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29일 <미디어오늘>이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전 청와대 홍보수석)를 인터뷰했다. “이제는 모든 언론을 불신한다는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는 진보언론의 독한 사설과 칼럼 ‘산화하라’, ‘굿바이 노무현’ 등을 쓰며 돌아가시라 고사를 지내다시피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특히 여기서 그가 말하는 기명 기고인 ‘칼럼’은 2009년 4월 16일치 <경향신문>의 ‘이대근 칼럼 <굿바이 노무현>’과 5월 1일치 <한겨레> 김종구 당시 논설위원이 쓴 ‘아침햇발 <비굴이냐, 고통이냐>’를 말하는 것 같다.

이 두 칼럼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형, 아들, 조카 등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얽힌 뇌물 의혹으로 전방위 수사를 받던 와중에 나왔다. ‘굿바이 노무현’은 ‘분명한 것은 지시하고 전달하고 받은 이들은 모두 노무현의 가족이라는 점이고 노무현 패밀리가 한 일’이라고 질타했고, ‘비굴이냐, 고통이냐’도 ‘그와 박연차씨의 돈거래를 상부상조의 미담으로 여길 사람은 더욱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2009년 5월 23일 노 대통령이 서거하자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위의 두 칼럼을 원망하며 서거를 종용했다는 식의 비난이 나왔다. 특히 문제가 된 표현은 ‘노무현 정권의 재앙은 5년의 실패를 넘는다. 다음 5년은 물론, 또 다음 5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굿바이 노무현)와 ‘지금이야말로 그의 예전 장기였던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중략) 그는 죽더라도 그의 시대가 추구했던 가치와 정책, 우리 사회에 던져진 의미 있는 의제들마저 ‘600만달러’의 흙탕물에 휩쓸려 ‘동반 사망’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아직도 남아 있다’(비굴이냐, 고통이냐)다.

위에서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과 ‘사즉생 생즉사’의 표현은 정상적이고 균형적인 사고를 하는 상식인이라면 변명과 방어가 아니라 인정할 건 인정하고 당당하게 수사 받고 죄가 있으면 처벌받아야 한다는 메시지임을 알 것이다. 특히 ‘사즉생 생즉사’란 말이 이순신 장군도 설파했듯이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고 힘껏 싸우면 살 것’이라는 의미의 관용적 표현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두 칼럼은 노무현 대통령을 자살로 내몬 혐의로 8년 넘게 누리공간을 떠돌고 있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될까.

위에서도 소개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교수의 인식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그가 모든 언론을 불신하게 된 계기가 위와 같은 글 때문이고 그 글들이 “돌아가시라 고사를 지내다시피한”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익명의 누리꾼이 아닌, 언론의 매커니즘을 잘 아는 한 나라의 홍보수석을 지낸 분이 위의 칼럼을 이렇게 왜곡 해석해도 되나, 그것을 버젓이 언론 인터뷰에서 해도 되나 어처구니가 없다. 누리꾼 사이에서 떠도는 것처럼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노무현 대통령을 돌아가시게 했다”는 식의 이미지가 고착될까 우려된다.

평생 민주화운동과 기득권과 싸워오며 결국 대통령까지 된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되자 예정에 없던 일정으로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했다. 그는 한겨레를 극진히 사랑하는 창간주주였다. 이런 그의 행보가 이후 두고두고 보수 기득권 세력에게 공격의 빌미가 되었지만 그만큼 한겨레에 대한 그의 사랑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노 대통령이 서거하자 가장 충격 받고 가슴아파한 사람들 중에는 한겨레 구성원들도 모두 포함된다. 창간주주이자 민주화의 동지, 한겨레에게 노무현은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을 뿐이다. 이게 상식 아닌가.

▲ 2009년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줄이어 수많은 주주, 독자들의 애도 광고가 한겨레 면을 채웠다

2017년 2월 ‘비굴이냐 고통이냐’를 쓴 김종구 한겨레 논설위원의 글이 누리꾼 사이에서 재차 논란이 일자 김 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칼럼은 도무지 헤어나기 힘든 처지에 빠진 노 전 대통령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불퇴전의 각오로 정면으로 맞서는 길밖에 없다는 내용의 글”이라면서 “당시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이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온갖 희롱을 다하고 있을 때로 ‘전직 국가원수이니 나라의 체면을 생각해서 구속만은 면하게 해주자’는 따위의 값싼 동정론‘으로 그분을 맘껏 조롱하고 모욕을 가하던 때였고 ‘비굴’하게 타협하고 은전을 구하기보다는 차라리 ‘고통’스럽더라도 감옥에 간다는 각오로 정면으로 맞서라, 이것이 제 글의 요지”라고 밝혔다.

이어서 노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각별한 인연도 자세히 소개했다. 그리고 “고인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인간관계마저 있는데 어떻게 죽음으로 내모는 글을 쓰겠느냐”며 “30여년이 넘는 언론인 생활 동안 언제나 곧은 기사와 사설, 칼럼을 써오려고 노력해왔다. 그리고 절대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왔다고 자부한다. 제 글에 대한 모욕은 한겨레 전체 구성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사실 촛불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시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운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한겨레가 문재인 정부의 공보실은 아니다. 건강한 권-언 관계마저 왜곡하는 현상은 없어져야 한다. 이것이 시민의 바람이고 민주사회의 건강한 모습이다. 입법, 사법, 행정, 언론 모두 변화를 강요받는 시대다.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함께 힘겨워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억울한 덧칠로 폄훼 받을 공동체는 아니다 한겨레는. 노무현 대통령을 잃은 슬픔은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슬픔을 나눈 이들 간의 상처주기는 없었으면 좋겠다.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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