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47] 래자불선 선자불래(來者不善 善者不來)

꿍꿍이 없이 찾아오는 사람 없더라 김동호 주주통신원l승인2017.11.13l수정2017.11.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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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자불선 선자불래(來者不善 善者不來)‘ 이 말은 청나라 문인인 조익(趙翼)이 쓰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노자의 선자불변 변자불선(善者不辯 辯者不善)을 변형해서 사용했습니다. 둘 다 어렵지 않은 한자이지만 그 뜻은 기억해둘만합니다. ’좋은 뜻을 품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는 조익의 글과, ‘말 잘하는 사람치고 나에게 이로운 사람 없다’라는 의미의 노자 이야기, 마땅히 새기고 경계를 해야겠지요.

우리 조상들이 세운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망하는 계기도 아시는 바와 같이 래자(來者)를 다스리지 못한 탓입니다. 주왕조의 봉건 국인 연나라가 진나라로 통일이 되면서 망하자, 연나라의 장군 위만(사마천 사기에는 ‘만’이란 이름만 존재하나 후에 중국 역사서에서 연나라 사람이 많이 사용했던 위씨 성을 붙임)이란 망명객이 부하 1,000여명을 거느리고 고조선에 찾아옵니다. 고조선의 왕이 바보 천치는 아닐 거고, 어쩌면 위만의 현란한 언변에 속았을 가능성이 크지요. 아니면 당시 청동기에 비해 훨씬 위력적인 철기를 사용하는 그들을 흡수하여 국력을 키우고자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위만과 그 일행을 고조선 영지에 살도록 허락한 준왕은 결국 위만에게 속임을 당해 왕위에서 쫓겨납니다. 한나라 대군이 쳐들어오니 왕궁에 가서 왕을 지키겠다고 말하고, 왕검성 문을 열어주자 들어와 준왕을 공격하여 몰아내고 고조선의 왕이 되었지요. 국호는 그대로 조선이라고 사용하였고, 일반 백성들이 크게 반발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위만이란 사람이 언어나 풍습이 같은 고조선족 출신이 아닐까 추측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기를 쳐서 왕이 된 위만의 손자 우거왕 때 한나라의 공격으로 고조선은 망하고 맙니다.

선한 마음을 품고 오지 않은 사람, 아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來者를 구해준 결과는 개인 준왕뿐만 아니라 고조선이란 나라의 흥망과도 연결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는 많은 來者들이 끊임없이 찾아왔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침략하기도 했고, 우리의 요청을 받아 들어오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 백성들이 이익을 보거나 잘 살게 된 역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집안에 재물이 늘어나면 옆집을 기웃거립니다. 어떻게든 집을 더 크게 늘리려고 하거나 아니면 다른 더 넓고 좋은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하지 아무 조건 없이 옆집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라고 부를 나누지는 않지요. 만약에 옆집에서 사정이 어렵다고 도와달라고 하면 더 큰 담보를 요구할 것입니다. 국가 간에는 더 치열하게 이해득실을 따지지요.

요사이 한국과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는 그야말로 안개 속을 헤매는 형국에, 적도 아군도 구분이 안 되는 암흑입니다.

조선왕조가 망해가는 과정을 보노라면 일본, 청나라, 러시아가 호시탐탐 구실을 만들었던 이유 보다도 백성들의 마음이 이미 떠났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신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 나의 자식들마저 희망이 없는 나라라면 차라리 망하길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겠지요.

비록 지금도 오리무중의 정세이지만 조선말과 가장 큰 차이는 대한민국이 이대로 망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거나 있어도 극히 소수일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모두 우리입장에서 보면 흑심을 품은 來者들입니다. 혹자는 배은망덕이라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과거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자들이나,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지요.

▲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발사대 4기의 추가배치를 놓고 6일 밤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마을 주민과 경찰의 충돌이 빚어졌다. 성주/백소아 기자(사진 출처: m.hani.co.kr 2017, 9,7)

최근의 가장 큰 이슈는 아무래도 사드문제일 것입니다. 사드(THAAD)는 사거리 3,000Km급 이하의 단거리,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40~150Km 상공에서 요격하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입니다.

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익에 이로운지 해로운지 따지기 전에 분명한 사실은 미국의 국익에 매우 이롭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상 모든 전쟁은 뭔가를 얻기 위한 시도였고, 최소의 피해로 최대의 전과를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따라서 뛰어난 지략과 숱한 병법서가 등장을 하지요. 대부분의 군 장비나 인원은 기밀이 유지되어야 하며, 군 시설은 작은 초소라 할지라도 지도에도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감추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드 배치는 우리의 상식과 전혀 맞지 않게 시골 농부에서부터 초등학교 어린애들까지도 참외로 유명한 성주군의 롯데 성주 골프장에 들어섰다는 걸 다 압니다. 심지어 중국 일본인들까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알지요. 마치 큰돈을 들여 전 세계에 광고를 한 것 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드 덕분에 중국으로부터 보복을 당한 업계는 커다란 손실을 입었습니다. 중국은 사드가 자기네 나라를 겨냥해서 배치했다며 강력 반발을 했습니다.

과거 미소가 대치하던 냉전시대에 소련은 미국의 턱밑이자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1962년 10월 당시 젊은 케네디 대통령은 전쟁불사를 외치며 쿠바 해역을 봉쇄하고 만약 수송선을 돌리지 않으면 전면전을 하겠다고 했지요.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에 두는 미사일 기지를 쿠바에 배치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후르시초프는 선단을 돌리고 맙니다.

▲ 미국의 35번째(제44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소련 공산당 제1서기 후루시초프(사진출처: 위키백과)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사드는 성주에 배치가 되었습니다. 사드가 북한을 겨냥했던, 중국을 겨냥했던, 앞으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의 한 축을 담당하겠지요.

사드가 모든 미사일을 모조리 격추시킬 수 있고, 전자파나 다른 유해요인이 없는 완벽한 설비라면 마땅히 청와대나 여의도 국회의사당 옆에 배치를 하여 자기들 목숨을 지킬 것이지, 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머나먼 시골 한적한 곳에 왜 배치를 했을까요?

미국의 의도는 명확하지 않나요? 북한이나 중국과 유사시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먼저 최강의 화력으로 적들이 공격을 해야 할 일차 목표물이 어디겠습니까? 바로 자기들 일거수일투족을 손금 보듯 보고 있는 곳, 자기들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다고 떠벌리는 이 사드 기지가 최우선이겠지요.

가공할 핵무기를 갖춘 현대전에서 몇 분, 아니 몇 초의 시간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입니다. 사드를 성주에 배치하므로서 남과 북은 핵무기의 직접적인 전쟁터가 되었고 우리 국민은 핵무기에 고스란히 노출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시간을 벌면서 본토나 괌, 하와이를 그들의 일차 목표에서 후순위로 밀어내 좀 더 자국의 안전을 확보했고, 한국은 전쟁의 최일선 목표물이 되었으며, 열심히 세금을 거둬 그들의 무기를 더 많이 사줘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리도 처량한 나라가 되었을까요? 나라의 운명을 남에게 내어주고 던져주는 고기 몇 점에 감지덕지하는 강아지 꼴이 되었습니다. 중국도 강대국 미국에게 맞장을 뜨지 못하고 온갖 갑질을 우리에게만 쏟아내고 있습니다. 북한은 깡패 우두머리 대우라도 받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때리면 얻어맞는 동네북인가요?

사드에 대한 찬반으로 얼굴 붉히며 어리석게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이지경이 된 것 모두 우리 탓입니다. 우리끼리 서로 갈라져 싸우느라 옳고 그름을 보지 못하고 사기 정치꾼들에게 놀아난 탓입니다.

래자불선, 선자불래(來者不善,善者不來). 우리 주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떠드는 나라들, 모두가 래자(來者)들이고, 선한 뜻으로, 자기들 이익 없이 우리에게 이익을 절대로 거저주지 않습니다.

사기꾼들, 도둑놈들 말은 참 잘합니다. 그들의 안중에 대한민국 백성들의 이익이 있을까요?

편집 : 안지애 부에디터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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