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승축하 잔치에서 어리석은 동포들을 깨우치려다 일경에게 맞아 숨지는 의인

항일의 의인 김지호<金志浩>

 

 

하늘도 무심하였던가, 나라는 망하고 임금은 허수아비가 되고나니, 온 나라 백성들은 적들의 총 칼 앞에 짓밟히는 처참한 지경이 되었다. 이때 혈혈단신 맨손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의로운 기상을 치켜 올린 의사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 군의 의인 김지호 부사과<副司果>이분 이었다.

김지호<金志浩>의 자는 덕삼<德三>이고, 문간공 십청헌<十淸軒>의 후손으로 철종 신해년(1851년)에 출생하였다. 매사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뜻이 크고 기개가 있었으며<척당倜儻>, 의롭지 못한 것을 보면 비분강개하였다. 충성스럽고 의로운 마음이 강한만큼이나 그 힘 또한 남달라서 무과에 합격한 후 선전관을 거쳐 선략장군<宣略將軍> 부사과<副司果(조선시대 종6품의 무관. 녹봉을 주기 위한 직으로, 현직에 있지 아니한 문관, 무관, 음관 및 잡직에 있는 사람들로 뽑았음)>가 되었다.

기유년(1909년) 8월 8일 왜적이 우리 의병과 싸워 이기고, 흔히 말하는 선무공작< 적국의 영토를 점령하였을 때,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을 군에 협력하도록 하거나 적어도 적대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행하는 선전 및 원조 등의 활동>과 선전효과를 노리는 전승축하연을 보성읍에서 열었다. 그리고 선비들과 일반 남여 다수를 초청하여 자신들에게 협조를 잘하도록 어우르는 강연을 하였다.

이에 일부 무지하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일본인들의 농간에 속아 ‘일본만세’를 큰소리로 부르고, 노래와 춤판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하자, 김지호 의사는 그 어리석음에 분한 마음이 하늘을 뚫자 맨손으로 뛰어들어 연대장을 붙잡아 두들기니, 잔치자리는 엉망이 되었다. 왜병들이 총검으로 덤벼들어서 공격하니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집으로 돌아왔으나, 끝내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건장하지도 않고 젊지도 않은 늙은 몸으로 일으킨 이 용감한 행동은 중국사기에 나오는 노익장 염파<廉頗>에 결코 뒤지지 않는, 애국 충정의 표상이 되었다.

조카와 손자가 조성면 덕촌에 거주하고 있다

<참고 : 湖南節義史에서 취록 하여 수록한 1974년판 寶城郡鄕土史를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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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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