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익배 통신원은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로서 6.25 동족상잔 전쟁이 끝난지 이태 후에 태어났다. 한평생 교직에 몸을 담았고, 작년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였다. - 편집자 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의 역사(=국사) 교육을 받아온 나로서는, 우리 역사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단편적 지식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는 중학교 입시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강제로 공부하게 된 그룹과외 공부 시간에, 문교부 발행 사회교과서 책에 있는 고조선 패망 이후의 한사군(漢四郡)과 김종서 장군의 4군(四郡) 6진(六鎭) 명칭 등을 외우기에 바빴던 단편적 지식밖에는 기억에 없었기에 말이다. 그때, ‘4군과 6진’을 과외선생님이 가르쳐주셨던 기억대로 지금 외워본다면, ‘무여우자’와 ‘경원온종회부’라는 첫 글자 외우기이다. (4군은 압록강 상류의 ‘무창군, 여연군, 우예군, 자성군’이고, 6진은 두만강 하류에 설치한 ‘경흥군, 경원군, 온성군, 종성군, 회령군, 부령군’이다.)

중고교시절의 국사도 크게 매력적이지 못했던 것은, 오로지 중간/기말고사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국정 교과서 암기와 참고서 문제풀기식 공부 때문이리라. 그때 단골로 출제되었던 시험문제 기억으로는, ‘다음 보기의 사건들이 차례대로 나열된 것은?’이라는 지문인데, 그러다 보니 연대순으로 기억하는 단편지식만이 역사 공부의 지름길인줄로만 알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역사공부는 대체로 입시 위주의 ‘4지선다형’ 시험공부에만 주력하였던 우리의 학교교육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과 군대 제대 이후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의 역사는 말 그대로 몇몇 영웅들 빼고는 ‘나라 잃은 지질이 못난 조상들’의 역사로 치부하고 말았는데, 아마 학창시절의 식민사관에 치우친 국정교과서 탓이리라. 다행히 40대 후반부터는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이면의 우리역사와 관련되어 저술된 책에 관심을 갖고 읽다보니, 우리에게도 진정 훌륭한 선각(先覺)들이 산재되어 있음을 알고부터 우리 역사에 대해 자학(自虐)보다는 한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주로 근대 이후의 우리 역사에서 ‘머리로는 제도 개혁, 가슴으로는 백성’을 생각한 실학의 여러 사상가들, 그 중에서도 멀리 귀양 간 유배지에서 ‘목민심서’등의 방대한 저술을 남긴 다산 정약용을 통하여, ‘근대의 우리 선조들에게도 이런 훌륭한 분이 계셨구나’ 하는 만시지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구한말 개화를 전후한 이 땅에서의 세계열강들의 각축과 그에 대응한 집권층의 무기력과 사대적(事大的) 망발로 인한 민초(民草)들의 고통에 무한한 비감(悲感)과 연민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 땅의 힘없는 민초들이 마냥 주저앉아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다양하게 대처하고 항거한 자취를 발견하는 기쁨에서 나름대로 우리역사를 해석하는 민중사관(民衆史觀)을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요사이 ‘동학실천시민행동’의 회원으로 가입한 이후에는 동학에 대하여 저술된 잡지와 책을 통하여 수운(水雲) 최제우 선각의 동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올해 계획으로 그분이 남긴 유훈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국립도서관에서 찾아 읽으려 한다.
 
고교 1학년 시절 국어 시간에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일률적 교과서 내용 위주의 일제식 수업에서 탈피한 국어 선생님 덕분에, 선생님이 학생들 모두에게 지명해준 근대 소설 한편을 읽고 작품줄거리와 느낀 점에 대한 발표 수업을 한 것이다. 이 때의 발표 체험을 통하여 나도 국어교사 시절에 수업 들어가는 반 아이들에게 ‘5분 스피치’ 시간을 할애하여 본인이 원하는 주제로 발표시켰던 기억이 난다.

만일 내가 고교시절 역사 수업시간에 국정 교과서가 아닌 검인정 교과서로 토의-토론식, 발표식 역사교육을 받았다면, (젊은 시절 일시적으로 느꼈던) 이 땅에서 살다간 우리 조상들에 대한 비난과 멸시 대신에 무한한 애정과 연민을 어느 정도는 갖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허익배 편집위원  21h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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