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미래포럼 [2] 보편적 기본소득, 우리 삶을 바꿀 수 있을까

김진희 주주통신원l승인2017.11.20l수정2017.11.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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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역사가 자연스레 발전해 가듯 미래 진보도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게 했지요. 하지만 틀렸습니다. 진보는 결코 필연적이지 않습니다. 진보란 틈만 나면 거꾸로 되돌리고자 하는 보수 세력으로부터 언제나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위험한 노동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고 노동조건 개선을 얻어내기 위해 크나큰 위험을 감수했던 노동조합 선구자들이 쟁취해낸 승리의 역사에 대해 영국의 학생들이 무언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의 일부분으로 배우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역사는 치열한 노력을 통해서만 지켜지고 유지되는 것임을 <가디언> 칼럼니스트인 폴리 토인비가 이번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강조한 부분이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에서는 기본소득을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모든 개인을 기초로 하여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 사회의 가치의 총합은 구성원들이 함께 누려야 한다는 데서 시작된 조건 없는 기본소득에 관해 유럽에서 새로운 논쟁이 시작된 것은 무엇보다도 1970년대 후반 네덜란드에서였다.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사회의학과 교수인 퀴퍼(J. P. Kuiper)는 임금노동의 비인간적 본성에 대처하는 방법의 하나로 고용과 소득의 고리를 끊기 위해 모두에게 상당한 수준의 ‘소득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금노동의 비인간적 본성에 대해서는 포럼의 연사였던 폴리 토인비의 경험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그녀는 1970년대 미숙련 근로자의 노동 조건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직접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 리용 케이크 공장, 유니레버 비누공장, 병원, 여군, 철강 노동, 석탄 광산 등에서 일하며 몸소 체험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30년이 지나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한번 저임금 일자리를 찾아 일하게 되었는데 그 간 많은 변화 중 첫째 변화가 경제적 구조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저임금 근로자들이 주로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 직군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특정 회사의 소속이 아닌 임시직 노동자로 직업소개소에 소속되어 EU(유럽연합)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살아가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은 고용주들에게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무시된 채 그들의 시간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처럼 경멸 어린 시선으로 대접받고 있다고 말한다. 직업소개소는 그들을 도시 저 건너편으로 보내 몇 시간을 기다리게 만들고 양식을 채우게 한 다음 다시 도시 이편으로 와서 서류를 제출하고 또다시 기다리게 만들었으며, 빈곤한 그들은 지하철 대신 저렴한 버스를 이용하고 때로는 몇 킬로미터를 걸어 다녀야 했다는 생생한 경험을 전한다.

그녀는 이들에 대한 실상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저임금 생활자들이 거리에서 지나치는 세상은 그들을 위한 세상이 아닌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세상이며, 다른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세상의 창에 코가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그들을 위한 세상은 아니었다.” 30년 후 똑같은 저임금 노동을 하면서 받은 급여명세서를 국가세입연구소(급여에 관한 한 최고의 연구기관)에 가져가 계산한 결과 30년 전에 비해 현재 20%를 덜 받고 있었다는 충격적 결과도 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야 할 선결 조건은 다름 아닌 최저생활임금을 보장하는 일이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공공 서비스를 국가로부터 지원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새로운 사회 계약을 논의하고 있으며 그 사회 계약은 더 평등한 수입을 통해 우리 사회를 다시 한번 가깝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이 새로운 사회계약을 실현할 수단 중 하나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기본소득 논의이며 기본소득 논의에서 우리는 그녀가 경험했던 실상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더 평등한 수입을 통해 다시 한번 가깝게 만들어 줄 방법으로 기본소득의 도입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최선의 방안인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의 기본소득 논의는 폴리 토인비를 비롯한 포럼의 토론자들이 진단한 저임금 근로자들의 소외된 실상을 해결하기 위해 순수하게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논의가 진전되기 시작한 시점은, 다름 아닌 세계 경제의 지속적인 침체국면과 함께 대다수 사람들의 빈곤이 경제 기반 자체를 위협하게 되면서 경제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 시작된 측면도 강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생명은 무한 경쟁, 즉 무한 활동성이다. 무한 활동(즉 무한 확장, 무한 증식)을 지속하기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균형’이다. 불균형해야만 자본주의는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 불균형이 커질수록 자본주의는 잘 돌아간다. 그런데 기본소득 논의는 왜 관심을 받게 된 것일까. 부의 극심한 양극화, 즉 불균형 상태로의 진행이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로 극에 달한 탓이다. 지나친 양극화가 되다 보니 오히려 자본을 굴릴 기반 자체가 허약해진 것이다. 이를테면 다시 자본을 굴릴 수 있는 기름을 치자는 것이다. 다름 아닌 자본의 상품을 사용할 소비력을 회복하자는 것. 외형적으로는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복지를 확충하자는 의미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경제를 돌아가게 할 동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경제가 돌아갈 수 있게 할 수단이 이 기본소득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지독한 자본주의도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시스템이기 때문에 나름의 룰이 있었다. 다만 그 룰이 자본가에 의해 휘둘렸기 때문에 왜곡되어 편중되어 왔을 뿐이다.

원칙적으로는 자본의 전횡을 막을 각종 제도, 즉 부의 합리적 분배 방법은 ‘생산과정’에서 실현되어야 마땅하고 보다 근본적 해결이 될 것이다. 적정한 임금의 분배, 적정한 소비가의 책정, 소비자를 지나치게 현혹함으로써 쓰레기 수준의 과잉소비를 유발하는 행위의 규제 등 기업의 생산활동과 유통과정의 규제를 통해 왜곡된 부의 양극화 경향을 막을 수 있다. 이는 왜곡 현상을 자본의 본질, 자본의 회전 과정에서 찾아 처방하는 길일 것이다.

최근의 기본소득 논의는 이 본질로부터 또다시 분리해서 사후 방법을 찾고 있는 방식이다. 자본주의는 항상 본질과의 분리를 통해 이익을 취해왔고 보이지 않는 지배력을 형성해 왔다. 인간의 노동력을 생산 현장에서 분리함으로써 인간은 점점 노동의 본질을 망각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예속되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되었다. 화폐(거래의 수단)의 본래 의미에 대해서도, 소비(생존을 위해)의 의미에 대해서도 그 본질을 망각하게 했다. 기본소득 논의도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 분배 문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진 방식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부를 분배한다는데 무슨 문제가 생긴다는 거야.’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부를 분배하는 방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본과 노동이 동등하게 거래하여 대가를 나누어 가지는 과정에 큰 문제가 생겼던 것이고 이를 시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했던 생산과 소비 과정을 건드리지 않고 세금이나, 복지 등 다양한 간접적 방법을 동원해 왔고 그로 인해 많은 문제도 이어졌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 본질은 다름 아닌 권력관계였던 것이다. 부를 중심으로 한 권력관계로 재편되었고, 노동자들은 자본가에게 선택되어야만 먹고살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문제가 있다. 왜곡된 분배는 그 ‘생산에 기여하는 주체들에 대한 분배의 과정’에서 해결되어야 하는데 분배가 다 끝난 상태에서 이미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본가가 그 피지배층에게 선심을 베풀 듯 나누어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지위는 더욱 예속되고 위축될 것이다.

더구나 금융소득, 부자증세 등 세제개편을 통해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식은 저소득층이 국가로부터 공공지원을 고맙게 받는 정서적 상태(사실 고마워해야 할 일은 아니다)를 기본소득 지급 시에도 똑같이 경험하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이 갖는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요되는 자금 조성의 문제를 제외하면 우선 공공서비스나 지원처럼 행정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며 실시가 용이하다는 것, 빈곤해야만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고 선택을 강요받는 공적 지원이 관료주의적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과정에서 인권을 해치게 되고 불편함이 발생하게 된다는 샌드라 폴라스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은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고 나름의 결과를 내놓고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한 해석은 아직 분분한 상황이기도 하다. 자원배당모델의 알래스카 기본소득의 경우 배당기금의 효과를 지니계수를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2008년 기준) 0.403으로 워싱턴(0.540), 뉴욕(0.503) 보다 양호했으며, 빈곤율 역시 20.7%보다 낮은 10% 수준으로 미국에서보다 매우 낮았다고 한다.

반면 실험적으로 실시된 나미비아 오트지베로 지역에서의 기본소득은 수치로는 빈곤 감소, 영양실조 감소, 교육문제 양호, 경제활동 증가, 범죄율 감소로 나타났음에도 나미비아를 방문한(2005.6) IMF 대표단은 기본소득이 재고할 가치가 없는, 실행될 수 없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기존의 경제적 안정을 위험하게 만들고, 신중한 재정정책 행보에 대한 기존의 호의적 평판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기본소득연합은 그것이 이데올로기적이며, 경제적으로 입증될 수 없는 주장임을 다시 한번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상반된 주장의 근저에는 정확한 근거의 중요성보다는 정치적 역량을 좌우할 힘의 논리로 실현될 정책들이 왜곡될 수 있음을 우려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 외에도 기본소득에 대한 시급한 논쟁점은 많다. 먼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의 문제로부터 증세 문제를 어떻게 타협해 갈 것인지, 다른 정책들(사회복지 정책)과의 연계 문제, 노동시장에 미칠 파장 등 고려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기본소득의 운영과 관련해 긍정적 의견을 표방하고 있는 스탠딩 교수는 낮은 기본소득으로 복지 지출을 대체해 버리면 사회임금의 자리를 기본소득이 차지하는 것 외 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다른 복지혜택과 병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노동자가 기본소득으로 인한 자유(No. or Yes를 말할 자유, 일종의 자기 의지에 대한 결정권을 말하는 듯)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1년 전 아시아미래포럼은 ‘더불어 행복’이라는 주제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로서 부탄의 공동체 등 함께 행복을 추구해가는 작은 단위의 공동체들의 모범 사례들을 연구하고 발표했었다. 불과 1년이 지난 올해 포럼이 준비한 주제는 일종의 외적 충격인 4차 산업혁명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의 문제로 급전환했다. ‘함께’라는 방향은 여전히 비슷한데 대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거운 환경 조건을 하나 더 만난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내일을 잘 살아내기 위해 어제를 꼼꼼히 분석해내는 것도 버거운 마당에 시시각각으로 새로운 조건들이 계속 끼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칫 중심과 본질을 놓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부를 분배하고 행복을 나누는 방식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 분배와 행복은 누가 누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누려야 할 기본적이고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 참고

강남훈, 곽노완 et al. 2014. “기본소득 운동의 세계적 현황과 전망” 박종철출판사

노호창. 2014. “기본소득에 관한 개관과 입법 사례의 검토” 서울대노동법연구회 노동법연구. (36).

강남훈. 2010. “기본소득 도입 모델과 경제적 효과” 진보평론. (45).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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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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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원진 2017-11-23 13:23:31

    불균형이 커질수록 자본주의는 잘 돌아간다.....이 것은 가설인가요? 아님 검증된 이론인가요? 이해가 잘 안 되어서 ....급한 것은 아니니 나중에 혹시 시간되시면 설명 혹은 출처 좀 부탁드려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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