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량(張良 : BC 250~ BC 185. 字는 子房) 비급을 얻다.

‘군막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에서 일어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 장량!’이라고 한고조 유방은 이야기합니다.

영웅호걸들이 수 없이 등장하여 한세상 큰 바람을 일으키지만 결말이 언제나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가장 완벽한 삶을 살았다며 선시선종(善始善終)이라 부르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장량이지요.

장량이 없는 유방, 장량이 없는 한나라 건국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됩니다. 장량은 단순한 책사 혹은 모사의 개념을 벗어나지요. 유방은 장량의 건의를 묵살하거나 이의를 단 적이 없었습니다. 전쟁에서의 크고 작은 일부터 수도를 정하는 일까지, 심지어 유방의 후사에도 관여를 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책사, 두뇌하면 호풍환우를 하던 제갈공명을 떠 올리겠지만 유비와 유선 두 임금을 모시면서도 그는 결국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종종 장자방으로 언급 되었던 인물이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를 도왔던 정도전이나 세조를 도왔던 한명회가 장자방으로 불렸지만 생전에 혹은 사후에 모두 험한 꼴을 당하지요.

장량은 할아버지 장개지, 아버지 장평이 대를 이어 제상을 지냈으며 가노가 300명에 이르는 한(韓)나라의 명문가출신입니다.

▲ 사진: wikipedia 사마천이 본 장량의 초상과 황석공으로부터 태공병법이란 비급을 얻은 장량

BC 230년 한나라가 진시황에 의해 멸망을 당하자 아직 관직에 나가지 않았던 스무 살 장량은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복수를 위해 길을 나섭니다. 동쪽으로 가서 창해군을 만나 힘이 센 역사를 자객으로 얻습니다. 이 자객은 120근(약 24Kg) 철추를 만들어 박랑사라고 하는 지대가 높은 곳에서 전국을 순시하던 진시황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당시 진시황은 자객의 기습을 두려워하여 똑같은 5대의 수레를 끌게 하였는데, 이 역사가 던진 철추는 빈 수레를 부수고 말지요. 진시황을 노렸던 형가나 고점리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장량이 고용했던 역사에 관한 체포여부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장량은 진시황이 내린 천하 대수색령을 피해 초나라 땅 하비로 들어가서 이름을 바꾸고 은둔에 들어갑니다. 이곳 하비에서 장량은 무협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처럼 비급을 한 권 얻습니다.

하루는 장량이 다리를 건너는데 웬 노인이 신발을 벗어서 다리 아래로 던지고는 장량에게 신발을 주어오라고 부탁합니다. 황당했지만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 싫은 내색 없이 신발을 주어옵니다. 그러자 노인은 한술 더 떠 주어왔으면 신겨주라고 발을 내밉니다. 장량은 신발도 신겨주지요. (장량진리;張良進履, 이교진리;圯橋進履)

▲ 사진: wikipedia 張良進履;장량이 신발을 신겨드리다. 圯橋進履;흙다리 위에서 신발을 신겨드리다.

노인은 ‘가르치면 쓸 만하겠는데’라고 중얼거리더니 닷새 후 아침에 여기서 만나자고 합니다. 5일이 지나 약속장소에 장량이 나갔더니 이미 와서 기다리던 노인은 늦게 왔다고 혼을 내며 닷새 후에 다시 나오라고 말하곤 그냥 갔습니다. 5일 후 한밤인 삼경(자정 무렵)에 나갔는데 이번에도 노인은 먼저 와서 기다렸다며 화를 내곤 다시 닷새 후 만나자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밤이 되기도 전에 다리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에 도착한 노인은 장량을 칭찬하면서 책 한권을 줍니다. 바로 태공병법(太公兵法)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책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면 10년 후에는 제왕의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3년 후 나를 곡성산 아래서 만나게 될 것이다. 곡성산 밑에 노란 돌이 바로 나란다.’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후 다시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 노인을 황석공(黃石公)이라 부릅니다.

사기에 언급된 ‘태공병법’은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세운 강태공이 쓴 병서라는 의미입니다. 후대에 ‘육도삼략’이란 책이 바로 장량이 얻은 태공병법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청나라 고증학자들에 따르면 육도삼략은 쓰인 글이나 어법이 후한 이후 위진 남북조 시대의 위서라고 합니다. 누군가 강태공의 이름을 빌려 자기 병서를 널리 알렸다는 의미입니다.

신화 같은 장량의 이야기는 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황석공의 예언대로 13년 후 장량은 곡성산에서 노란 돌을 만났고, 그 황석을 가지고 와서 고이 모십니다. 장량 사후 관에 함께 넣어 매장을 하지요. 200년 후 왕망이 난을 일으켜 신(新)이란 나라를 세워 15년간 유지를 하는데(이로 인해 전한과 후한, 혹은 서한과 동한으로 나뉨), 이 때 눈썹을 붉게 칠한 농민들이 왕망의 폭정에 반란을 일으키지요. 바로 적미의 난입니다. 이 적미군이 장량의 무덤을 팠는데 황석이 마치 살아있는 듯했고, 순식간에 유성처럼 구름 속으로 사라졌답니다. 장량의 유해는 없고요. 그래서 장량은 신선이 되어 우화등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태공병법을 얻은 장량은 하비에 숨어서 10여년을 협객으로 지냅니다. 그 중에 살인을 저지르고 숨어들어온 항우의 작은 아버지 항백을 구해주지요. 항백은 이 인연으로 후에 홍문연에서 유방의 목숨을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대만이야기 49 역발산기개세)

협객생활을 하다가 진시황 사후 진승과 오광이 난을 일으키자 하비에 숨어있던 장량도 휘하를 거느리고 나섭니다. 이 때 백여 명이 장량을 따랐다고 하니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협객이었나 봅니다. 사마천은 장량의 자료를 보면서 기골이 장대하거나 우락부락한 모습으로 생각을 했는데 전해 내려오는 초상을 보고 너무 곱상한 외모에 놀랐다고 기록합니다.

장량을 유방의 책사로 언급을 하지만 사실 장량의 행적을 보면 초지일관 한(韓)나라를 망하게 한 진나라에 대한 복수 그리고 아버지 할아버지가 섬겼던 한(韓)왕실의 부흥이었습니다. 자기가 거느린 100여명으로는 세가 약해서 당시 실력자 진가를 찾아 나섭니다. 도중에 패현에서 거사를 일으킨 유방을 만나지요. 유방도 휘하의 옹치가 배신을 하는 바람에 곤궁한 처지가 되어 진가에게 의탁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동안 장량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태공병법을 전했지만 그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이해를 못했는데 유방은 장량의 말을 듣고 좋아하며 바로바로 실전에 응용을 하고 성공을 거둡니다. 장량은 유방이 하늘에서 내린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고 진가에게 가지를 않고 유방의 군에 합류를 합니다.

당시 조카 항우를 대리고 남진을 하던 항량은 단번에 진가를 격파하고 그의 대군을 수습해버립니다. 유방은 외곽에서 전투 중이었으며 진가의 휘하는 아니어서 직접 부딪히지는 않았지요. 항량이 초 회왕을 옹립하고 반란세력 중에서 최고 실세가 되자 장량은 유방을 떠나 항량에게 갑니다. 한나라 왕손인 한성을 왕으로 삼고 인정해주면 한나라 세력을 모을 수 있다고 해서 허락을 받지요.

장량은 한성을 왕으로 모시고 얼마 안 되는 병력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움직였지만 크게 드러나는 활약을 못합니다. 그러다가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진격하는 유방을 다시 만나게되어 유방의 군에 합류를 하지요.

유방은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여 완성을 얻고, 함양성도 쉽게 정복을 해서 진나라 자영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냅니다. 유방은 자영의 항복을 받고 휘황찬란한 아방궁에서 제대로 놀아보고자 하였습니다. 번쾌를 비롯한 다른 부하들의 진언은 아랑곳하지 않던 유방이 장량의 간언은 받아들여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고 함양성을 물러나 외곽에 주둔을 합니다. 이 일로 유방은 민심을 크게 얻지요.

홍문연에서 유방의 목숨을 구하는 결정적인 역할도 장량이 합니다. 항우는 유방을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파촉의 왕으로 임명하지만, 장량이 항백을 움직여 한중(漢中)까지 더 얻게 만들지요. 그래서 유방이 한중왕(漢中王) 혹은 한왕(漢王)이 되었습니다.

항우는 장량이 모시는 한왕(韓王) 한성이 유방과 가깝다는 이유로 푸대접을 하며 한나라 봉읍지로 보내지 않고 휘하처럼 금의환향하는 팽성으로 데리고 갑니다.

장량은 유방에게 파촉으로 들어가면서 잔도를 모조리 불살라 항우의 의심을 피하게 조언을 하지요. 또한 한신을 찾아내 파촉의 유방에게 보냅니다. 유방이 한신을 얻어 군을 정비한 후 파촉을 나오자, 장량은 유방이 오로지 관중 땅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이 항우의 귀에 들어가게 하고, 북쪽으로 제나라를 먼저 치도록 공작을 합니다.

그 무렵 항우가 한왕 한성을 죽이자 장량은 다시 팽성에서 나와 유방의 군에 합류를 합니다. 이후로 장량은 유방과 함께 움직입니다. 주군인 한왕 한성의 복수를 위해 항우와 싸우는 형국이지요.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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