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한겨레, 문대통령과 북대표단

언제부터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인권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필자와 같은 정보요원들은 그 저변에 무슨 꼼수가 숨어 있다는 것을 다 알았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오 CIA국장의 기획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리고 모두들 이해했다. 이는 일종의 저강도 전쟁의 한 형태.라는 것을

“어쩔 수 없잖아”

폼페오가 이런 저런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 안스러워 라스베가스의 한 고급살롱으로 불러냈을 때, 그는 찌푸린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로 인해 수 개월 째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는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자, 폼페오 자신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핵실험을 여섯 번이나 하고 SLBM은 물론, 미국본토의 탄착을 넘어 대서양까지 날릴 수 있는 ICBM을 갖고 있는 나라가 핵 폐기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한 것이라고 했다. 폼페오는 지금 시급한 문제는 핵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뭔데?”

“북한과 남한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우리민족끼리’를 깨야 해”

폼페오는 대북인권공세를 하게 되는 진짜 이유를 그렇게 밝혔다.

트럼프가 느닷없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지난 가을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때, 트럼프는 한국국회 연설에서 미국을 푸들처럼 따르는 한국의 반북보수세력들을 제대로 만족시켜주었다.

트럼프의 대북인권공세는 지난 1월 30일 국정연설로 이어졌다. 1시간 20분 중 북한에 할애한 시간은 7분이었다. 파격적이었다. 국가안보전략(NSS)에서 경쟁국으로 지정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언급이 7초 불과한 것에 비하면 가히 짐작되지 않는가?

트럼프는 북핵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날이 임박했으며, 북이 핵무기를 포기할 때까지 최대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핵문제 언급은 그게 다였다. 핵문제를 두 문장으로 끝낸 뒤 트럼프는 북한인권문제에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이를 위해 백악관 보좌진들의 사전 준비는 평가해줄만 했다. 탈북자 지성호를 부르고, 북에 들어갔다가 옥고를 치른 뒤 귀국해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가족들도 동원했던 것이다.

내외의 반북언론들이 좋아했다. 지성호와 웜비오 가족을 사진 배경으로 넣고 북한 정권의 반인권성과 잔혹성을 한층 부각시켰다. 특히 한국 보수언론들은 더 극성스러웠다. 대서특필까지 한 것이다.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트럼프의 대북인권공세는 여기에서 멎지 않았다. 몇일 전에도 탈북자 8명을 백악관으로 불러 북한을 싫어하는 세력들에게 대북공세의 빌미를 풍족하게 제공했던 것이다.

▲ 출처 : 한겨레, 문대통령과 팬스부통령

“니가 기획한 거야?”

“맥매스터랑 같이”

“탈북자 동원이야 그렇다 치지만 웜비어 아버지까지는 좀 심하지 않아?”

“그렇기는 해”

폼페오는, 대북인권공세로 트럼프를 묶어두지 않으면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또 언제 어떤 돌출 발언을 할지 모른다며 불안해 했다. 폼페오는 자신의 정보기관은 물론 맥매스터라인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이 트럼프의 대북유화태세라고 했다. 트럼프가 지난 대선 선거유세 때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햄버거를 먹겠다고 한 것은 지금 떠올려도 악몽이라는 설명도 덧붙혔다. 폼페오는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틸러슨 국무장관을 우선 경계한다고 했다. 맥매스터와 밀접히 소통하는 가운데 트럼프에게 가는 북한정보를 세세하게 필터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펜스 부통령을 평창올림픽대표단장으로 보내는 사업 역시 맥매스터와 폼페오의 기획품일 것이다. 펜스에게 웜비어 아버지를 함께 보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못마땅한 게 많았다. 펜스가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차, 5일 공군기를 탔을 때 백악관 관계자가 한 브리핑부터가 그랬다. “펜스 부통령은 김정은이 올림픽에 대한 메시지를 납치할까 봐 우려하고 있다”며 “북한은 과거 조작의 대가였으며 현재는 살인 정권”이라고 한 것이다. “단순히 개회식 테이프를 커팅하러 가야 한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펜스가 웜비어 아버지를 꼭 데리고 가야되는가 싶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탈북자간담회를 꼭 해야되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중요치 않아”

“중요한 게 뭐야?”

“문재인 압박”

폼페오는, 북한과 남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민족공조에 기초해 ‘우리민족끼리’로 끌어가는 것을 무슨 수를 쓰든 막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막지 못하면 오도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문재인을 잡는 것이 관건이라고 하면서.

“그건 니 할 일이 아니라 맥매스터 몫이쟎아”

“맥매스터가 곧 나야”

폼페오는 남북관계 개선을 허용하되 한미공조에 기초해 진행되게 하고, 비핵화로 방향을 잘 잡게 해야한다고 했다. 이해가 되었다. 이는 남북관계 개선 국면에서 트럼프정부가 확정해둔 핵심기조이다.

“다른 카드를 쓰기 위한 게야?”

술자리가 깊어 질 무렵 폼페오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특별한 말은 아니었다. 궁금하였지만 물어봐서는 안 될 성질의 이야기였다. 저 멀리 베트남 전쟁의 시발이었던 ‘통킹만 사건’이 떠올랐다. ‘버마아웅산테러사건’과 ‘9.11테러’사건이 그 뒤를 따랐으며, 서울과 평창 그리고 남북군사충돌 사건이 잦았던 서해안도 동시에 떠올랐다. 그때, 필자는 폼페오의 눈빛이 짧은 순간이나마 선뜻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필자는 불안했다.

“너가 불쌍해”

갑작스럽게 들이 댄 나의 노골적인 공격에 폼페오는 헛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다니까’라고 앞서 했던 말을 반복하며 맞섰다.

“그래, 난 니가 부러워, 밖에서 벼라별 이야기를 다 하고 다니쟎아. 북핵은 인정해야 된다는 등 특히 북한과 평화협정 맺어야 된다는 이야기도 하고 말야”

“뭔 소리야, 평화협정 체결은 내가 현직 국가정보국장으로 있을 때 했던 이야기야, 2년 전 5월에 한국에 갔을 때 했던 말이라구”

“그랬었나?”

살롱에서 폼페오와 나눴던 이야기는 더 있었다. 4월 합동군사훈련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이 쉽게 안 선다는 절망적인 푸념을 비롯해, 북핵문제는 종국적으로 핵군축 경로를 탈 수 밖에 없다는 것까지 다양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끝날쯤에 폼페오는 여전히 힘이 빠져있었다. 그러나 헤어질 무렵 악수를 하는 순간엔 달랐다. 아귀에 힘이 불쑥 들어왔다. 특히 눈은 더 달랐다. ‘다른 카드를 쓰기 위한 거야’라는 말을 했을 때의 그 예리한 눈빛이 또 다시 살아나 강하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폼페오 다운 면모일지도 몰랐다. 폼페오는 86년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한 수재다. 공화당에서 3선이나 했던 유능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더구나 지금은 CIA의 수장이다. CIA는 오바마 때 힘 없던 그 CIA가 아니다. 트럼프는 취임하면서 16개의 정보기관을 통합한 기존 국가정보국(DNI)를 해체하고, CIA를 정점에 올려 CIA ‘옛 영광’을 회복시켰다. 최고 가는 그 정보기관의 수장다운 눈빛을 폼페오는 보여준 것이다.

그 눈빛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보기관 경력소유자라면 누구든 바로 안다. 한반도가 요동칠 수도 있다는 직감이 동물적으로 덮쳤다.

그렇다면, 지금 폼페오는 맥매스터와 함께 어떤 저강도전쟁을 기획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이 70년 넘게 구사해왔던 한반도분할전략을 사수하는 것은 그 두 녀석에게 달려있는 지도 모른다.

살롱에서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뒷자리에 몸을 뉘였을 때, 졸기보다 먼저 스멀스멀 기어드는 것이 있었다. 예의 그 불안감이었다.

정세에서 한국이 밀려버린 것은 사실, 아니 오래 전이다. 지금의 정세는 북한이 움켜쥐고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전망이 보통 어두운 게 아니다. 북한은 미국이 70년 넘게 구사해왔던 '남북간거리두기'를 없애버리고 말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태도가 이전과 매우 다르다. 이전에야 핵무력 완성 전이라 미국이 틀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에겐 사실, 뾰죽한 방법이 없다. 북한이 성취한 핵무력이 발휘하는 정치안보적 위력은 그만큼 대단하다. 또한 현실적으로 크고 무겁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안심이 안 된다. 미국 눈치를 보고 있다고는 하지만 나름 뚜렷한 소신이 있어 보인다. 엊그제는 대형이라고 할 만한 사고까지 쳤다. 한미정상 전화통화에서 트럼프가 북한 인권문제와 한미FTA문제를 제기하는 등 대북인권압박과 대남무역압박을 가하는데, 짐짓 딴청을 피우며 미북대화를 언급한 것이다. 누구를 믿고 저런 말을 하나 싶기도 했다. ‘우리민족끼리’의 위력인가?

핵무력에 기반한 북과 남의 ‘우리민족끼리’. 그것에 미국은 당해낼 재간이 솔직히, 없다.

“불쌍타”

문 앞에서 필자를 맞이하는 아내가 그 말을 들었는지 무슨 소리냐고 턱짓으로 물었다.

“몰러두 돼”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한성 시민통신원  hansung6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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