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50] 패왕별희(霸王別姬)와 사면초가(四面楚歌)

서초패왕 항우(BC232~BC202) 김동호 객원편집위원l승인2017.12.25l수정2017.12.26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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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천 년의 역사에서 항우만큼 탁월한 장수는 거의 유일무이합니다. 전술, 전투, 개인의 역량 모두 나무랄 데가 없는 용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지혜를 함께 주지는 않았습니다.

전장에서 함께 싸울 때는 몰랐지만, 막상 논공행상에 들어가면 섭섭함이 생기지요. 항우는 객관적이지도 남들을 납득시키지도 못했습니다. 즉흥적이고 기분 내키는 대로 자리를 주다보니 불만이 거셌고, 이는 따르던 사람들이 쉽게 떠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비록 진나라에 망했어도 춘추전국시대 최초의 패자가되었던 환공 이래로 제나라는 강력한 나라를 유지했었지요. 제나라의 최고 실력자 전영은 항우와 사이가 좋지 않아 항우의 동맹군에 가담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전영에게 반기를 들었던 전도와 전안은 각자 항우를 위해 공을 세웁니다.

항우는 제나라를 삼등분하여 전도를 제나라 왕, 전안은 제북 왕에 임명을 하지요. 전영일족에게는 조그만 땅을 줍니다. 실세 전영은 항우의 분봉으로 왕이 된 전도를 초나라로 쫓아버리고 전안을 살해한 후 스스로 왕이 되어 제나라를 다시 통일시킵니다. 항우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을 한 샘이지요.

역사에 크게 등장을 하지는 않지만 팽월이란 장수는 사실 초한대전의 최대 변수였고, 항우를 가장 힘들게 하였으며, 승패의 추를 기울게 한 인물입니다. 팽월은 거야라는 지역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주업은 도둑질이었지요. 진시황 사후 전국에서 난이 일어나자 이곳 수적들까지 난을 일으키자고 팽월에게 찾아가지만 때를 기다리자며 거절합니다.

1년여 사태를 관망하다가 100여명이 다시 찾아가 팽월에게 수령이 되어줄 것을 간청합니다. 여러 번 사양을 하다가 허락을 하는 대신,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합류를 하고, 만약 늦으면 참수하기로 약속을 합니다.

다음날 10여명이 지각을 하였고, 제일 늦은 자는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도착을 합니다. 팽월은 가장 늦은 사람을 직접 참수하고 제사를 지내 군령을 세웁니다. 이곳저곳 공격을 하고, 제후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병사들을 모아 만 여명에 이르는 게릴라부대가 되었지요. 항우가 패권을 차지하고 각기 제후들에게 분봉을 했지만 항우의 눈에 팽월은 어디 가당한 인물인가요?

BC206년 8월, 초패왕 항우는 제나라 전영의 도전을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다고 판단 직접 정벌에 나서고, 대장군 한신을 얻어 힘을 키운 유방은 드디어 파촉에서 나와 순식간에 진나라 도읍지였던 관중을 차지합니다. 유방의 책사 장량(장자방)의 기지로 유방은 단지 관중에만 관심이 있고 더 이상 욕심이 없다는 말에 속아 항우는 유방을 막지 않고 제나라 전영을 칩니다.

제나라로 진격한 항우는 성양에서 벌어진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전영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항우는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계속 북진을 하면서 닥치는 대로 불 지르고 항복한 군인은 생매장, 힘없는 늙은이나 아녀자는 포로로 잡아들였습니다. 항우가 지나간 마을에는 생명이 없는 폐허로 변했습니다. 전영에 대한 분노였는지, 제나라에 대한 지역감정이 안 좋았는지, 혹은 자신에 대한 저항은 죽음뿐이라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제나라 사람들의 분노는 폭발을 합니다. 이래저래 죽기는 마찬가지라며 필사적으로 저항을 하게 되고, 특히 전영의 동생 전횡은 제나라 군사 수만 명을 모아 전투에 나서자 장기전으로 변해갑니다.

관중을 차지한 유방은 게릴라부대를 이끄는 팽월에게 임명장을 주어 장군으로 삼고 초나라 후방을 교란하게 하였으며, 제후들을 끌어들여 56만의 대군을 형성하자 동진하여 항우가 자리를 비운 팽성을 점령해버립니다.

자신의 본거지이며 수도인 팽성이 함락을 당하자 항우는 단지 3만의 군사만 인솔하고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빠른 결단과 용기 그리고 신속한 이동으로 유방의 56만 연합군을 향해 돌진합니다.

역사에 팽성대전으로 기록되는 이 싸움의 결과는 유방의 대패. 20만이 죽고 나머지는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유방은 형양으로 달아나 굳게 방어만 합니다.

BC204년 형양에서 방어만 하던 유방은 보급로가 끊기자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 항우에게 형양을 경계로 국경을 삼고 전쟁을 종결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책사 범증은 유방이 위험인물이라며 강화를 반대하고 더욱 거세게 공격을 합니다.

이때 진평이 이간계를 씁니다. 항우가 대권을 놓치는 병폐중 하나가 인색함이었습니다. ‘인색한 항우를 배신하고 수하들이 유방과 내통하여 왕이 되려고 한다.’는 간단한 유언비어에 항우는 넘어가 부하들을 의심했고, 범증은 이에 격분하여 항우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맙니다.

항우가 빠져나간 제나라에서는 전횡이 형 전영의 아들 전광을 왕으로 삼고 초나라 군대를 다 몰아낸 다음 다시 제나라를 세우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또한 팽월은 초나라 후방을 맹렬히 공격하여 곧 팽성을 공략할 지경에 이릅니다. 결국 다 잡은 유방을 포기하고 팽월을 치러 초나라로 회군을 해야만 했지요. 항우가 서쪽의 유방과 후방의 팽월 사이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한나라 대장군 한신이 이끄는 부대는 북쪽을 모조리 평정합니다. 항우는 전투에서 지지는 않았지만 형세는 갈수록 어려워졌지요. 더구나 후방에서 군량이 끊임없이 보급이 되는 유방에 비해 팽월의 후방교란으로 항우는 보급도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팽월은 매번 항우에게 패했지만 항우가 자리만 비우면 잽싸게 성을 탈취하고 군량미도 빼앗아 유방에게 나눠주기도 하면서 죽음 직전에 이르는 유방을 여러 번 살려주었습니다.

이때 유방이 다시 동과 서로 천하를 양분하자고 제안을 하자 책사 범증도 사라진 항우는 제안을 승낙하고 포로로 잡고 있던 유방의 아버지와 유방의 처 여후를 풀어줍니다. 그리고 제후들과 군사는 모두 영지로 돌려보내고 팽성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유방은 이때 군사를 돌려 항우의 뒤통수를 칩니다. 갑자기 기습을 했음에도 유방은 항우의 군대에게 또 패하고 말지요. 유방이 어려움에 처했어도 한신과 팽월은 각자 임지에서 달려오지 않자 장량의 건의대로 제나라 왕 한신에게는 봉지를 더 넓혀주고, 팽월에게는 위나라 왕으로 임명한 후 군대를 이끌고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방과 한신 팽월의 대연합군 60만이 해하로 집결을 하여 항우의 10만 초나라 군대를 에워싸고 초한대전의 마지막 해하의 전투가 벌어집니다.

▲ 해하지전(垓下之戰)                       사진:Timetw,com

이 싸움에서 항우는 처음으로 패하고 맙니다. 밤이 되자 사방에서 초나라 민요가 들립니다. 전쟁에서 지고 몸은 피곤한데 쉬지 않고 들리는 고향의 노래 소리는 가족들을 더욱 그립게 합니다. 아침이 되자 군막이 썰렁합니다. 밤사이 모두 탈영을 한 것이지요. 바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유래입니다.

항우도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릅니다.

역발산혜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네)

시불리혜추불서(時不利兮騅不逝, 시세가 불리하니 오추마도 달리지 않네)

추불서혜가나하(騅不逝兮可奈何,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어쩌란 말이냐)

우혜우혜내약하(虞兮虞兮奈若何, 우희야 우희야 내 너를 어찌해야 하느냐)

그러자 우미인이 답가를 부릅니다.

한병기략지(漢兵己略地, 한나라 군대가 우리 땅을 다 빼앗았네)

사면초가성(四面楚歌聲, 사방에서 들리느니 초나라 노랫소리)

대왕의기진(大王義氣盡, 대왕의 의기가 다하였나니)

천첩하료생(賤妾何聊生, 천첩이 살아 무슨 낙을 보리까)

▲ 우희(虞姬, 虞美人, 우 씨 성을 가진 여자 혹은 미인)

중국의 4대 미녀로 초선 대신 언급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Chinese Wiki

이 장면이 항우와 우희의 이별을 다룬 경극 패왕별희입니다. 동명의 소설과 이 소설을 영화화한 장국영 주연의 홍콩영화 패왕별희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지요. 영화에서는 항우의 칼을 뽑아 우미인이 자결을 했다고 나오지만 어떤 소설에서는 항우가 직접 우미인을 죽이는 걸로도 나옵니다. 사료에 우미인의 이후 행적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날 밤 항우는 병사 800명을 대리고 한나라 군대의 포위망을 뚫었고, 회수를 건널 때는 100여명이 따랐습니다. 오강에 도착하자 살아남은 수하 28명으로 추격한 5천의 한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생존한 26명은 배에 태워 고향으로 보낸 뒤 홀로 남아 다시 적진에 뛰어들어 수백 명을 죽이고 항우는 자살을 하지요.

급하면 아버지고 마누라고 내팽개치고 혼자 살겠다고 번번이 도망치고, 마차가 무거워 추격자들에게 잡힐까봐 어린 아들을 밖으로 던지기도 하였으며, 호색에 한량이었던 유방과는 대조로 한 여자만을 사랑했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수하들을 살려 보내기위해 홀로남아 추격을 차단한 항우의 영웅담은 민중의 가슴에 남아 오래오래 이어지고 있습니다.(BC202년)

편집: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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