둘이 나를 지나쳐갔다. 다시 돌아와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보더니 나의 여행에 흥미를 표현하며 대단하다며 사진을 찍자고 한다.

느지막이 알렉시나치에 도착하여 샤워를 마치니 통일흥부가족이 도착했다. 불과 며칠만의 만남이지만 너무 반가웠다. 금방 준비한 밥상에 우족탕 한 냄비가 뚝딱 만들어졌다. 한 숟가락이 입안에 들어가면 그리운 맛의 향연이 벌어진다. 한 냄비를 거뜬히 비울 때까지 멈출 줄 모른다. 식사가 끝난 후 오랜만에 만난 한 가족처럼 정담을 나누었다. 우리는 아마도 마음으로 이미 한 가족으로 서로를 받아들인 것 같다.

▲ 김수임씨 가족이 가져온 우족탕

이들은 원래 하루 같이 동행하기로 하고 여기 왔는데, 내 다리도 시원치 않고, 내일하고 모레 나의 일정을 듣더니 나를 놓고 그냥 떠나기 마음이 아프다며 더 같이 가면서 끝나는 부분에 숙소가 없으면, 거기서 숙소까지 태워다주고 다음날 아침 다시 그 자리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다. 내 방으로 돌아와 얼음찜질을 하고 있는데 양준호씨가 와서 마사지를 정성껏 해준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 다리 부상, 얼음 찜질

11월 6일 아침 일찍 보스포로스 TV방송국에서 인터뷰하러 나왔다. 지난번 베체이 TV는 지방방송이었는데 이번에는 전국네트워크를 가진 방송국이다. 이렇게 세계 언론이 평화마라톤에 관심을 갖고 보도해주는 것은 좋은 신호이다. 우리의 통일은 우리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제적 문제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를 가던 내가 남한사람인지 북한사함인지 묻고는 김정은 이야기를 한다. 유명하기로 따지면 어느 한류스타보다도 더 유명하다. 그럴 정도로 한반도의 문제는 이미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것이다. 

▲ 2017년 11월 6일 세르비아 RTV Bosphorus 촬영 중
▲ 2017년 11월 6일 세르비아 RTV Bosphorus 촬영 중

11월 7일 니슈를 출발했다. 원래 계획했던 길은 협곡과 터널을 지나는 길이다. 이 길로는 유모차 통과가 안 된다고 해서 우회도로를 택했다. 이틀 동안 피로트 구까지 가야하는데 약 94km라서 중간에 하루 쉬어야 한다. 그런데 깊은 산악지대라 중간에 쉴 마을이 없다. 호텔이나 식당도 물론 없다.

▲ 2017년 11월 7일 세르비아 니슈에서 페리슈까지 풍광

다리가 아픈 상태라 뛰지 못하고 가진이 가족과 함께 산에 메아리가 울리도록 한 사람이 “평화”하면 다른 사람들이 “통일”을 외치며 평화행진을 했다. 그 소리에 양치기 목동이나 나무를 베던 벌목꾼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그러면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한국 통일을 이야기하면 이 사람들은 유고연방의 향수를 표현한다.

▲ 2017년 11월 7일 세르비아 니슈에서 페리슈까지 어진이 가진이와 함께

어진이. 가진이 가족은 특별한 통일가족이다. 8명의 응원단을 이끄는 치어리더는 역시 나라씨 언니, 김수임씨다, 그녀 조상들은 다 독립군이었다. 이 가족의 통일 교육은 철두철미하다. 어진이, 가진이는 학교교육을 받는 대신 통일교육을 받으며 자유롭게 놀며 자기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데 얼마나 똑똑하고 발랄한지 모르겠다. ‘통일선창’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한다. 학교공부도 모자라 피아노 학원 태권도학원 등 시들어가는 아이들에 비해 열려있는 공부를 하고 있는 이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표정이 너무 좋다. 어진이는 제비가 왜 유럽에서 안 보이는 지 스스로 연구를 하며, 가진이는 길거리 캐스팅이 될 정도로 연예인 기질도 다분하다. 작곡도 한다고 한다.

니슈에서 47km 지점인 페리슈(Peris)에서 마쳤다. 차를 타고 18km를 이동해 운치 있는 산장호텔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페리슈(Peris)로 돌아와 출발했다. 다리는 통일흥부가족의 극진한 간호로 훨씬 차도를 보여 좋아졌고 호젓한 산길은 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아 공기가 보약처럼 좋았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지만 아름다운 동행자와 히말라야를 트레킹 하는 것처럼 상쾌했다.

달리는 내내 이 가족에게 물어다 줄 호박씨는 통일의 호박씨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1만6천km를 달려서 물어올 호박씨가 가은이네 가족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대박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 2017년 11월 5일 세르비아 크루셰바츠에서 Aleksinac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2017년 11월 5일 세르비아 크루셰바츠에서 Aleksinac까지 달리면서 만난 고성당

 

▲ 2017년 11월 6일 세르비아 Aleksinac에서 니슈까지 달리면서 만난 사람들
▲ 2017년 11월 6일 세르비아 Aleksinac에서 니슈까지 어진이, 가진이 가족과 달리면서

 

▲ 2017년 11월 7일 세르비아 니슈에서 페리슈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2017년 11월 7일 세르비아 니슈에서 페리슈까지 달리면서 만난 사람들

 

▲ 2017년 11월 8일 세르비아 페리슈에서 피로트 구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2017년 11월 8일 세르비아 페리슈에서 피로트 구까지 달리면서

 

▲ 2017년 11월 8일 세르비아 페리슈에서 피로트 구까지 달리면서 만난 양떼와 함께

 

▲ 2017년 11월 8일 세르비아 페리슈에서 피로트 구 까지 어진이, 가진이와 함께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11월 8일 세르비아 피로트 구까지 달린 길(누적 최소거리 약 2657.45k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및 동영상 : 강명구, 불가리아 교민 김나라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박효삼 편집위원

#강명구선수유라시아평화마라톤 69일째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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