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복의 꿈과 사랑이 시로 피어나다

김용택 시민통신원l승인2018.02.04l수정2018.02.0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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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복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평을 써달라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 시에 서평을...? 걱정이 앞섰지만 서평이 아니라 나는 내가 아는 안종복선생님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 쉽게 대답하고 그가 보내준 시를 읽는 순간 그만 낭패감이 빠지고 말았다. ‘이 사람이 언제부터 이런 시를 썼지?’ 하는 놀라움과 함께 이렇게 아름다운 시집에 내 시답잖은 글이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내가 아는 교육동지 안종복은 ‘가슴에 늘 이렇게 뜨거운 분노를 품고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감동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시를 읽어가면서 미안하고 부끄럽고... 글을 써 주겠다고 약속은 해 놓고 물리지도 못하고 한참동안 쩔쩔 매고 있었다. 나는 무너진 교육을 살리겠다며 권력과 맞서 불의에 맞서 싸우던 교육동지 안종복은 알았지만 그의 가슴 속에 이런 보물을 담고 살아왔다는 것을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안종복선생님 아니 안종복시인을 알고 지낸지는 어언 30년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벅찬 시를 쓰는 시인일 줄 몰랐으니 나도 참 어지간히 사람 볼 줄 모르는 위인이었구나. 그의 시를 읽어보면 누가 그를 옛날 교육투사 안종복,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독사’라는 별명의 안종복으로 알겠는가. 안종복선생님의 시를 읽은 한 지인은 “제 평생 시를 읽다 눈물 난적이 처음‘이라며 ’안종복선생님의 시는 저에게 인생 선물”라며 감격해 했다. 나는 시를 쓸 줄은 모르지만 시를 읽으며 감격해 할 줄은 안다고 자부해 왔다.

그것도 그럴 것이 군사정권의 칼바람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갈 때 나는 김남주의 ‘나의 칼 나의 피’와 같은 온몸으로 피울음 토해내던 시며,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던 도종환의 ‘담쟁이덩굴’과 같은 시, 김준태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양성우의 ‘겨울 공화국’을 읽으며 눈물을 찔끔 거리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런 탓일까? 어쭙잖은 사랑 타령이나 하는 시는 거들 떠 보지도 않고 살아 왔다.

흡혈귀 살인마 전두환, 노태우가 광주시민을 학살하던 그 시절, 우리는 무너진 교육을 살리겠다며 마산 오동동 다리 옆 어수룩한 골목에 달세 사무실을 얻어 ‘전국교사협의회’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퇴근시간이면 부나비처럼 모여들었다. ‘탈퇴각서 한 장’이면 없었던 일로 무사히 교직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우리들은 그 종이 위에 도장 하나 찍을 수 없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었다. 그 후 우리는 함께 최루탄을 마시면 데모꾼이 되어 마산, 창원 골목골목으로 쫓겨 다니며 혹은 수배 당하고 혹은 구속되어 함께 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다. 내가 시인이 부러운 이유는 몇 개의 낱말로 사람의 심장을 이렇게 감동시키고 뛰게 하고 민주주의를, 진실을 깨우치게 하는 그 마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글이라고는 써 본 일이 없는 나는 참교육을 하자는 우리들을 빨갱이로 매도당하는 게 안타까워 칼럼을 쓰면서 나도 ‘시로 표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바로 가까운 아니 늘 함께 살아 온 교육동지가 이런 시를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안종복선생님의 시는 마치 김남주 시처럼 절규요, 피울음이요, 차라리 칼이다. 그 곱디고운 언어로 어떻게 이런 사랑을 한으로 혹은 분노를 승화시킬 수 있을까? 그의 시를 읽는 내내 부러움과 존경심이 우러남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이란 외모나 학력 혹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 온 이력을 보면 인품을 안다. 시나 글도 마찬가지다. 온몸으로 불의에 저항하며 살아 온 그가 어떻게 신들 아름답지 않겠는가? 타협할 줄 모르는 용기와 정의감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기에 이런 시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는 자연을 노래해도 그의 자연 속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자라나는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의 청사진을 담는다.

 

고교시절
바다는 청춘이었다.
친구였다 희망이었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오늘
팔월의 뙤약볕을 이고
따가운 눈물로 바라본 절망의 바다
난 이렇게 태양의 작렬로 어지러운데
수백을 집어 삼킨 너는 왜 미동도 없이
침묵하고 있느냐
바다야 난 네게 뒤집힌 대한민국호의
비밀스런 진실을 심문하러 왔다

바다를 보면서도 그의 가슴 속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담기고...

 

창살에 다가서면 눈물겹도록 그리운 사람
통일의 산천에 눈물 글썽일 그리운 얼굴
아~~해방의 길 비록 멀고 험하다 해도
아~~우리는 간다 아름다운 이 길을....

감옥에서 그가 그리던 사람은 특정인이 아니라 교육혁명을 꿈꾸는 참교육의 세상, 그의 염원이 담겨 있다.

 

오늘도 나는 저명인사들의 글을 읽다
‘민주화 이후’라는 구절에 주름살이 진다
누가 민주화가 되었다고 말 하는가
누가 주권재민을 함부로 이야기 하는가
민중의 생활 속에서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진정 이 땅의 주인인지 노예인지...

이렇게 격랑과 같은 분노로 바뀌기도 한다.

같은 세상을 살아오면서도 혁명을 꿈꾸던 사람, 안종복은 그렇게 청춘을 교육운동으로 보내고 이제 지난 세월을 이렇게 실타래를 풀어내듯 시로 사랑을 풀어내고 있구나. 나는 언어로 이렇게 아름다움을 아닌 분노를 정의를 노래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누가 안종복을 시인이라 하는가. 나는 그를 차라리 사람 사는 세상 주권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염원하는 혁명가라고 부르고 싶다.

* 이 글은 오랜 교육동지이자 시인인 안종복 선생님의 처녀시집 추천사입니다. 최루탄을 마시며 함께 눈물 흘리던 교육동지가 이런 시를 쓰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시집 원고를 보고 쓴 글입니다. 전교조관련으로 구속돼 고문 후유증으로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안종복시인은 현재는 민예총경남회장과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본부 감사를 맡아 손바닥헌법보급운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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