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우리 것] 마광남 주주통신원

고려사 제91권 열전4 공주

대목 왕후(大穆王后)는 신정 왕태후(神靜王太后) 황보씨(皇甫氏)의 소생이니 그의 사적은 후비전에 있다.

문혜 왕후(文惠王后)는 정덕 왕후(貞德王后) 유씨(柳氏)의 소생이니 문원 대왕(文元大王) 왕정(王貞)에게 시집갔다.

선의(宣義) 왕후도 정덕 왕후의 소생이니 대종(戴宗) 왕욱(王旭)에게 시집가서 성종(成宗)을 낳았다. 후가 죽으니 시호를 선의(宣義)라고 하였으며 대종 사당에 부요하였다.

목종 5년에 정숙(貞淑)이라는 시호를 더 주었으며 현종 5년에 정목(靜穆)이라는 시호를 더 주었고 현종 18년에 광의(匡懿)라는 시호를 더 주었으며 고종 40년에 익자(益慈)라는 시호를 더 주었다.

공주는 ≪사기≫에 그의 칭호를 전하지 않았으나 그도 정덕 왕후의 소생이며 의성 부원 대군(義城府院大君)에게 시집갔다. 순안 왕대비(順安王大妃)는 정목 부인(貞穆夫人) 왕씨(王氏)의 소생이다.

공주는 ≪사기≫에 그의 칭호를 정하지 않았다.

그는 흥복원 부인(興福院夫人) 홍씨(洪氏)의 소생이니 태자 왕태(王泰)에게 시집갔다.

공주는 사기에 그의 칭호를 전하지 않았다. 성무 부인(聖茂夫人) 박씨(朴氏)의 소생인바 김부(金傅)에게 시집갔다.

안정 숙의 공주(安貞淑儀公主)는 신명 왕태후(神明王太后) 유씨(劉氏)의 소생이니 신라 왕 김부(金傅)가 고려조에 투항하였으므로 공주를 그에게 시집 보내고 낙랑 공주(樂浪公主)라고 불렀으며 또 신란궁 부인(神鸞宮夫人)이라고도 불렀다.

흥방 공주(興芳公主)도 신명 태후의 소생인바 원장 태자(元莊太子)에게 시집갔다.

마광남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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