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74~177일

“멋지지 않아? 친구야! 파도소리 웅성거리는 카스피 해 연안을 따라 야자수, 오렌지 가로수 거리를 달리며 낯선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에 도취해보는 것이! 낯설고, 신비하고, 이상하며 친근감과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나라. 그곳 사람들과 손짓 발짓 의성어까지 써가며 소통하려는 나의 모습이! 나는 이제 웬만한 코미디언보다도 성대모사를 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내 조국 한국에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세계를 달리는 나를 잘난 체하면서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그 가슴에 봄을 찾은 한 마리 제비처럼 평화의 작은 씨앗 하나 물어다 놓는 것이!”

이란 사람들이 한국인에게 보여주는 관심은 과히 열광적이다. 2월 21일 찰루스 부근 중학교를 지나는데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볼을 차던 한 학생이 나를 보고 먼저 손을 흔들며 달려 나왔다. 나머지 학생들도 모두 소리 지르며 내게 달려와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악수를 하며 순식간에 운동장 전체에 소동이 일어났다. 그들은 내가 평화마라토너인지 모른다. 네덜란드에서 시작해서 10개국을 지나 이란에 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기네스북에 남을 도전을 하는지는 더더욱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들은 내게 열광했고 그 소동은 잠시 후 나타난 선생님에 의해 진정되었다.

태초에 인류는 아프리카로부터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끝없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아시아로 이동하기도 했다. 이란은 인류 이동 및 동서 문명의 교차로로 끊임없이 외부세력과 충돌을 빚었다. 지금도 15개국과 국경 및 바다를 접하고 있다. 이슬람에서도 다수파인 수니파의 협공 속에 외로이 시아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만큼 이란은 많은 이야기가 깃든 나라이다. 나는 이란을 달리면서 마치 동화 속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기분이다. 이곳엔 정말 이상할 정도로 우리와 유사한 문화가 많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유사성이 이들을 대장금이나 주몽 같은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게 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극에서 보이는 여인들의 쓰개치마나 장옷이 히잡이나 차도르를 쓰고 몸 전체를 가리는 이란 여성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아직도 서구 문화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란인들에게 문화와 역사를 통한 상호 이해는 앞으로 한국과 이란 사이의 거리를 더욱 좁혀 나가게 될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공동의 발전을 위해서 상호 협력할 공간이 있다.

▲ 2018년 2월 22일 이란 Royan입구에서 몰라콜라까지 달리면서

이란은 기원전 3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 이래 제 2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처럼 외세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은 나라다. 그러면서도 고유문화와 전통을 유지하고 국민의 일체감을 가진 나라다. 이란은 중동 여느 아랍국가와는 문화적 배경이나 인종, 언어에서 자존심을 버리고는 하루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란의 체면치레는 어쩌면 한국인들을 뛰어넘는다. ‘터어로프’는 이란에서 서로의 체면을 지키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문화를 말한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언어 속에도 나타난다. ‘거벨 나더레’가 바로 그 말이다. 상점이나 식당에서 계산을 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이 말을 한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손에다 글을 쓰는 시늉을 하면서 ‘계산 빨리 해달란 말이야.’하며 자꾸 재촉을 하는 무례를 저지르고 말았다. 우리나라가 양반 체면을 지키려고 허세를 부리기는 하지만 ‘물건 값을 안 받겠다’고 허세를 부리지는 안는다.

인류 최초의 제국주의 국가 페르시아는 그만큼 지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651년 사산제국이 망하고 1501년 사파비 왕국이 등장하기까지 850년간 페르시아는 아랍과 몽골, 튀르크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유라시아 국가가 제국을 꿈꾸는 순간 페르시아는 반드시 거쳐 가는 길목이었고 중심지였다. 이 땅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뜻하며 그 문명과 종교는 페르시아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영역을 확충해나갔다.

페르시아의 자존심은 그들의 문학에서 꽃을 피운다. 식민 치하의 불과 한두 세기 동안 페르시아의 시인들은 걸작을 쏟아놓는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소중한 언어로 자기들의 역사와 삶과 사랑을 카펫처럼 포근하게 일상에 깔아놓는다. 이란인들의 집에는 최소한 두 권의 책이 있는데 하나는 ‘쿠란’이고 하나는 ‘허페즈 시선집’이다. 그들은 일상 속에서 쿠란과 시를 암송한다. 보통의 시민들은 시 몇 수는 줄줄 암송한다고 한다.

여기 이란인이 4대 시성으로 여기는 루미의 시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라는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꽃과 술과 촛불이 있어요./ 당신이 안 오시면 이것들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당신이 오신다면/ 이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이슬람에서는 음악과 미술이 종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이슬람 혁명 이후 학교 교과과정에 음악과 미술은 빠졌다. 예술의 그 많은 빈 공간을 시가 차지해버렸다. 이란 사람들에게 시는 자존심이고 겉치레이고 멋이고 낭만이다. 페르시아의 시는 카펫과 함께 실크로드를 타고 유라시아에 퍼져나갔다. 특히 이란의 시선 허페즈의 시들이 괴테, 니체, 바이런, 앙드레 지드 같은 서양의 문호들의 영혼에 전기적 충격을 가한다. 중국의 시선 이태백도 페르시아의 언어를 쓰던 색목인이고 페르시아 시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여권(旅券)의 힘이 세계 최고라 한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매너 좋고 돈도 잘 쓰는 모양이다. 그런데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세계에서 손꼽히게 비자 얻기가 까다로운 나라다. 벌써 언제부터 비자 신청을 했는데 아직도 열흘이나 더 걸린단다. 여기서 국경까지 6일이면 달려가는데 국경 근처에서 멍하기 기다릴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3월 학기에 맞춰 귀국해야할 동반자 김태영군을 혼자 버스에 태워 테헤란으로 보내느니 같이 가서 테헤란 구경도 시켜주고 자동차 문도 고칠 겸 테헤란으로 향했다. 그동안 조수석 문이 안 잠겨 밖에 차를 세워두면 불안에 떨어야했다.

테헤란은 지상 최고의 교통 혼잡지역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는데 점심식사를 하고 나니 교통정체가 심해 구경하는 것은 포기하고 한인회장님 댁으로 바로 갔다.

▲ 몰라 콜라에서 테헤란으로 가는 길목에서
▲ 몰라 콜라에서 테헤란으로 가는 길에 만난 설산

다음날 차를 고치는 동안 낮잠을 자고 저녁 때 '한겨레주주통신원 김진표 위원장'의 직장과 관계된 이란 거래처의 친구인 푸야씨가 나를 만나보고 싶어서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하여 식당으로 갔다. 약 10km 움직이는데 두 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푸야씨는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인데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일주하며 민주주의 확장운동을 하고 싶어 한다.

의기투합한 우리는 이란 전통음악이 흐르는 식당에서 저녁을 하며 소소한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시간은 어찌 그리 빨리 가는지! 식사가 끝나자 내가 식사비를 보태려하니 여지없이 ‘거벨 나더레’라는 말이 나온다. “푸야씨 저녁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태형학생은 공항으로 가고 나는 한인회장님 댁에서 하루 더 자고 2월 25일 다시 뛰던 자리임 몰라 콜라로 돌아간다. 26일부터는 현지인과 함께 투르크메니스탄을 향해 달릴 예정이다.

▲ 2018년 2월 22일 이란 Royan입구에서 몰라콜라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이란 몰라콜라까지(누적 최소거리 약 6212k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동영상 : 강명구 마라토너, 동반자 김태형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선수유라시아평화마라톤 177일째(2018년 2월 25일)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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