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쟁이 대통령에 대한 소고

오랫동안 망설였습니다. 어줍잖은 화해 시도는 오히려 상처를 덧내고 말아서 기다림의 침묵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문형께서는 문상객들 중에 섞인 저를 보고도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문형을 보고서야 우리의 상처는 딱지 정도의 자상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핏빛의 아픔이 될지라도 상처를 더욱 덧내서 새 살이 돋은 후에야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화상 같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통곡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 봉하 묘역의 박석에 올린 그 글귀처럼, 2009년 5월 23일 …. 이 땅의 많은 이들이 떨쳐내려 해도 떨칠 수 없는 그 잔인한 날, 우리는 통곡 속에서 만났습니다. 하던 일마저 팽개치고, 어디로 갈지 몰라 헤메다 대한문 근처 돌담 길에 닿았지요. 그곳에 차려진 초라한 영정 앞에 주저앉아 우리는 통곡을 했었지요. 그때 눈물 가득한 눈으로 촛불을 건네주던 이가 문형이었습니다. 절을 하라고 했던가 술을 한 잔 올리라고도 했던가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그 후 국민참여당과 여러 단체들을 거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문형은 간경화 때문에 끊었던 술을 다시 시작했고 저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지요.

핏발이 선 눈으로 독설을 입에 달고 살았던 세월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설움에 복받쳐 좌충우돌 하다가 사고를 내고서야 술자리를 끝내곤 했지요. 브루터스의 칼을 등에 꽂은 채 출구를 찾지 못한 증오들은, 해마다 봉하에서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마신 설움들과 함께 서울역 뒷골목 언저리에서 통곡을 쏟아내곤 했었습니다. 문형의 증오는 뚜렷한 적들에서 시작되어 종내는 진보 진영의 브루터스들에게로 확장되곤 했지요. 그러기에 그 누구하고도 이념의 전선을 확고히 긋지 못한 얼치기인 저에게 외로움까지 덧붙었지요. 이제야 고백합니다. 참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어디선가 주워 들은 그 문구 하나를 붙잡은 채, 술과 자기 혐오와 해장국의 숟가락질과 함께 휘청거리면서도 세월은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그 눈물겨웠던 촛불혁명의 끝에서 우리는 청출어람이라고 믿고 싶은 대통령을 만들어 냈습니다. 맞습니다. 그는 우리가 만들어 낸 대통령입니다. 우리에게 빚이 아주 많은 빚쟁이 대통령입니다.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 노빠 노릇 제대로 못해서 문빠 노릇은 제대로 해 볼라고 발광한다, 왜? 니들이 나 문빠질 하는데 보태준 거 있냐?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노짱 그렇게 보낸 거….. 니들 책임이 더 커 **, 알어? 오죽하면 니들이 한 번씩 비난할 때마다 가슴을 칼로 후벼 파는 것 같이 아팠다고 그러셨겠냐….. 이 나쁜 놈들아 ….”

장면까지 생생히 기억나는 이 말은 언젠가 진보진영 사람들과 설전을 벌이다가 ‘하여튼 문빠들은 못 말린다니까’ 소리를 듣고 벼락같이 일어나 호통을 치듯이 한 말이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문형은 성씨만큼도 문빠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누구에게나 문빠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저야 아시다시피 스스로 문빠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자뻑은 했지만….. 문빠가 아니라 문빠 끝판 왕 이라고 한들 ……. 무게감이 없었지요.

우리의 거리는 엄밀히 말하면 제 탓입니다만 문형께 드릴 말씀은 많습니다. 어느 모임에서 문형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서운해 했던 그 사건들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시기에, 참여정부의 역사들을 대입해보면 조금 기다려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제가 심하게 반박을 하면서부터 균열은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글 쓰기로야 이렇지만 사실 당시 현장 분위기로서는 제 언사가 도를 넘은 것이었고 문형은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당했다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아차 싶었지만 ….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당시에 비판적 지지자와 절대적 지지자 사이에서 갈라졌던 노사모 논쟁이 다시 재론되었고, 이번에는 서로 반대편 입장에 서게 되었지요. 저는 일 이년은 무조건 밀어주고 도와야 한다고 주장을 했고, 문형은 이렇게 나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며 점점 더 좌측으로 무게 이동을 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같이 어울려 모임을 하던 단체들의 영향도 컸으리라고 추측도 했습니다. 그들은 취임한지 백일도 되기 전에 대통령을 몰아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도 해야 한다, 저것도 급하다, 당신은 우리가 만들어 낸 대통령이다, 빚을 갚아야 한다……  

일부이긴 하지만 운동가들과 진보 단체들 사이에서 문재인 이라는 사람을 적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노총은 대통령의 청와대 초대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어떤 카톡방에서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고, 그것을 반박하는 사람들을 향해 문빠라고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도 당당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은 두려움이 가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그런 두려움이 일 때마다 만사 제치고 아고라에 글을 쓰거나 정부에 대한 기사 댓 글 쓰기에 매달렸습니다. 그게 아니다, 그런 사람도 그런 정부도 아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면 알게 된다. 차라리 일년이고 이년이고 그를 잊고 살자……

빚 독촉을 당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요 …. 급기야 빚쟁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일년만 믿고 도와달라’고 국민들을 향해 구걸 아닌 구걸에 나섰습니다. 가슴이 짠 했습니다. 지지율 70%인 대통령이지만 조석모개 같은 국민들 지지율 따위보다 자기를 믿고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그 누군가에게 SOS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힘들어 죽겠습니다….. 살려주세요……

문형 …..

몇 주기 추도식 때이던가 …. 봉하에 비가 왔지요. 추도식이 끝날 무렵 옆에 있던 문형이 없어서 찾아보니, 우산도 안 쓰고 부엉이 바위를 올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눈물인지 빗물인지 얼굴은 젖어 있고 그 멍한 눈동자 속에는 증오심조차 어디 가고 없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 그렇게 외롭게 두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

문빠 소리를 듣고 싶어도, 그렇게 불러주지도 인정 해주지도 않는 저야 그렇다 치고 문형이 그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저에게서 눈길을 거두는 것보다 더 큰 아픔입니다. ‘무조건적이고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대통령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 하겠습니다. ‘믿는다는 것과 정책 실패를 얘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라는 충고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를 향한 눈길만 돌려 세우시지 않는다면 제 생각들을 다시 한 번 고려해보겠습니다. 다만 일 이년 만이라도 백치 아다다 같은, 어떤 바보를 닮은 지지와 사랑을 보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의 살아온 인생이 온통 그럴진대 그 어느 심성으로 우리를 배반 하겠습니까.....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온 말들을 하지 못하고 '전략적 모호성' 이라고 말해놓고 스스로도 얼마나 치욕적이었을까요. 수많은 난제들을 책상에 어지러이 놓아두고 밤잠인들 제대로 이루었겠습니까 ..... 사면초가인 국제무대에서 중국인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애썼던 아침 식사자리마저 '혼밥질 하고 자빠졌다'는 모욕까지 들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나라 국민들입니까....그래도 그는 끄떡없을 것입니다. 전의는 오히려 불타 오르고 전열은 더욱 가다듬을 것입니다. 그러나 빚쟁이 대통령은 ...... 겨우내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과 문형같은 진정한 문빠들이 지지를 거둔다면 다리에 힘이 빠질 것이고 그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의 소진과 외로움의 끝 ..... 다만 그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사과와 이해를 구하려고 시작한 글이 주제를 잃고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다만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서로 한 클릭씩 보듬어서 더 가까이 서게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그나저나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어두운 하늘에서는 눈 대신 비만 뿌리고 있네요. 창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 북녘의 아이들도 산타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유원진 주주통신원  4thme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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