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0일 천안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

테너 조민웅, 천안 ‘예당’을 삼키다

---2017년 12월 30일 17시, 천안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 ‘The Voice of DUO Concert’

조민웅, 그는 아름다웠다. 그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지상의 시간은 멈추고, 공연장은 오롯이 그의 왕국이 되었다. 그냥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 순간 음악만이 우주를 지배하는, 두렵도록 대단한 아름다움의 독재였다.

드넓은 공연장을 꽉 채운 그의 소리는 크고 웅장했다. 그는 가히 한국 최고의 ‘소리장군’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장래에 세계최고의 ‘음악대장’이 될는지 모른다.

그의 음색은 고우면서도 거침없이 우렁차고, 그의 성량은 우주만이 경영하는 무시무시한 천둥소리를 닮았다. 여러 성악가들이 참가한 콘서트였는데 그가 단연 지배적 주인공인 이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다시 어제의 전율이 돋는다. 세상에 태어나, 언제 이토록, 환희의 경이로움에 심장 떨리는 노래를 들은 적 있나?

 

공연 1부에서는 카운터테너 ‘듀오보체(이희상, 유혁)’의 ‘Ave Maria’와 오페라 리놀도 중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를 불렀다. 카운터테너의 음색은 아주 희귀하고 아름다운 새소리를 연상케 한다. 그들의 음악을 어느 봄날 연두 새순이 막 돋아나는 숲속에서 공연하다면,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이어서 팝아티스트 임학성님의 피아노 연주가 있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The Phantom of the Opera’와 아리랑 편곡을 연주했다. 연세가 좀 있으신데도 이 분의 연주는 에너지를 팝콘처럼 터뜨렸다. 무겁지 않은 경쾌감이 경박하지 않아서 좋았다. 장거리 운전으로 피로했던 몸이 서서히 가벼워지며 피로가 가셨다.

 

다음엔 JTBC 팬텀싱어1에서 내가 마지막까지 지지를 보냈던 ‘인기현상’팀의 바리톤 박상돈의 순서였다. ‘O Sole Mio’, 뮤지컬 ‘지킬 엔 하이드’ 중 ‘This is the Moment(지금 이 순간)’, ‘Besame Mucho’를 특유의 진지함으로 불렀다. 팬텀싱어2에 참가한 동생 박상규(바리톤)처럼 이들 형제는 노래를 굉장히 정성스럽게 부르는 특징이 있다. 음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고 귀하게 다루는 걸 보며 진정한 음악가족임을 느꼈다.

1부 마지막으로 박상돈과 조민웅의 이중창이 시작되었다. 조민웅 팬이 거의 점령한 실내가 삽시에 터져 나오는 환호로 출렁거렸다. 둘은 ‘거위의 꿈’을 불렀다. 우리의 삶에도 늘 높낮이가 있다. 연말에 부르는 둘의 노래는 우리에게 절망을 희망으로 환치시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적절했다.

 

특별한 웅바이러스가 흩뿌려진 열기를 식히듯 15분의 인터미션이 주어졌다.

 

2부에서는 팬텀싱어2 유일한 외국인 참가자 시메 코스타의 공연이 있었다. 뮤지컬 ‘Company’ 중 ‘Being Alive’와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를 불렀다. 늘 자신감 넘치는 그의 고음은 파도를 가르는 요트처럼 전진한다.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몸짓에서도 바람소리가 들려올 것처럼 그는 무대를 즐겼다.

 

이어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유일 외국인 K-POP그룹 EXP Edition의 활기찬 음악이 춤과 함께 송년의 기분을 고조시켰다. Mark Ronson의 ‘Uptown Funk’와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춤과 함께 신나게 불렀다. 간간이 서툰 한국말을 구사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던 이들은 비틀즈의 ‘Let it be’를 관객들과 합창하며 어느 새 실내는 축제분위기에 싸였다.

 

드디어 팬들이 고대하던 조민웅의 차례가 왔다. 1부 마지막에 잠시 나왔건만 팬들은 그의 등장에 수 십 년 헤어진 이산가족 만나듯, 놀라운 괴성을 질러댔다. 물론 나도 질세라 성대를 한껏 열었다. 그의 응원에 혼신을 다하려고 나는 전날부터 전복삼계탕을 만들어 먹고 온 터였다.

첫 곡은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중 ‘Kuda, Kuda, Kuda vi udalilis’, 이 곡은 그가 8월 18일 참가한 팬텀싱어2 경연에서 앞 일부분을 불러서 놀라운 팬심을 고취시켰으나, 전곡을 들을 수 없는 아쉬움에 팬들이 수개월을 고대했다.

온 몸의 세포 사이로 음표가 그려지듯, 그의 감성은 섬세하고 날카로웠다. 팬질은 십대, 이십대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 음악이 끝나자 아줌마부대가 대다수인 팬들은 절규하듯 환성을 질렀다. 나 역시 나이도 잊고 마구 힘찬 박수를 쳐댔다.

다음은 그의 웅장한 성량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중 ‘Le Temps Des Cathedrales(대성당들의 시대)’가 대공연장의 실내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는 무자비한 침략자처럼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음색을 뿜어냈다.

나는 지난여름, 그가 부르는 ‘대성당들의 시대’와 국내외 성악가, 가수들이 부르는 ‘대성당들의 시대’를 비교하느라 유튜브에서 10곡 넘는 노래를 들었다. 그 중에서 그가 가장 무리 없이, 노래의 의미 전달까지 탁월하게 잘 불렀다. 소리에 관한 판단은 자의적이기보다 더 일반적인 보편성을 띄고 있다. 인간의 동물적 청각은 듣기 좋은 소리와 듣기 싫은 소리를 어릴 적부터 오감으로 학습한다.

이쯤에서 그는 갓웅으로 등극해버렸다. 나는 이미 첫 곡부터 간간이 눈물을 훔쳤다. 좀 꾸미고 오느라 마스카라와 아이쉐도우를 발랐는데, 몰골 따위는 잊고 말았다.

역시 ‘노트르담 드 파리’ 중 Belle(아름답다)을 불렀다. 세 사람이 부르는 역할을 조민웅은 혼자서 다 불렀다. 마치 팬텀싱어2에서 남의 도시락까지 걷어와 세 개를 한꺼번에 다 먹어치우듯. 겉으로 보기에도 그는 욕심은 좀 많게 생겼다. 아티스트에게 욕심이란 곧 열정 아니든가. 

그가 부른 노래는 거의 검색을 해봤다. 문화생활과 동떨어진 소도시에 사는 내가 모르는 사이 더 훌륭한 성악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오히려 귀를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주 인간적인, 이 노래가 가진 감성을 너무나 절절히 전달하는 그는 특별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다.

마지막 곡은 시메 코스타와 영화 호빗의 OST ‘I see Fire’였다. 시메의 펄럭이는 깃발과 조민웅의 준마가 불타는 전장을 향해 달려가듯, 음악은 말발굽처럼 허공을 차고 달렸다.

 

지난 11월 25일 그의 첫 콘서트(흰물결아트센터)는 삽시(그의 경연 탈락 충격)에 몰린 3천 5백명을 상회하는 팬들을 위한 팬서트로 치러졌다. 국내외에서 팬들이 모여 5백 석을 꽉 채웠다. 캐나다에서 오신 75세의 할머니 팬부터, 제주도에서 중학생 아들과 동행한 어머니까지, 세 찬 빗줄기도 팬들의 사랑을 막진 못했다. 나도 왕복 9시간 고속버스를 타고 참석했다. 그가 불러주는 음악의 기쁨은 시간개념이나 거리감조차 녹여버렸다.

 

어제 정오에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천안에 갔던 나는 오늘 새벽 1시 30분에 귀가했다. 장거리 운전의 수고로움보다 그의 음악이 준 희열이 더 소중하다.

2017년, 오늘이 마지막 날이지만 전혀 서운하지 않은 특별한 한 해였다.

4천 명에 이를 모든 팬들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웅의 음악’이라는 生의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 초등입학 때 가슴에 달았던 이름표처럼, 심장의 또 다른 박동으로 숨쉬는 ‘Woong’s Music’

이렇게 문화를 즐기는 데는 일정액의 지출이 발생한다.

조민웅의 공연 관람은 열심히 사는 나에게 내가 주는, 아름답고도 소중한 최고의 선물이다.

살아있는 모든 生은 1회성이며, 주어진 시간은 한시성을 지닌 유한(有限)이다.

이 한정된 삶, 우리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편집: 이미진 객원편집위원

이미진 객원편집위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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