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49]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서초패왕 항우(項羽: BC232~BC202) 김동호 객원편집위원l승인2017.12.08l수정2018.03.0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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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이야기 34화 ‘한고조 유방’과, 35화 ‘논공행상’에 이어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초한대전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덧붙이자면, 한고조 유방은 초패왕 항우보다 15세 연장이고, 항우는 8년 동안 전장을 휩쓸다가 30살에 자살을 합니다. 항우가 죽고 유방은 45살에 한나라를 세워 황제가 된 후 재위 7년만인 52살에 생을 마칩니다.

▲ 서초패왕 항우 사진: 위키백과

항우는 초나라의 명망 있는 장군가의 후손으로 할아버지 항연은 초나라의 마지막 장군이었지요. 초나라가 망하고 작은아버지 항량의 손에서 자랍니다.

항우하면 연상되는 단어는 장사입니다. 지금도 힘이 센 사람을 일컬어 의심 없이 ‘항우장사’라 부르지요. 기록에는 8척 장신에 큰 쇠솥을 가볍게 들었다고 하는데, 맷돌을 공깃돌 다루듯이 했다는 우리 고전의 표현이 좀 더 세련되지 않을까요?

8년 동안 70여 차례의 전투를 선봉에서 이끌며 마지막 해하의 전투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진적이 없는 전투의 신. 모든 조건에서 비교불가의 우위를 선점한 초패왕 항우는 한고조 유방에게 패하여 역사의 조역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짧은 생애와 극적인 죽음 그리고 오로지 한 여자만을 사랑한 행적 등으로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은 친숙하게 전해지고 있지요.

숙부인 항량은 어린 항우에게 글공부를 시켰으나 전혀 진전이 없자 결국 포기하고 검술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검술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배우려 하지 않자 항량이 화를 냅니다. 그러자 항우는 ‘글이란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면 되고, 칼이란 1:1로 싸워서 지지 않을 정도면 되지 않습니까? 시시한 것 말고 만인을 이길 수 있는 공부를 하겠습니다.’고 대답을 하자 크게 기뻐한 항량이 병법을 가르칩니다. 병법은 좀 더 성의를 갖고 공부를 했지만 곧 그만 둡니다. 아마도 천부적인 힘에 대한 자신감이 과했던 듯합니다.

진시황이 죽고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항량도 조카인 항우를 대리고 거사에 참여를 합니다. 8,000여 군사를 이끌고 반란에 동참하여 점점 세를 불린 후에, 망한 초나라를 다시 세워 초회왕을 옹립합니다. 별동대를 이끌고 유방은 남쪽에서 항우는 북쪽에서 각각 선전을 하는 사이 주력을 이끌던 숙부 항량이 진나라 장한과의 전쟁에서 전사를 하고 맙니다.

초회왕은 “관중(關中:진나라 수도인 함양이 위치한 곳, 장안으로도 불림. 지금의 서안(西安) 지역. 주, 진, 한, 수, 당나라의 도읍지. 매번 왕조가 바뀔 때마다 성을 불사르고 인근에 새로운 성을 쌓다보니 각 왕조의 정확한 도읍지를 모름)에 먼저 입성하는 사람을 관중의 왕으로 삼겠다.”고 선포를 하고, 항우에게는 장군 송의를 도와 북쪽으로 진격 장한에게 패한 주력을 구원하게 합니다.

장군 송의와 알력이 있던 항우는 도중에 송의를 살해하고 직접 군을 인솔하여 진나라 장한을 항복시킵니다. 이로써 진나라는 실질적으로 멸망하게 되지요. 항우는 항복한 진나라 포로 20만을 죽이는데, ‘마음속으로 복종하지 않는 그들이 장차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습격하여 모조리 생매장 하라!’고 명령합니다.

항우는 전투에서 이기고 나면 적들에게 용서가 없었습니다. 성안에서 결사 항전한 성민 5,000여명을 산채로 구덩이를 파고 묻기도 하였지요. 공포는 힘이 있을 때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그 끝은 비극입니다. 떠나는 마음까지 붙잡을 수는 없지요.

이제 가장 강력한 힘을 갖춘 제후가 된 항우는 수도 함양으로 진군을 합니다. 도중에 유방이 먼저 입성을 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관중으로 들어가는 함곡관을 유방이 열지 않자 대노한 항우는 관문을 뚫고 관중으로 들이닥치고 겁을 먹은 유방은 함양으로 후퇴합니다. 항우는 홍문(鴻門)에 진을 치지요.

당시 유방의 군은 10만의 오합지졸이고, 항우는 패를 모르는 40만 대군으로 언감생심 감히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요. 이때 유방으로부터 융숭한 접대를 받았던 항우의 다른 작은아버지 항백이 나서서 싸움을 중지시키고 화친을 종용합니다. 항백은 과거 살인을 하고 쫒길 때 장량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인물입니다.

항우는 연회자리를 만들고 유방을 불러들입니다. 유방이 자신의 경거망동을 속죄하는 형식이었지만 실제로는 어쩔 수 없이 항복하는 자리였습니다. 항우에게는 유방의 책사 장자방(장량)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범증이 있었습니다. 범증은 비록 유방의 세가 지금은 보잘것없지만 수도 함양에 먼저 들어왔고, 점령군이면서도 항복한 진왕 자영뿐만 아니라 시비도 한명 건들지 않고 물러나 인심을 크게 얻은 유방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장막 뒤에 군사를 매복하여 들어오는 유방을 베려고 했지만 장량의 기지로 기회를 놓치고, 수차례 항우에게 약속한 신호를 보내 유방을 죽이라고 하지만 항우는 우유부단 모른 체합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범증은 항장을 불러 검무를 추게 하면서 기회를 봐 유방의 목을 치라고 하였지요. 이를 눈치를 챈 항백이 같이 검무를 추면서 유방을 구합니다. 위험을 느낀 장량이 군문에 있던 장군 번쾌를 들어오게 하고, 유방은 화장실 가는척하고 번쾌의 호위를 받으며 도망을 칩니다. 이를 중국역사에서는 홍문지회(鴻門之會) 혹은 홍문연(鴻門宴)이라 칭하는데 후에 삼국지등 여러 문헌에서 홍문연 혹은 항장과 항백의 검무가 언급이 되지요.

▲ 홍문연 또는 홍문지회라 부름. 항장이 검무를 추며 유방을 죽이려고 하자 장량으로부터 구명지은을 입은 항백이 유방을 보호하기 위해 같이 검무를 춤.              사진: 위키백과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 유방은 다시는 중원을 넘보지 않겠다며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못 나온다는 파촉으로 들어갑니다. 잔도를 모조리 파괴하여 항우의 의심을 피하지요.

항우는 성내로 들어가 진시황의 손자 자영의 목을 치고, 진시황의 여산릉을 파헤쳐 보물을 약탈하였으며, 아방궁에 불을 지릅니다. 3달이 넘게 불길이 타올랐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통일 진나라는 15년 만에 멸망을 하고 도읍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지요. 그러다가 2,000년이 지난 1974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한 병마용 갱으로 인하여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생(韓生)이라는 신하가 항우에게 관중에 남아 패업을 이루라고 간하였으나 항우는 듣지 않고 고향인 초나라로 돌아갑니다. 이때 항우는 지금도 사회면이나 스포츠 기사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좋은 옷을 입었으면 고향에 가서 자랑을 해야지(금의환향,錦衣還鄕), 그렇지 않으면 마치 비단옷 입고 깜깜한 밤중에 걷는 것과 같아 누가 알아주겠느냐(금의야행,錦衣夜行)?’라는 말을 하지요.

금의환향(錦衣還鄕)은 ‘크게 성공하여 고향에 돌아오다.’는 의미로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사용이 되고 있는데, 원래는 다 얻은 천하를 허망하게 날렸다는 의미, 굴러온 복을 발로 찼다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참고로 중국에서는 衣錦還鄕이라고 씀)

관중이라 불리는 이 지역은 천하의 요새로 함곡관만 지키면 외부의 적을 쉽게 막을 수 있고, 배후로 군량조달이 유리하여 800년간 여러 왕조의 도읍지였습니다. 전국7웅의 하나였던 진나라도 이곳 관중을 얻고 도읍을 정하면서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룰 수 있었지요.

항우가 만약 관중을 지키고 있었으면 유방은 절대로 파촉을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한생은 금의환향을 하겠다는 어리석은 항우를 빗대, ‘듣기에 초나라 시골뜨기는 원숭이가 갓 쓴 것 같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구나!’라며 비웃습니다. 그 말이 항우 귀에 들어가자 잡아다 끓는 물에 삶아버리지요.

의기양양한 항우는 고향으로 돌아가 초회왕을 황제에 올리고 자신은 초나라 왕이 됩니다. 황제를 존경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왕이 되려고 회왕을 의제라 부른 거지요. 그리고는 공을 세운 신하들을 제후로 봉해 여러 지역을 다스리게 하고 항우 자신은 초나라 팽성을 도읍지로 정하고 스스로 서초패왕이 됩니다.

유방에 비해 15년이나 젊은 항우의 수구적인 과거로의 회귀는 시대를 이끌 수 있는 재목이 될 수 없다는 방증이지요. 춘추전국시대를 겪으면서 제후들이 지방을 분할하여 다스리는 분권적인 지배체제는 이미 종언을 고했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면서 새로운 통치개념이 당시 시대의 조류였는데 이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패왕이 되어 권세를 누리다보니 명목상 올려준 황제일지라도 의제가 걸리적거립니다. 결국 사람을 시켜 의제를 죽이고 거병을 한 지 3년째, 항우의 나이 25살에 천하는 서초패왕 항우의 차지가 되었습니다.(BC 207년)

편집: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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