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04,105일째

이 찻집은 분위기에서 여느 터키 찻집과 여러모로 달라도 한참 다르다. 보통 찻집은 마을 한가운데 있다. 많은 아저씨들이 모여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게임을 한다. 여자들은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고 당연히 찻잔을 나르는 종업원도 아저씨들이다. 터키 찻집은 단순히 차를 마시고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친목을 다지는 곳이다. 찻집 앞을 지나려면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와서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동방 끝자락에서 온 나그네를 멈추게 하는 경우가 많다. 터키에서 차를 건네는 것은 손님을 대접하는 의미다.

터키인들이 홍차를 좋아하게 된 것은 터키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의 영향도 있다. 그는 터키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위인이다. 아타튀르크가 홍차를 자주 마시고, 또 사람들에게 홍차를 자주 권한 것이 유래가 되어 터키 국민들이 차를 즐기는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홍차는 주로 흑해 일대에서 생산되는 홍차 잎을 이용해서 만든다. 터키사람들은 '차이'라고 부르는 차에 보통 각설탕을 1개에서 2개를 타서 마신다.

▲ 나를 치료해주고 병원까지 같이 가준 고마운 찻집 아주머니

이 찻집은 40쯤 된 예쁘게 생긴 여인이 운영한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시골 길가에 있다. 한적할 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집도 아니고, 언덕 위에 있어 조망이 좋은 집도 아니다. 이런 곳에 무슨 손님이 있을까 싶은 찻집이다. 아주머니는 선정적인 젊은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를 틀어주는 TV 채널에 맞추어 놓고 가끔씩 따라 부르기도 한다. 테이블엔 읽다 덮어둔 톨스토이의 소설책이 놓여있다.

얼굴도 예쁘지만 성격도 좋아서 나그네와 계속해서 손짓발짓 사용하며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무언가 주민등록증 같은 증을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못 알아보니 엽총 총알을 보여주는 것이 사냥 라이센스인 모양이다. 커피와 토스트를 시켰는데 기름막이 뜨는 신선한 우유를 데워서 내다주기도 하고 포도 잎에 말은 밥을 주기도 한다. 커피 한잔 마시고 출발하려다가 우린 뭔지 모르지만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제 개한테 물린 바로 그 앞에 있는 찻집이다.

개한테 물리고 병원 갔다 오느라고 마치지 못한 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어제 멈춘 그 장소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왔다. 남은 거리가 비교적 짧은 거리라 커피 마실 시간을 낸 것이다. 커피향보다도 그녀의 넉넉하고 한가한 미소에 없는 여유도 만들고픈 마음이 들었다. 시간은 흘러 자리에서 일어나지지 않는 무거운 엉덩이를 단호한 마음으로 일으켜 작별을 하면서 포옹 한번 해주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커피 향처럼 은은한 포옹을 해주었다. 흑해가 더 이상 검게 보이지 않고 따뜻하고 푸르게 보이는 것은 여행 중에 간혹 밤하늘 별처럼 반짝이며 나타나는 이런 소소한 기쁨 때문이리라.

이 찻집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커피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다. 내가 가는 이 비단길은 커피길이기도 했다. 에티오피아가 원산인 커피는 15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에 전래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목동이 자신의 염소가 커피 열매를 따먹고 잠도 안자고 밤새 뛰어 노는 걸 보고 신기해서 그 열매를 따먹었더니 각성효과가 있는 걸 알았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처음에는 커피 열매를 먹었다. 그러다 12세기 예멘에서 본격적으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씨앗만으로도 충분히 맛과 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커피는 본래 포도주나 술을 의미하는 ‘카와’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그것은 술처럼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묘한 것이었다. 초창기 커피 애호가들은 커피가 신의 은총으로 신에게 다가가게 하는 매개체라고 했고 반대론자들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쾌락을 즐기는 사탄의 음료라고 논쟁했다.

그러다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도 어느 날 몸이 아파 누워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로 커피 열매를 먹고 회복하였다고 하자 그 이후로부터 예멘을 거쳐 메카로 전파된 커피는 예배를 드릴 때 졸음을 쫒기 위해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급속하게 무슬림세계로 퍼져나갔다. 졸지 않고 밤새 기도하게 만드는 커피 효능은 신심이 깊은 무슬림들에게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었다. 더구나 술이 금지된 이슬람 세계에서 훌륭한 대체 음료로 사랑을 받았다.

커피를 대량 생산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씨앗만으로도 충분한 향과 맛 그리고 효과를 볼 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카웨(kahve)에 모여서 커피를 즐기기 시작했다. 카페는 카훼에서 유래한 말이다.

오늘날 커피는 술과 함께 세계인들에게 제일 사랑 받는 음료로 자리매김 되었다. 술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숨겨진 욕망과 감성을 드러내게 하는 감성의 음료라면 커피는 두뇌활동을 각성시켜 집중력에 도움을 주는 이성의 음료이다. 복잡하게 얽힌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술과 커피는 필수 음료처럼 되어있다. 둘 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명한 비엔나 커피는 오스만 제국의 군인들이 빈에서 급하게 철수하면서 버리고 간 자루에 담긴 커피가 서구인들에게 전해지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오스트리아가 커피를 알게 된 후 커피는 유럽에도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일부 가톨릭 지도자들이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고 교황청에 진정을 냈다. 거친 서명운동에 골치가 아파진 교황 클레멘토 8세는 마지못해 판정을 내리기 위해 커피를 마셔보니 머리가 맑아졌다. 그는 커피의 맛에 흠뻑 빠져들어 “이 사탄의 음료는 이교도들만 마시기엔 너무 맛있다.”라고 하며 커피에게 세례를 주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는 커피에 칸타타를 작곡하여 헌액하였다.

커피는 그 오묘하고 자극적인 냄새로 먼저 사람을 유혹하여 입술을 적시게 한 뒤 치명적인 씁쓰레한 악마의 맛으로 정신이 반짝 나게 한다. 앵두나 체리처럼 생긴 빨간 열매 속의 씨앗만 골라내 물로 씻어 햇볕에 잘 말린 뒤 볶아서 우려먹거나 달여 먹는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원산지로 그들은 기원전부터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처음 이들은 커피를 음료가 아닌 식품으로 대했다. 지금도 에티오피아의 갈라족은 커피를 음식으로 대한다고 한다.

커피가 유럽에서 선풍을 일으키자 아랍인들은 커피의 독점을 위해 커피원두를 볶아서 팔았다. 처음 유럽에 들어갔을 때 커피 값은 금값과 맞먹는 가격이었다고 한다. 1616년 네덜란드인들은 커피 묘목을 몰래 빼돌리는데 성공하여 식민지인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심었다. 네덜란드는 커피 무역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인도네시아는 지금까지 커피 주요 산지가 되었다. 모카커피는 아라비아 반도의 항구도시 모카에서 수출되던 커피를 말한다.

커피의 매력은 순식간에 유럽을 휩쓸었다. 프랑스혁명도 커피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 카페가 유럽을 휩쓸자 지식인들과 대학교수들, 서민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평등과 자유를 논했고 자연스레 정치에 대한 토론과 비판이 이루어지면서 혁명의 싹이 커갔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촛불혁명도 카페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한다. 커피를 마시며 지난 정부의 적폐를 들추어내던 시민들이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개에게 물린 자리, 그 앞집 찻집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평등과 자유, 평화를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서 출발하는 한적한 아침이다. 평화의 원산지는 어디일까?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을 만날까?

 

▲ 2017년 12월 13일 터키 Derecikören에서 Bartin을 거쳐 14일 Karaman kurucasile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표
▲ 2017년 12월 13일 터키 Derecikören에서 Bartin을 거쳐 14일 Karaman kurucasile까지 달리면서 만난 사람들
▲ 2017년 12월 13일 터키 Derecikören에서 Bartin을 거쳐 14일 Karaman kurucasile까지 달리면서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12월 14일 터키 Karaman kurucasile까지(누적 최소거리 약 3785.92k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선수유라시아평화마라톤 105일째(2017년 12월 14일)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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