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철 칼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된지 25년째 되는 날에

여인철 주주통신원l승인2018.01.20l수정2018.01.20 13:27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오늘은 내가 반민족문제연구소(지금의 민족문제연구소)에 (후원)회원으로 가입한지 25년째 되는 날이다.  1991년 9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의 모 연구소에 일하다가, 다음해 울산 현대조선중공업에 파견 나가 근무하던 중 우연히 잡지인지 신문인지에서 "반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원 모집광고를 보고 바로 전화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 전부터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는 해방 후 친일청산에 실패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왔고 그런 단체를 찾고 있던 차에 마침 운명적으로(?) 눈에 띈 것이다. 
당시 후원회원은 전국적으로 100~200명 정도 되었을까? 아직 노태우 군부정권 시절, 사회분위기는 만만치 않았다. 우선 어디 가서 “친일 청산하는 반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이라는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1994년에 대덕연구단지로 오면서 대전지부장을 맡게 되었는데, 일반인들은 나에게 “빨갱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고 시민사회 활동가들조차도 뭐하는 단체냐며 나를 뜨악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대전지부장을 94년에서 2004년까지 10년여 하면서 내 온힘을 다해 친일청산 활동을 벌였다. 우선 대전현충원에 묻혀있는 악질 친일반민족 군인 김창룡을 쫓아내는 일에 주력해 거의 일 년에도 3.1절, 현충일, 광복절에는 ‘김창룡묘 이장촉구’ 행사를 벌였다.

처음엔 관심 없어 하던 시민단체들이 차츰 같이 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대전의 많은 단체들이 동참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김창룡 유족에게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의 우리사회에서의 가장 큰 역할은 ‘친일청산’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연구소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친일인명사전이다.

연구소가 태어난 지 18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2009년에 와서야 편찬된 친일인명사전은 해방 후 당연히 나왔어야 할 것이었다. 친일인명사전은 친일부역자들이 득세하는 뒤집힌 세상에서 일제 식민지시절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자들의 실명과 행적을 세상에 낱낱이 공개해 사후에라도 단죄함으로써 미흡하나마 역사정의를 실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그 오랜 동안 친일청산에 동의하며 연구소를 후원한 전국의 회원들과 연구소의 실무 집행자들, 그리고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길고 고통스런 작업을 기꺼이 수행한 많은 뜻있는 학자그룹이 일궈낸 값진 역사적 쾌거라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라도 친일부역자들이 단죄되는 세상을 보고 싶어 연구소 회원이 된 것이고, 10년 넘게 내 온 마음과 힘을 다 바쳐서 지부장 일을 한 것이다.

그 후 전국의 지부장들의 회의체인 운영위원회의 부위원장을 세 차례 지내고 회원이 된 지 22년 되던 해 나는 전국 13,000 회원의 대표격인 운영위원장으로 선출돼 2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평회원으로 돌아왔다. 적지 않은 세월 25년이 된 오늘 가만히 나의 뒤를 돌아본다.
 
수없이 서서 목청 높이던 대전현충원 앞 다리와 김창룡 묘 그리고 대전역 광장에서 보낸 시간과 성명서의 시간들, 대전현충원의 친일언론인 서춘의 잘라져나간 묘비, 연구소가 설립한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 대전 변호사회관의 변호사들을 찾아다니다 잡상인 취급에 문전박대 당하던 일, 친일청산에 무관심한 세상에 소리치기 위해 글을 써대던 긴 시간들, 등등이 떠오르고 지나간다.

운영위원장이 되어 가장 중시한 부분은 오랜 세월(?) 약화된 운영위원회의 기능과 위상을 회복하고 연구소의 활력을 키워 영역을 친일청산에 더해 사회참여로 확대하는 것이었는데,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듯이 어느 단체나 20여년쯤 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민족의 귀감이 되는 훌륭한 분들을 기리기 위해 생긴 소중한 기념사업회들 중에도 내걸린 함자에 한참 못 미치는 행태를 보이는 데가 많다. 대개는 세월에 초심이 쓸려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연구소의 그런 부분들도 바로잡아보려 했지만 힘이 미치지 못해 이루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30대말부터 60대에 걸쳐 25년의 시간을 친일청산에 온 마음을 바쳐 보낸 것에는 후회 없고, 자랑스럽고, 뿌듯하기도 하다.

오늘 민족문제연구소와의 동행 25주년 되는 날, 내 젊은 시절 25년의 테마, 친일청산이 부디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더 널리 퍼지길 기원한다.


2018. 1. 16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여인철

"제호위에 일장기,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신문입니까?“ 2001. 12. 10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61181

기본도 안된 <조선>의 역사청산 논의
자사 목적에 맞다면 함량미달 글도 싣는 조선일보 2002. 3. 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68366

해도 너무한 강위석의 <중앙시평>
친일파 단죄가 퇴행성 강박관념?  2002. 3. 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68607

'친일군인' 김창룡묘 국립묘지에서 이장해야
[주장]"(가칭)친일군인 김창룡묘 이장 추진위" 구성을 제안하며  2003. 8. 1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38767

장철 회장님, 광복회장직 사퇴하십시오
친일청산을 이제 그만 두자니... 언제 제대로 한 적 있었나? 2002. 8. 1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84683

국방부, '김창룡묘 이장 불가'만 외칠건가  2003. 8. 1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39207

[주장]친일청산이 ‘마녀사냥’이라니....
서울대 안병직 교수의 <중앙일보> 7월 15일자 시론을 반박함  2004. 7. 2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99192

대통령이라고 해서 일본 용서할 수 있나
[주장] 이 대통령, 누구를 위해 '국민화합' 운운하나  2008. 4. 30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90618

편집 : 심창식 부에디터

여인철 주주통신원  ymogyang@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인철 주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허익배 2018-01-21 11:37:02

    훼손된 민족정기를 회복하고자 청춘을 다 바친 여교수님의 수고와 노력이 조만간 꼭 실현될 것입니다...^^신고 | 삭제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참여소통 데스크  |  전화 : 02)710-0093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김광호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광호
    편집위원 : 김경애, 김미경, 박효삼, 서기철, 심창식, 안지애, 양성숙, 정혁준, 김국화  |  객원편집위원 : 김동호, 김태평, 김혜성,허익배
    Copyright © 2018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