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고도성장기에 접어들고 있었으나 경제 발전의 금자탑 그림자는 진하고도 짙었다. 시커멓게 드리운 그늘 속에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언젠가 맛볼 따스한 햇볕을 갈구하며 발버둥치다가 시들어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은 지금까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각지대를 밝히는 횃불과도 같았다. 평화시장의 햇볕 들지 않는 작업실에서 피를 토하며 미싱을 돌리는 동심들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다가 좌절 끝에 죽어간 ‘한 노동자의 삶과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고 한자투성이의 노동법전을 뒤적이며 “나에게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었으면” 하고 부르짖었던 전태일의 절규는 젊은이들의 양심에 불을 붙혔다.

그 선두에 조영래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적을 두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조영래는 청계천으로 달려가 ‘서울법대 학생장’을 주선하고 시국선언문을 기초한다. 뒤늦게나마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가 되어 준 조영래에게 전태일이 화답이라도 한 것일까. 조영래는 전태일 덕분에 평생의 배필을 얻게 된다.

1971년 6월 3일 동아일보에는 한 여대생의 투고가 실린다. “..... 한국 사회에서 양심을 더럽히지 않고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렵게 보인다는- 이 슬프고 치사한 사실이 정말이지 진절머리나도록 싫기 때문에 우리 세대는 ‘정치적. ’사회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양심의 아픔 없이도 각자가 개인의 행복과 안락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가 너무도 그리워서, 정치 사회에는 소질도 취미도 별로 없는 사람이 정말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우리는 없는 소질을 불러 일으켜서라도 이런 사회의 성립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목청을 높이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고 분노한 이화여대 4학년생 이옥경이었다.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 조영래는 이 투고에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수십년 뒤에도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피해자를 찾아 달려간 변호사의 젊은 시절이야 오죽했을까. 이화여대생 이옥경은 신문에 독자 투고가 실린 며칠 뒤 '머리에 빗을 댄 것 같지 않은 투박한 남자'의 전화를 받고 만나게 된다.

불의한 사회를 진절머리나게 싫어했던 여대생과 옳은 일에 이 여자다 싶자 불에 덴 듯이 급하게 굴었던 운동권 남학생은 금새 사랑에 빠진다. 저승의 전태일이 살아 있는 조영래의 중매를 선 셈.

“네가 의로움을 추구하면 그것을 얻고 영예로운 예복처럼 그 의로움을 입으리라. 새들은 끼리끼리 날아들고 진리는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돌아오리라.” (집회서 27장 8절-9절)

둘은 곧 결혼을 약속하지만 그 결혼은 만남 이후 8년을 미루게 된다. 71년 당시 조영래는 사법고시에 패스한 사법연수원생이었지만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감옥에 갔고 출옥한 뒤로도 근 6년 동안의 엄혹한 수배 생활을 함께 해야 했던 것이다.

그 기간은 조영래가 “법을 배운 전태일”로서 거듭나는 기간이기도 했다. 조영래는 그 엄혹한 수배 생활 중에 수양을 하듯, 순례를 하듯 고행을 하듯 전태일의 일생을 추적하고 그를 잘근잘근 씹어먹은 뒤 그 이름도 유명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명저를 세상에 토해 냈다. 장기표가 말했듯 그 글은 조영래의 글이기도 했지만 전태일의 글이기도 했다.

“돌아가야 한다 평화시장의 동심 곁으로”를 독백하던 전태일은 조영래의 명문장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줄기로 되살아났다. 글 한 줄 쓰지 않았던 예수의 말씀을 담아 세상을 바꾼 복음서처럼, 전태일 평전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마태와 마가와 누가와 요한은 그 앞에 자신들의 이름은 남겼으되 (물론 누가 이외의 저작자들은 후세의 추측에 의존한 것이긴 하지만) 조영래는 평생 동안 그 책의 저자가 자신임을 알리지 않았다. 그는 진실로 자신을 바닥까지 낮추고, 드러내지 않아서 빛나는 사람이었다.

아비의 교회를 자식이 물려받는 기독교가 판치는 오늘날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어쩌면 12월 25일이 아니라 11월 13일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전태일이라는 한국의 예수가 불의 전차에 올라탄 날.

그리고 그와 함께 인생이 바뀐 여러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 맨 머리에 조영래가 있다.

오늘은 11월 13일이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정호천 시민통신원  iece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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