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칼럼] 선비정신과 장인정신

이재준 주주통신원l승인2018.01.10l수정2018.01.10 21:39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지만, 하나와 하나를 보태면 다시 하나가 되는 것도 또한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이는 한자로 표기할 때의 사람 인(人)자의 의미가 될 수 있고, 그 사람들이 모이면 가족, 단체, 사회, 민족 등으로 일컬어 질 수 있을 것이며, 그 사람들의 삶의 행적에 관하여 억겁의 세월을 쌓고 또 쌓으면 역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건 민족이건 역사의 부정적인 면은 잊고 싶겠으나 긍정적인 면의 얼과 혼은 현재와 미래에의 계승 발전을 위한 자료로 삼기 위해 재검토하고 보존을 위하여 열의를 다하고 있는 줄 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물질적 성취에 함몰되어 잊고 있기는 하지만, 선대의 혼과 얼에 관한 것 중에 다시 조명해 봐야 할 중요한 정신으로는 두 가지 정신, 즉 선비정신과 장인정신이 있다고 본다.

그 첫째로 선비정신에 대해서는 우선 성리학을 활짝 꽃피우던 조선 중종조시대에 도학정치의 실현을 구가하다가 매몰되어버린 정암 조광조 및 김식 등 신진사류들을 생각할 수 있으나, 좀 더 거슬러 올라가 태종의 스승이었던 원곡 원천석 선생을 배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는 제자가 왕이 되었으니 온갖 부귀영화를 대대로 누릴 수 있었겠으나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치악산에서의 은자생활로 여생을 다하였다 .이는 권력투쟁을 위한 힘과 책략이 춤추고 사실이 날조되며, 지식층은 의리를 가장하여 곡학아세하고 감심하는 등 이성이 부재하고 역사가 왜곡됨을 증오하고 염려하였던 때문이다. 곧 의로운 일에는 어떤 고난과 역경도 개의치 아니하고 참여하였으되, 이롭지 못한 일에는 초의목식에도 불구하고 동참하지 않는 기개를 잃지 않았으니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긴 정신이 바로 선비정신이다.

둘째로 장인정신이란, 사회계층상 천대를 받던 신분이었지만 얼이 담긴 최고의 작품을 위하여 정력을 불태웠을 뿐 아니라 미흡한 작품일 때는 모조리 깨 부셔 버렸던 장인들의 정신을 일컫는 말이다.

상기의 두 가지 얼은 국가의 정신적 지주가 불교와 유교였던 시대의 동양적 토양에서 싹 틔워졌던 것이나, 서구화의 물결이 대세가 된 오늘날의 시대상황에 맞게 기독교문화권의 서구주의 개념을 대입하여 정리한다면, 각각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정신적 핵이며 정수가 아니겠는가?

석학 막스-베버는 현대 사회구조에 관한 수많은 그의 연구업적 중에서도 합리주의 정신에 의한 자본주의, 청교도 정신에 의한 직업윤리,관료제 등을 통한 지배론 등이 특히 빛나고 있다. 그의 종교관이 담긴 저술 등에서 청교도 윤리는 종교적 이념과 세속적 세계와의 관계에 뿌리 깊은 긴장을 초래하고 있으나, 유교윤리는 불가피한 질서에 대한 개인의 조화로운 적응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설파하는 바, 이는 동양적인 정신에 심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의 긍정적 미래를 추구하려 했던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 세계적 석학의 지적취향을 통해서도 확인하고 싶은 유교 및 불교의 심오한 내면의 세계가 무엇이기에 우리 선인들은 그토록 심취하였으며, 이 곳에 창조성과 은근성을 곁들여 두 정신의 혼과 얼을 우리에게 남겼단 말인가?

물론 선비정신의 주체인 사대부들을 떠올리면 시련의 민족사,생산력 경시사상,붕당성립과 투쟁 등의 파벌싸움,무력해진 국력을 개악시킨 외세의 침입 등 부정적 과거에 대한 책임을 물어 팽개쳐버리고 싶은 심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련과 역경의 역사를 지탱해온 원동력이 그 정신이었음을 믿는다면 정신적 의지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니, 임진왜란 때에는 선비정신에서 출발한 의병활동의 공적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항일독립투쟁사의 면면들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일국의 총리대신 등 온갖 부귀와 권세를 누렸던 이완용보다는 미관말직의 권세와 영화마저도 맛보지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초로가 되어버린 안중근의사라든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의 시인 윤동주, 만해 한용운 선생 등을 기려보면 누가 민족의 얼을 간직한 선생인지 알 수 있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개혁론을 설파할 때 “개혁의 길은 파괴로부터 시작한다. 파괴는 파괴를 위해서가 아니라 건설을 위해서이며, 파괴할 줄 모르면 건설 할 줄도 모른다. 건설과 파괴는 형식상 다를 뿐이니 정신상의 파괴가 곧 건설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대주의, 감각주의, 권위주의, 출세주의, 요령주의, 적당주의, 이기주의, 향락주의, 형식주의, 편법주의 등으로 표시되는 사회현실의 병폐는 하루 속히 청소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개성과 인간애가 넘치고 인간의 능력을 신뢰하며 변화를 예측하여 대응하는 개성존중의 사회, 곧 이성우위의 긍정적 사회의 건설을 위해서는 반드시 정신적 기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정신적 파괴와 건설을 위한 귀감으로서 결코 모자라지 않는 두 가지 얼과 혼을 꼽으라면 선비정신과 장인정신이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이재준 주주통신원  izs4135@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재준 주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참여소통 데스크  |  전화 : 02)710-0093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김광호  |  에디터 : 이동구  |  부에디터 : 심창식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광호
편집위원 : 김경애, 김미경, 박효삼, 서기철, 안지애, 양성숙, 정혁준, 김국화  |  객원편집위원 : 김동호, 김태평
Copyright © 2018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