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42~145일째

불과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나온 도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것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들 하는데 나의 기억은 정말 믿을 것이 못된다. 1월 20일 고리라는 도시에 들어가기 전 마을이었다. 열심히 땀을 흘리며 코카서스의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는 나를 본 식당아저씨가 손짓으로 나를 불러 차 한 잔 하고 가란다. 방금 전 휴식 시간을 가져서 쉴 시간은 아니었지만 부르는 손짓이 사뭇 진지해서 발걸음을 멈추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 2018년 1월 20일 토요일 조지아 Sagholasheni에서 Zemo Rene까지 달리면서

들어가니 따끈한 차도 내왔지만 포도주도 한 잔 가득히 따라준다. 조지아에는 “당신이 나의 적이면 칼을 받고 나의 친구면 와인을 받으라!”라는 속담이 있다. 그는 우리를 친구로 생각했으므로 와인을 따랐고 나도 친구로 받아들였으므로 한 잔을 단숨에 비웠다. 친구가 된 우리는 통하지 않는 말로 열심히 떠들고 웃고 사진 촬영을 했다. 사진은 여러 장면을 찍었는데 마지막에 한 남자가 큰 사진을 가지고와서 건네주며 들고 찍으라고 해서 무심결에 가족사진인 줄 알고 사진을 찍었는데 찍고 나니 스탈린 사진이란다. 순간적으로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고, 얼굴에 묻은 벌레 떨쳐내듯 질겁하고 사진을 떨어뜨렸다.

고리는 스탈린 고향이다. 스탈린 박물관도 있다. 레닌이 만든 소비에트를 세계 초강대국으로 끌어올린 이가 바로 스탈린이다. 작은 시골 마을인 고리의 구두수선장이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발가락은 기형에다 얼굴에는 천연두 후유증인 곰보자국에다 키마저 자그마해서 아이들에게 늘 놀림을 당했다. 술에 취해서 심하게 매질을 해대던 아버지는 그가 11세가 되던 해에 다른 사람과 싸우다 칼에 찔려 죽고 만다. 이렇게 성장한 그는 러시아혁명 당시 역할이 미미했으나 레닌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한다.

레닌은 그에게 강철 인간이라는 뜻으로 ‘스탈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스탈린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46년 동안 그는 수없이 많은 인민의 피 위에 강철 제국을 건설했다. 숙청이란 미명하에 2천만 명에 달하는 인민을 죽였다. 자기가 태어난 조지아도 핍박했다. 희대의 학살자 스탈린과 같은 무자비한 제국주의자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나의 평화마라톤의 임무 중 하나인데 그의 사진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게 되는 우발적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한반도를 두 동강으로 갈라 친 계기가 되는 얄타회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스탈린이 소련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완성했다면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함께 페레스트로이카를 주도했던 외무장관 셰바드르나제가 또한 조지아 출신이다. 그는 조지아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 두 인물이 모두 조지아 출신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러시아의 역사에서도 그렇지만 조지아 현대사에서 스탈린과 셰바르드나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 2018년 1월 21일 일요일 조지아 Zemo Rene에서 트빌리시 입구까지 달리면서

조지아 출신으로 우리가 알 만한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으니 그 이름은 ‘니코 피로스마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화가다. 피로스마니는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고 무명으로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결국 가난과 질병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화가였다. 부잣집 하인, 철도 노동자 등의 일을 하면서 그림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하고 간판을 그리고 남은 페인트로 그림을 그렸다. 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해 평생 가난한 화가였던 그는 죽고 나서야 인정받아 그림은 비싸게 팔리고, 헌정시가 바쳐지고, 노래가 만들어지고, 영화가 만들어졌다.

▲ 니코. 피로스마니, 〈여배우 마가리타〉, 1906 (사진 출처 : 다음 백과)

마가리타라는 프랑스 출신의 여배우를 남몰래 사랑한 그는 그 배우가 장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그녀의 집 앞을 백만 송이 장미로 장식한다. 하지만 그녀는 정원에 꽃 바다를 이룬 백만 송이 장미를 누가 선물했는지도 모른 채 밤기차를 타고 순회공연을 떠나버렸다. 이 비운의 화가의 사랑은 거기까지였다. 트빌리시에는 유난히 꽃가게가 많다.

▲ 티블리시의 꽃 대신  양탄자

어머니가 조지아인이었던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가사를 쓰고 국민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불렀던 ‘백만 송이 장미’는 이렇듯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다. 보즈네센스키는 러시아 작가 콘스탄틴 파우스톱스키(1892~1968)의 단편 ‘꼴히다’에서 소재를 취해 시를 썼고, 파우스톱스키는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1862~1918)의 실제 사연을 소재로 글을 썼다. 조지아인들이 걸어온 역사와 삶도 이렇듯 순결하고 비극적이어서 백만 가지 사연을 다 담은 듯하다.

그 깊은 사연이 조지아의 포도주에 담겨서 포도주 맛도 순결하고 치명적인 맛을 담았나보다. 성경에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셨다는 구절이 있다. 이는 기원전 6,000년 전 수메르 점토판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와인 역사는 기원전 6,000년경부터 시작됐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은 지역이 아라랏산 근처이며, 아라랏산은 흑해와 카스피 해 사이 소아시아 지역에 있다. 조지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일치한다. 조지아인들이 자신들의 땅을 포도나무의 원산지라고 주장하는데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셈이다.

트빌리시에서 밤차로 작별 인사도 못하고 떠난 사람은 또 있다. 한 달여 같이 지내며 내게 백만 송이 장미와 백만 개의 가시를 함께 준 송교수님이 갑자기 급하게 기차표를 끊으러 가셨다. 거기서 시간이 많이 지체해서 갈 때 작별 인사도 못하고 떠났다. 내가 지나게 될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들러 사전 정지작업을 하신다 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날 줄은 몰랐다.

▲ 트빌리시 공항에서 만난 선한길 교수(왼쪽)와 8시 기차로 떠난 송인엽교수

여덟시에 기차는 떠났다. 오늘은 선한길 교수님이 오셨는데 이별과 작별은 언제나 동시에 이루어지나보다. “바쿠행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네. 그해 1월은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트빌리시의 올드타운과 뉴타운을 가로지르는 무츠바리 강을 연결하는 다리는 이태리 건축가 미켈 데 루치가 설계한 자유의 다리이다. 자유의 다리를 지나며 평화의 길을 설계하는 나그네 어깨 위에 설산을 비추고 튕겨 나온 정오의 햇살이 정답게 내려앉는다.

▲ 이태리 건축가 미켈 데 루치가 설계한 자유의 다리

▲ 2018년 1월 20일 토요일 조지아 Sagholasheni에서 Zemo Rene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2018년 1월 20일 토요일 조지아 Sagholasheni에서 Zemo Rene까지 달리면서 만난 청년들
▲ 2018년 1월 21일 일요일 조지아 Zemo Rene에서 트빌리시 입구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2018년 1월 21일 일요일 조지아 Zemo Rene에서 트빌리시 입구까지 달리면서
▲ 2018년 1월 22일 월요일 조지아 트빌리시입구에서 Ponichala까지 달리면서
▲ 2018년 1월 22일 월요일 조지아 트빌리시입구에서 Ponichala까지 달리면서
▲ 2018년 1월 22일 월요일 조지아 트빌리시입구에서 Ponichala까지 달리면서 만난 무츠바리 강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2018년 1월 22 조지아 Ponichala까지 (누적 최소거리 약 5157.45km)

* 조지아는 러시아어로 그루지야라 부른다. 이글에서는 조지아로 통일하여 쓴다.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 강명구, 송인엽, 박호진 / 동영상 : 송인엽, 박호진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선수유라시아평화마라톤 145일째(2017년 1월 23일)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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